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실향민 (문단 편집) === 아프로유라시아 === * 오늘날 [[중국]] 동북 3성(만주)의 [[만주족]]들은 넓게 보면 실향민의 후손들이다. 만주 자체가 만주족의 고향인 지역이지만 [[청나라]]의 중원 입관 이래로 만주족 대부분이 중원이나 남방으로 이주하여 오랫동안 중원이나 남방에서 살아가면서 청나라 말기에는 사실상 중원이나 남방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여기다가,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만주족이 학살당하는 바람에 혁명군을 피해 조상의 고향인 만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당시 조상 대대로 만주에서 살고 있었던 만주족은 만주에 잔류한 만주족 하층민 및 청나라의 북동쪽 변방을 지키던 [[팔기군]] 소속 만주족이었는데 이들은 당시의 만주족 중에서는 그야말로 일부에 불과했다. 비록 지금은 만주, 중원, 남방이 다시 한 나라가 되었지만 이마저도 청나라의 피지배민족이었던 [[한족]]의 주도로 이루어진 통일인지라, 중원이나 남방에서 만주로 도망친 만주족은 단순한 실향민을 넘어 아예 [[나라 없는 민족]]이 되어버렸다. 현대 만주족은 중국 북부 지역에 비해 만주족 문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중국 남부 지역에 남아있는 청나라 만주족의 유산(팔기군 군영 유적, 청나라의 중국 남부 정복 후에 세워진 [[티베트 불교]][* 청나라의 국교였다. 근현대 중국에서 티베트 불교 신자들이 중국 남부 지역에도 존재하게 된 것은 [[티베트]]의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청나라의 영향이 크다.] 사원 등)을 보존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 [[독일]], [[베트남]], [[예멘]]의 경우 분단을 청산하고 통일이 완수되면서 자국 영토 내에서는 실향민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동독]]과 [[남예멘]]의 공산주의자들 및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의 반공주의자들은 통일 이후에도 각각 공산주의 성향과 반공주의 성향을 못 버린 경우 아예 각각 구 공산권과 서방 국가로 망명하여 실향민이 되기도 했다. 특히 예멘의 경우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를 떠나 통일국가 예멘의 혼란 자체를 피해 외국으로 망명하여 실향민이 된 이들도 많다. * 그리고 독일의 경우 동서독 분단으로 인한 실향민보다는 [[제1차 세계 대전]] 및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토 상실로 인해 독일 본국으로 추방당한 실향민들이 훨씬 많았는데, [[알자스로렌|엘자스-로트링겐]], [[포젠]], [[서프로이센]] 등 구 [[독일 제국]] 영토와 [[동프로이센]], [[슐레지엔]], [[포메른]] 등 구 [[바이마르 공화국]] 및 [[나치 독일]]의 영토가 양차 대전의 종전 이후 폴란드와 프랑스, 소련의 영토로 넘어가면서 연합국이 독일계 거주민들을 대부분을 추방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의 구실이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폴란드 회랑|폴란드에 넘어간 구 독일 제국 영토]]로 인한 분쟁이었다는 점을 내세워 연합군 측이 일부러 독일계 주민들을 추방했다. 그러나 양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령이 된 [[알자스-로렌]]의 경우는 독일계 주민들이 독일 본국으로 쫓겨나가기도 했으나 [[나치 독일]] 점령 당시 나치 부역 행위에 대해 반성하거나 1870년 이전에 프랑스 국적자였던 현지 주민과 그 자손 중 해당 지역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하던 독일계 주민들에게는 프랑스 국적이 부여되거나 사면되었다. 반면 1870년 이후 독일 본토에서 알자스-로렌으로 이주한 독일 본토인 및 그 자손이나 알자스-로렌이 독일령으로 남아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한 독일계 주민들은 동구권의 구 독일령 지역 출신 독일인 실향민들처럼 끝내 독일 본토로 강제 추방당했다.]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 지역에서 추방당한 독일인 주민들의 수만 해도 최소 800만 명이며, 중동부 유럽 일대에서 추방당한 독일인까지 합하면 최대 1,500만 명에 달한다.[* 그나마 동서독 분단으로 인한 독일의 실향민 세대들은 1990년 [[독일 재통일|동서독 통일]]이 되면서 자기가 태어난 구 동서독 지역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거나 동서 분단으로 잃어버린 재산이나 집 등을 어느 정도 되찾는 등 양차 대전 이후 구 독일령 지역의 승전국 편입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 세대들보다는 적어도 양호했다.] 이들의 후손들은 동구권 내 독일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 마찬가지로 [[폴란드]]에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 넘어간 [[커즌 라인]] 이동의 구 동방 영토 출신 실향민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로 넘어온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독일 측 구 동방 영토에 정착한 경우가 많다. 