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수창 (문단 편집) == 피칭 스타일 == ||[[파일:SSC 투구폼.gif|width=100%]] ||[[파일:수창 사이드암.gif|width=100%]] || || [[오버핸드]] 투구폼 || [[사이드암]] 투구폼 || 선수 생활 중·후반에 저니맨이 되어 여러 팀을 거쳤기 때문에 평범한 선수로 보일 수 있다. 심수창 본인도 은퇴 이후에 방송에서 포스트시즌 출전 경험이 없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거나, 국가대표로서 WBC·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를 나가본 적이 없는 점을 들어 평범한 선수로 자신을 소개하며 다소 자학 개그로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에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았고, 대학생 시절엔 국가대표도 해봤다. 프로에서 LG 시절엔 06시즌 '''10승''' 타이틀을 따냈고, 이듬해인 07시즌엔 '''10홀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많은 프로 야구선수 중에서 한 시즌, 이마저도 2군만 전전하며 사라지는 선수들도 많은데 심수창은 무려 16시즌이나 프로선수로 1군 무대에서 살아남았고 또한 FA도 해봤다. 앞서 언급한 저니맨도 실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불러주는 팀도 없기 때문에 결코 선수를 평가절하할 표현도 아니다. 결코 특급 선수는 아니었지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한 선수. 현역 시절, 다양한 변화구가 강점인 기교파이자 전천후 투수였다. 오버핸드 폼에서 내리꽂는 포심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따내고 사이드암에서 나오는 횡변화 결정구로 요리하는 것이 주 투구 패턴. 삼진을 잡고 싶을 땐 높은 스리쿼터에서 포크를, 맞춰잡을 땐 사이드암에 가까운 낮은 쓰리쿼터에서 횡변화구를 던지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었다.[* 다만 본인 유튜브에서 사이드 포크볼도 던졌다고 가끔 주장하고 있다. 원래 야구공이라는 게 종변화구라고 해서 작대기처럼 똑바로 가다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횡변화구라고 해서 수평으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다. 흔히 직구라고 부르는 공도 빨랫줄처럼 수평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랫쪽으로 떨어지면서 날아간다. 팔 각도가 사이드면 포크볼도 횡변화가 있으며 무엇보다 수십 개씩 던지는데 딱 두가지 구종만 던지는 건 아니니 얼마든지 사이드에서도 포크볼을 던질 수 있다.] 포심을 제외하면 투심, 포크볼, 슬라이더 이 3가지가 주무기이며 이 외에도 커브볼을 구사할 수 있다. 2019시즌 기준으로는 2016시즌과 비슷한 다양한 변화구를 앞세워 노련함과 수싸움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투수였다. 인생의 굴곡만큼 플레이스타일도 몇 차례 변화를 겪어 왔다. 첫 번째로, LG시절 초창기까지는 딱히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인 투수였다. 우완 오버핸드, 몇 가지 변화구, 적당히 좋은 구위와 최고 145정도까지 나오는 적당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패스트볼, 약간의 제구불안과 젊은 투수답게 멘탈이 그리 강하지 못한 점이 약점인 평범한 투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심수창만의 특징은 없었지만 구위, 구속, 변화구 모두 괜찮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급기야 2006년에는 꾸준한 선발자원으로 활약하여 10승을 달성한 투수가 되었다. 물론, 이 10승 중에 몇 경기는 운이 상당히 따라주었지만. 그래도 준수한 경기력을 많이 보여준 편이긴 했다. 