그 외에 [[폴란드]]의 [[제2차 세계 대전]]을 피해 망명한 [[폴란드인]]의 후손들과 [[동유럽]]의 공산화 자체를 피해 서방 국가로 망명한 [[폴란드인]]의 후손들도 실향민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폴란드의 민주화 이후에 폴란드로 돌아가 실향민 신세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지만 폴란드가 민주화된 이후에도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겪는 모습에 실망하여 귀국을 포기하고 미국이나 캐나다 등 서방 국가의 국적을 받고 서방 국가들에서 사는 경우도 많았다. * [[일본]]에서는 실향민을 [[히키아게샤]]라 부르는데 2차 대전 이전 조선, 대만, 남사할린, 쿠릴 열도 등 구 일본령 및 만주국, 몽강국, 왕징웨이 정권 등 일제의 괴뢰국 내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을 지칭한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해외의 일본 점령지에 있던 일본인들은 곧 미국, 중국, 영국, 소련 등에 의해 일본 본토로 추방되었다. * [[루마니아]]에서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과 [[불가리아]]에 할양당한 베사라비아[* 각각 해안 지역은 우크라이나에 편입되었고 내륙 지역은 몰도바라는 소련의 공화국에 재편되어 내륙 지역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 [[몰도바]]로 독립했다.]와 북부코비나[* 1991년에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었다.], 남도브루자[* 다만 여기는 역사적으로도 원래 불가리아 영토였다.] 등의 과거 [[루마니아 왕국]] 시절 구 루마니아령 지역에서 태어난 루마니아인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 존재한다. * [[세르비아]] 역시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크로아티아]][* 일례로 세르비아의 천재적 발명가인 [[니콜라 테슬라]]도 크로아티아에서 출생했다.]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주권국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일부분임에 주의해야 한다. 크로아티아계와 보슈냐크계 지역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부에서도 세르비아계 지역은 [[스릅스카 공화국]]이 지금도 보스니아 면적의 49%를 차지하여 존속 중이다.] 에서 크로아티아군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군에게 쫓겨나와 세르비아 본국과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인 자치지역인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피난을 간 크로아티아/보스니아 출신의 세르비아계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 있다.[* 게다가 심지어 이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탈리아 왕국 등 추축국의 유고 점령기에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와 보스니아의 SS 한트샤르 여단에게도 학살당한 이력이 있었다.] 그러나 다만 이들은 유고 내전 당시에도 보스니아계 무슬림 집단들에 대한 인종청소 등 학살을 자행하던 이력이 있었기에 본가인 세르비아의 일부 극우파들을 제외하면 국제적으로도 큰 동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들은 유고 전쟁 발발 후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전쟁을 피해서 세르비아 본국에서 와서도 세르비아 본토의 세르비아 사람들로부터 외국인 취급을 당하고 현지 기업이나 공장에서도 취업조차 거절당하는 등 엄청난 문전박대와 차별을 받아 현지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물론 유고연방이 전쟁으로 해체되고, 이후 정세가 다소 안정되면서 세르비아 또는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도피했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사람들 중 일부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전쟁과 학살의 트라우마로 인해 원래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세르비아]] 국적을 받고, 세르비아에서 살거나 아예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자치 지역인 보스니아 북동부의 스릅스카 공화국에 정착해서 사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스릅스카 공화국조차도 불안정하고, 위험하다며 외려 세르비아 본국에서 사는 게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전쟁 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은 세 민족이 잡거하던 지역이었기에 현재의 스릅스카 공화국 지역에서 살다가 쫓겨나온 크로아티아인, 보슈냐크인도 많다.[* 가령 [[베드란 촐루카]]가 그런 경우로 아예 크로아티아로 이주했다.] * 제1차 중동 전쟁을 거치며 발생한 [[팔레스타인]]의 실향민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며,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 이웃 국가들에서도 팔레스타인인 난민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요르단의 경우에는 '''[[주객전도|팔레스타인 실향민이 토착 요르단 아랍인보다 오히려 더 많을 지경이다.]]''' 더군다나 팔레스타인 실향민들은 아랍인 정체성보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토착 이스라엘인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서 스스로를 토착 요르단 아랍인과 구별하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양쪽 민족이 서로 간에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아랍권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아라비아 반도]] 본토를 제외한 다른 아랍권의 아랍인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아랍화된 비아랍계 토착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아랍어]]를 써도 [[링구아 프랑카|표준아랍어를 쓰는 게]] 아니라 각각 자기 나라의 아랍어를 쓰면 [[스페인]] 본토의 [[스페인어]]와 [[라틴아메리카]]권 국가의 스페인어, [[포르투갈]] 본토의 [[포르투갈어]]와 [[브라질]]의 포르투갈어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시리아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경우 2011년 시리아에서 [[시리아 내전]]이 터지면서 이들도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 IS와의 싸움에서 교전, 폭격으로 죽거나, 전쟁을 피해 자국을 탈출하려는 시리아인 [[난민]]들의 틈새에 끼어서 터키나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같은 시리아 주변국들로 피난가는 등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발생한 시리아 난민들 못지않게 커다란 타격을 입고 있다.[* 그나마 시리아 출신의 시리아 난민들이야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수 있는 고국이라도 있지만, 이들은 그런 것도 없다.] *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경우에도 1923년 인구 교환으로 막대한 실향민이 존재한다. 특히 튀르키예에서 그리스로 교환되어 온 그리스계들은 자신들이 살던 지역 이름을 따서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아테네]] 인근의 네아(새로운)[[이즈미르|스미르니]] 같은 경우. [[테살로니키]]의 축구팀인 [[PAOK FC]]도 정식 명칭에 콘스탄티노플이 들어가는데, 원래 뿌리가 이스탄불의 그리스인 축구팀이기 때문이다. * [[키프로스]]는 터키계의 북부와 그리스계의 남부가 분단 상태를 유지하는 곳인지라 섬 내부에도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 간 실향민들이 존재한다. 터키군의 침공으로 분단되기 전 원래는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북부와 남부 등 섬 여러 곳에서 잡거하고 있었는데 전쟁으로 분단이 되면서 북부 지역에서 살던 그리스계 주민들이 터키군과 터키계 키프로스인 민병대들에 의해 대거 남쪽으로 추방당하고, 섬 남부 지역에서 살던 터키계 주민들이 그리스계에 의해 추방당하면서 북부와 남부 간 인종 비율이 바뀌었다. * [[대만]]에서는 실향민들을 [[외성인]]이라고 한다.[* 다만 엄밀히 말하면 외성인은 대만에 호적이 있는 사람 중 [[타이완성]]이 아닌 지역에 본적을 둔 사람 전체를 의미하고, 때문에 국부천대 이전에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이주한 사람들의 2세대 이상 후손과 본래 대만 본토에 속하지 않는 지역인 [[푸젠성(대만)|진마 지구]]의 토박이들까지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또한 출생지는 중국 본토이지만 본적지가 타이완성인 경우, 가령 본인은 중국 본토 [[시안시]] 태생이지만 아버지가 대만 태생인 [[롄잔]]과 같은 경우는 외성인이 아닌 본성인으로 분류된다.] [[중국 대륙]]에도 [[타이완성]] 출신인 사람들 일부가 실향민으로 살고 있지만[* 대부분 [[중국 국민당|국민당]]의 대만 통치에 불만을 품은 [[본성인]]들이 중국 대륙으로 망명한 경우이다.] 그 수가 매우 적고, 더구나 '''[[듣보잡|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존재감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 양측의 경우는 상대측이 [[북한|평양의 공산정권]]마냥 말이 안 통하는 천하의 개쌍놈 꼴통집단이 아닌지라 1980년대 말기 이후로는 통행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 [[프랑스]]에도 [[피에 누아르]]라는 프랑스판 히키아게샤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과거 식민제국 당시 [[알제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터를 잡고 오랫동안 특권층으로 군림하였으나 [[알제리 전쟁]] 이후 토지와 재산 등을 잃고 프랑스 본토로 재이주한 자들이다.[* 일례로 피에 누아르 중 대표적인 인물인 [[알베르 카뮈]]의 연구에 참여한 김화영 교수는 알제리에 가서 카뮈에 대한 흔적이 철저하게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그가 보여준 알제리에 대한 인식을 똑같이 식민지를 겪은 한국인으로선 받아줄 수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고 하였다(김화영, 《알제리 기행》 참고).]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알자스-로렌]]이 독일에 할양되었을 당시 이 지역에서 프랑스 영내로의 이주를 택한 실향민들이 존재했다. 물론 이들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 지역이 프랑스에 반환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냉전]] 당시 [[제2세계]]의 경우 공산화를 피해 [[제1세계]] 국가로 망명한 반공 성향 주민들이 대표적인 실향민이다. 