이 당시 젊은 심수창이 더 성장하기 위해 선택한 활로는 변화구의 장착이었는데, 이게 단기적으로는 심수창을 10승 투수로 만들어 주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땐 심수창의 커리어를 망치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본래 [[패스트볼]]과 [[커브]] 정도를 주 패턴으로 구사했는데, 포크볼과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를 장착한 결과, 2006년 시즌에는 적당히 빠른 직구와 팔색조 변화구가 어우러져 135이닝을 소화하며 10승을 거두는 준수한 기교파 선발자원으로 성장하는 듯 했다.[* 허나 이 시즌은 역대급 투고타저 시즌이었고 심수창의 평균자책점이 4점대였던걸 감안하면 운도 많이 따라주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준 경기 또한 많았다.] 그러나 너무 많은 변화구를 익힌 여파로 속구 감각을 점차 잃어 점차 구속이 떨어져 급기야 2008년쯤에 이르러서는 28살 투수가 속구 구속이 130km/h대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고, 원래 제구나 구위가 특출난 강점인 투수는 아니었는데 구속까지 떨어지니 심수창의 속구는 그냥 배팅볼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슬럼프에 빠진 와중 2010년의 대굴욕 연봉 사건, 그 18연패 슈퍼스타 심수창 등 파란만장한 사건을 겪은 끝에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되고 [[정민태]]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투구폼을 손보며 파워피처로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패스트볼 구속을 145km/h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으나 이번엔 투구폼 개조의 여파로 변화구들이 맛이 가버렸고 이 과정에서 잠시 상승세를 탔던 시점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다시 배팅볼 투수로 전락하게 된다. 게다가 2012년 10월 아버지가 구속수감[*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381&aid=0000000351|입학 비리 혐의]]]되며 그렇잖아도 끝없는 슬럼프에 시달리던 심수창의 멘탈은 완전히 박살이 나버리고 2군에서도 얻어맞는 삼류 투수로 전락했다. 2013년 단 한번도 1군에 등판하지 못했다. 사실 이때 심수창은 더이상 희망이 없어보였고 그렇게 선수 커리어를 마감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심수창은 2013년 하반기에 남몰래 개명까지 하는 등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홀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개명 효과인지 2013년말 2차 드래프트로 롯데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2014시즌 롯데에서도 11경기 등판에 9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내게 되었다. '''오버핸드-쓰리쿼터'''(라고는 하지만 거의 사이드암에 가깝게 내려간다)로 두 개의 이중투구폼을 이용한다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2015시즌 부활하게 된다. 2014년 2군에 있을 때 장난삼아 쓰리쿼터로 던져 봤는데 의외로 구속과 제구가 괜찮아서 [[이용훈(야구)|이용훈]]과 [[이종운]] 2군 코치의 적극적인 권유로 쓰리쿼터를 연마하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2012년 5월 이후 3년만인 2015년 4월 선발로 복귀하게 되었다.살짝 팔을 내리며 구속이 상승해 투심과 슬라이더의 위력이 상승했다. 또한 변화구 역시 사이드암을 사용하며 횡변화구가 좋아졌고, 횡변화구가 좋다 보니 상대적으로 포크볼 등 종변화구까지 낙차가 더 심해 보이게 되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투구폼을 바꾸면서 타자들의 타이밍을 흐트러트리는 것은 덤. 