이들은 자국의 공산정권이 무너진 경우 실향민 신세를 벗어나 자국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 다만 냉전 종식 이후에는 반대로 제2세계의 보수적인 공산주의자들이 자국의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한탄하여 [[중국]], [[베트남]], [[라오스]] 같이 공산주의 정당의 독재체제가 건재한 국가로 망명하는 경우도 일부 존재했는데 특히 [[캄보디아]]나 [[루마니아]] 같이 공산정권이 무력을 통해 처절하게 몰락한 국가의 공산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다만 [[폴란드]], [[체코]] 혹은 소련 출신 국가들과 같이 공산정권의 몰락이 평화적이거나 반(半)평화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국가들은 공산주의자들이 그냥 체념하고 자국에서 계속 살아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반대로 냉전 당시 제1세계 국가의 공산주의자들이 제2세계로 망명하여 실향민이 된 경우도 많은데, 이들은 제2세계의 붕괴로 영원히 실향민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 [[앙골라]], [[르완다]],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모잠비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남수단]] 등 한때 내전을 겪었거나 내전 중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내전으로 개판이 된 조국과 살던 고향이 전쟁터가 되어 고향을 떠난 아프리카 나라들의 난민 또한 실향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앙골라와 르완다, 모잠비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는 내전이 끝나고 정세가 나름 안정되는 등 난민들이 다시금 전쟁 이전에 살던 고국으로 되돌아왔지만 현재까지도 내전과 정세 혼란이 현재 진행 중인 소말리아와 남수단의 난민들은 여전히 답이 없는 상황이다. * 그리고 2011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의 시리아 주민들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실향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죽고 다치거나 피난 도중 팔려가는 등 모진 수모를 당했다. 오직 소수의 시리아 주민만이 서유럽에 도착하여 그들의 정착지를 찾는다. * 시리아 사람들이 만약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할 수 있으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쿠르드족]] 민병대, [[미군]], [[러시아군]] 및 [[이란군]] 또 최근에는 [[튀르키예군]]까지 개입된 가운데 그러한 생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기에 이들 또한 어찌보면 실향민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2016년 이후에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과 IS들을 대거 토벌하면서 정세가 시리아 정부군에게 유리해져 고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가까워지고 있다. *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당시 [[팔라비 왕조]] 당시에 공무원이나 정계의 고위 각료로 복무했다가 1979년에 일어난 [[이란 혁명]]으로 팔라비 왕정이 몰락하고 이후 수립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부로부터의 정치적 박해와 탄압을 피해 [[미국]], [[캐나다]] 등 서방 국가들로 망명, 이주해온 [[이란계 미국인]]과 [[이란계 캐나다인]]의 1세대 이란 출생자들도 사실상 실향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혁명 이후 들어선 현 이란 정부로부터 궐석재판에서 정치범으로 분류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는데 현재까지도 이란 정부에선 이들 대부분에게 내려진 사형판결을 취하하지 않고 있어 만약 이란으로 귀국할 경우 사형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국인 이란에 돌아가지 못하고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끝이 없는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중 대다수는 고향에 가지 못하고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노환이나 병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물론 혁명 직후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운 좋게나마 팔라비 왕정 시절에 모국에서 이루어 놓은 모든 재산과 부를 잃고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탈출을 하지 못했거나 [[호메이니]], [[하메네이]], [[라프산자니]][* 강경 시아파 이슬람 원리주의자였고, 집권 후 팔라비 왕조 정부가 취했던 세속적 정책들을 다 엎어버리며 최고 종교지도자의 권위를 앞세워 이슬람 극단주의 식 정치를 앞세워 반대자와 자국민들을 수없이 죽인 호메이니, 하메네이와 달리 이 사람은 그나마 정치적으로 온건했던 인물이었다. 심지어 살아생전에 후배 혹은 동생뻘이던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정도였을 정도로 이란 정계에서의 영향력과 지지세력들이 꽤 있었다.] 등 혁명을 주도한 신진 집권 세력들을 만만하게 여기는 등 오판을 하여[* 게다가 이들 중 일부는 혁명 이후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정권 체제만 바뀌고 이란의 새 정부가 자신들의 직위를 보장하거나 새 정부 아래에서도 공직자 유임을 허락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이란 국내에 잔류한 사람들은 대부분 혁명 이후 수립된 이란 신정부로부터 모든 재산과 지위를 뺏기고 총살, 교수형을 당해 죽거나 주요 공직에서 퇴출되는 등 중앙 권력에서도 철저히 배제되어 몰락해버렸고[* 게다가 현재 이란에서도 구 팔라비 왕정 체제에 복무했던 구 집권층 출신 인사와 그 일가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거두지 않고 있어 2세대 자식, 조카와 3세대 손주 같은 후손들조차도 냉전 시대 당시 이전 대한민국의 [[연좌제]] 정책과 비슷하게 이란 정부에게서 탄압과 불이익을 받고 있다.], 혹은 뒤늦게 정신차리고 [[이란]]을 탈출해 주변국을 건너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등 서방 국가로 도주하려다가 이웃 나라 국경지대에서 탈출에 실패하여 이란군의 총격을 받아 죽거나, 발각 또는 체포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총살당하는 일들도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이들 중에는 이란 혁명 이후 성립된 [[이란 이슬람 공화국|현 이란 정부]]에 대해서 굉장히 적대적이며 미국에 망명 중인 팔라비 구 왕가를 지지하며 팔라비 왕조의 [[왕정복고]]를 주장하거나, 이란 현 정권은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고 강경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물론 팔라비 왕조 말기인 1970년대나 이란 혁명 이후인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태어나 혁명 후 수립된 이란 현 정권에 대한 반감과 거부, 지속되는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로 먹고 살길이 막막한 나머지 이란을 떠나 [[미국]], [[캐나다]] 등 서방으로 이민 간 이란인 이민자들도 있지만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의로 떠난 것이기 때문에 팔라비 왕정 폐지 이후에 들어선 이슬람 신정 체제 정부에게서 정치적 박해와 탄압을 피해 국외로 도주, 정착해 자기나라에 돌아가지 못하는 혁명 이전 이란 출생의 해외 이란계 이민자 1세대들보다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최소한 적어도 서방에서 살다가 모국인 이란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 등의 구 소련 출신 국가들에서도 1991년 [[소련 해체]]에 의한 독립 이후에 러시아에게 합병된 [[크림반도]]와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아르메니아]]와 벌인 전쟁에서 패해 아르메니아군에게 점령당한 [[아르차흐]] 같은 분쟁 지역에서 탈출하여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 본국으로 도주해나온 우크라이나인 실향민과 아제르바이잔인 실향민들이 일부 존재한다.[* 이 두 분쟁 지역들 모두 각각 러시아인과 아르메니아인의 인구 비율이 높다.] 다만 아르차흐의 경우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에게 반격하여 아르메니아가 점령한 아르차흐 지방 영토 절반과 국경 지대 일부 영토들을 아제르바이잔이 다시 수복하면서 과거 해당 지역에서 거주하다 90년대 아르메니아와 전쟁 당시 아르메니아군으로부터 쫓겨나온 아제르바이잔인 실향민들이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생겼다.[* 다만 이들 중에서도 아르메니아의 아르차흐 재침공을 우려하여 사실상 영원히 실향민으로 살게 되는 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아르메니아가 강대국인 러시아를 우방국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아르차흐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 본토나 러시아로 망명하여 실향민이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 러시아의 경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러시아 제국]]이 [[독일 제국]]에 [[프리비슬린스키 크라이|러시아령 폴란드]]와 [[발트 3국|러시아령 발트 지역]]을 빼앗기면서 두 지역으로 이주해 살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본토로 도망쳤으며[* 이들은 훗날 소련이 [[발트 3국|러시아령 발트 지역]]을 수복하고 폴란드에 친러(친소련)국가인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각 지역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 훗날 [[소련 해체]] 이후에는 러시아 본토를 제외한 구[[소련]] 국가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본토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후자의 경우 러시아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해당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간 이들도 많지만... 전자에 해당하는 실향민의 후손들과 후자에 해당하는 실향민들은 오늘날 [[폴란드]]와 구 소련 출신 국가에 남아 있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유산을 보존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재한 러시아인들의 경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한러관계]]가 악화되고, 본인들과 러시아 본토의 가족들이 각각 반푸틴과 친푸틴으로 갈라지면서 사실상 실향민 신세가 되었다. 설령 푸틴 정권의 붕괴로 재한 러시아인들이 실향민 신세에서 벗어나더라도, 이 경우에는 러시아 본토에서 살던 그들의 가족들이 러시아 신정부의 러시아 통치를 거부하며 해외로 망명하여 자신들이 실향민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