투구폼이 확실히 나뉘는지라 투구폼만으로 구종을 파악하기 쉬울 것 같지만 던질 줄 아는 변화구가 워낙 많은지라 투구폼만으로 파악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후 타자들이 어느 정도 패턴을 파악하며 이점이 좀 줄긴 했지만 위력적임에는 틀림없다. 더군다나 심수창 또한 연차가 쌓인 노련한 노장이 되다보니 수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장점은 타고난 유연성. 이는 쓰리쿼터의 투구폼에서 빛을 발하는데 사이드암 투수인 [[김성배]]는 이러한 유연성에서 나오는 심수창의 쓰리쿼터 투구폼이 좋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오버핸드-쓰리쿼터 두 개의 이중투구폼을 이용한다는 점과 [[김성근]]의 투수운영방식, 팔에 무리가 가기 쉬운 그의 주무기 포크볼, 그리고 통산 900이닝 이상을 던지다 보면 팔에 무리가 오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심수창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수술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장점이 단점이 될 때도 많다. 단점은 변화구가 종류는 많아도 실전에서 위력적인 변화구는 포크볼, 잘 쳐줘야 거기에 플러스로 슬라이더 정도뿐이라는 것. 변화구 종류가 많아 다지선다 수싸움을 걸기엔 유리하지만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어서 찍히면 그대로 장타를 허용했다. 투심까지 더하면 4~5가지 구종을 던질 수 있는데 뭐 이 정도면 KBO에선 팔색조 소리 듣기는 충분하긴 하다. 한화에 오고나서부터는 거의 패스트볼과 포크볼 투피치인데, 패스트볼 위력이 딸리는지 점점 카운트용, 결정구용 가리지 않고 주구장창 포크볼만 던져 거의 포크볼 원피치가 될 정도로 말년으로 갈수록 포크볼을 많이 던지는 식으로 변화해갔다. 그래도 심수창 영입 당시 김성근 감독의 심수창에 대한 첫 평가가 심수창은 포크볼을 잘 던진다는 평가였을 정도로 포크볼의 위력은 나름 인정받았던 선수. 또한 고질적인 제구 불안에 스터프가 좋은 편이 아니라 자칫 몰리면 그냥 장타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또한 맞춰잡다 보니 수비의 영향도 많이 받고 볼끝이 깨끗하여, 특히 포심이 작대기같이 깨끗해[* 오버핸드 한정. 쓰리쿼터폼의 패스트볼은 의외로 테일링이 휙 걸리는 경우도 간간히 보인다.][* 은퇴후에 찍은거긴 하지만 김성배와 함께 찍은 파인타르 테스트 영상에선 비교를 위해 로진만 손에 바르고 던졌을때 평균 1600 전후의 회전수를 보여줬고 이는 거의 평균 2100RPM에 육박한 김성배에 비하면 400~500이나 낮은 수치였다.MLB 평균 회전수가 파인타르 이야기가 좀 덜하던 2018년 기준 포심이 대략 2200인걸 감안하면 김성배가 한시즌이라도 좋은 마무리였던 이유 중 일부나마 여기서 살짝 느낄수 있다. 또한 은퇴 후에도 어느정도의 스터프가 있는 선수들은 그 스터프의 편린이라도 보이는 증거로도 제시될 수 있는데, 달리 말하면 심수창은 정말로 프로치고는 평범한 스터프와 그저 그런 악력 등의 비교적 불리한 조건 속에서 노력과 타고난 유연성만 가지고 프로 생활을 어떻게든 했다는 이야기이다. 작대기 직구인 이유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2019년에 찍은 위닝샷의 비밀이란 야구 다큐멘터리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유희관의 직구 초당 평균 회전수(rps)는 38.15고 비교급으로 나온 마일영의 회전수는 22.74인데 이걸 RPM으로 변환하면 각각 2289 /1364이 된다.마일영이 특히 낮은 편으로 언급됐던걸 생각하면 심수창의 프로 때의 회전수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는 없어도 파인타르 테스트 촬영 때보다야 높았겠지만 현역 당시에 썩 높은 편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 구종이 포크볼같이 회전을 억제하는 구종인 데다 회전수에 영향을 주는 악력 등이 극적으로 오르는 경우가 별로 없는걸 생각하면 더더욱..] 안 풀리는 날에는 타자들이 더더욱 타이밍을 잡기도 쉽고 맞으면 더더욱 장타가 나오기 쉽다. 위력적이지 않은 공, 소위 똥볼을 던지지만 투구폼을 통한 이지선다와 또 거기서 나오는 변화구 다지선다를 통한 타이밍 승부로 타자를 잡아내는, [[워렌 스판|배팅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는 야구계 격언에 충실한 투수. 공이 좋아도 멘탈이 약한 젊은 투수들이 보고 배워야 할 만한 두뇌파 투수이다. 투구폼을 2개를 사용하다 보니 균형을 잃기 쉬워 본인도 그 감각을 잘 찾지 못해 경기마다 기복이 좀 있는 편이고, 역시 두 개인 투구폼과 구종마다 다른 팔 각도로 인해 몸에 부담이 커 부상 위험 또한 상당히 높다. 또한 속구 구위가 좋지 않다 보니 변화구 구사율이 상당히 높은 편에다가 결정구로 즐겨 쓰는 변화구는 부상 위험 높다는 슬라이더와 포크볼. 알고 보면 폭탄을 여러 개 달고 다니는 매우 위태위태한 선수다. 프로생활 10여년간 부상을 당할 만큼 많이 던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터지지 않았을 뿐. LG 시절 10승을 거둔 것 때문에 선발 투수라 생각하기 쉽지만, 풀타임 선발 경험이 없다. 불펜과 선발을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며 사실상 5선발~롱 릴리프 정도의 역할을 했다. 이후 넥센으로 이적하고 나서도 당시 좋지 않았던 넥센의 상황상 5선발 정도로 꾸준히 등판 기회를 얻으면서 18연패의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최근 심수창이 방송에서 언급했듯이 18연패는 굴욕적인 기록이라기 보다 그에게는 행운이라 할 수 있는 기록이다. 당시 LG나 넥센이 아니었다면 18연패하는 선수에게 계속 등판 기회를 주었을 것인가.[* 여담으로 [[류현진]]은 같은 기간 30승을 기록했다.][* 물론 이 18연패 기간동안 심수창이 엄청 못했다고도 볼 수는 없는 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운도 굉장히 좋지 않았다. 본인이 호투하면 불펜이 방화를 해서 승이 날아간 경우도 있고, 승계 주자때문에 패전투수가 된 적도 많기 때문.] 한화에 와서는 선발과 릴리프를 오가는 스윙맨으로 전천후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나이가 16년 기준으로 35살인 노장인 것 또한 불안 요소. 그 김성근의 혹사 속에서도 16년 9월들어 148km/h의 속구를 뿌려주고 있지만 작년의 권혁도 저렇게 팔을 불사르며 던지다가 정말로 팔이 뽑혀버린지라 한화 팬도 롯데 팬도 썩 기분 좋을 상황은 아니다. 이상하게 본인은 선발 나왔다가 중간으로 나왔다가 이틀 쉬고 다시 선발 하는 게 되레 편하다고 한다.[* 이전의 김민우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고, 장민재도 선발은 쉬는 날이 길어 지루해서 선발도 중간계투도 다 되는 투수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인터뷰를 17년 1월에 했다. 사실 선수들은 다 그렇다. 팀 내에 확실히 자기 자리가 있는 에이스나 마무리가 아닌 평범한 선수들은 언제 자리를 뺏길지 모르는 일이고 그래서 선수들은 못 던지는 것보다 많이 던지는 것을 좋아한다.] LG시절 팔꿈치 주변 인대를 강화하는 훈련을 해서 포크볼을 계속 던져도 별로 안 아프다고 한다. 이후 LG로 돌아갔으나, LG에서는 선수생활 15년이 넘도록 당해본 적 없는 큰 부상을 처음 당하는 바람에 1군에 거의 올라오지 못했고, 1군 5경기 등판으로 선수 생활을 끝냈다. 여담이지만, [[최강야구]]에 출연하면서 지속되는 어깨 통증으로 인하여 선배 투수이자 해설위원인 [[김선우(1977)|김선우]]의 코칭을 받아 생애 첫 '''언더핸드''' 투구까지 하게 되면서 은퇴 후에나마 3개의 투구 폼을 보유하게 되었다. [youtube(kTVMZve07Dg)] 이후 최강야구에 부임해온 옛 스승 김성근 감독도 언더핸드 혹은 사이드로의 전향 내지 경우에 따라선 좌완 투수로 전향해보는 것을 시사한지라 어째 은퇴한 이후에 투구폼의 변화가 극심해지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최강야구에서도 여전히 보여주지만, 스스로가 부담감을 갖는 상황이 굉장히 잦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로 인해 있는 실력도 제대로 못 보여주는 상황이 반복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