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탁통치 (문단 편집) == 평가 == [[신탁통치 오보사건]]의 영향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매우 이미지가 나쁘며 심지어 '새로운 [[식민지]]화 조치'로까지 폄하한다. 하지만 '''유엔 신탁통치는 그 명분상 '독립'을 전제로 한 조치이며 실제로 독립국으로 만들겠다는 유엔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화와는 확실히 달랐다.''' 심지어 신탁통치지역의 인권 보호와 자치 능력 강화를 위한 유엔의 감시와 청원 조치까지 있었기 때문에 수임국들 입장에서는 부담을 덜고자 오히려 한시라도 빨리 정부를 구성하고 독립시키려고 안달이었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신탁통치령은 1950·60년대에 독립을 완수하여 주권을 회복하였고 90년대까지 신탁통치를 받은 것은 [[팔라우]] 한 곳이다. 신탁통치 국가들은 독립과 함께 [[통일]]에 성공도 했는데 동서 카메룬, 동서 토고, 소말릴란드, 탄자니아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통일한 국가들은 소말릴란드처럼 다시 분리되기도 하지만 신탁통치령으로 복귀하지는 않고 자체 국가를 수립하고 운영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반면 당시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해방된 지 얼마 안 지난 상황에서 신탁통치는 국민들이나 지도자들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식민통치'라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으며 유엔은 창설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뿐더러 이전의 유엔과 비슷한 기구인 [[국제연맹]]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신탁통치에 참여할 국가들도 죄다 [[제국주의]] 열강들이었으며 이 모든 걸 다 차치한다고 해도 신탁통치가 잠깐의 지배일지 아닐지는 그때로서는 당연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미군정]]과 [[소련군정]]이 상당히 민폐를 끼치는 바람에 신탁통치에 더더욱 부정적이었고 차라리 [[남북분단]]을 택해 버렸다. 특히 국제연맹 시절 만들어진 [[위임통치]] 제도는 이후의 제도에 비해 각종 감독규정도 느슨하고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패전국의 식민지를 승전국이 합법적으로 이어받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이미 국제연맹 시절 일본의 위임통치를 받던 [[남양 군도]]는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했는데도 계속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국제연맹에서도 탈퇴국의 위임통치 권리를 인정하며 사실상 손을 놔 버렸다. 척식회사가 수립된 1936년 이후 남양 군도는 사실상 일본의 전진 식민지 역할로 전락했고 해안요새와 비행장이 건설되어 미군의 피를 빨아먹는 군사기지 역할을 했다. 더불어 1차 대전 후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중동을 영국, 프랑스가 갈라먹은 결과로 생긴 위임통치령인 [[시리아-레바논]]도 기존 하심 일가가 이끌던 아랍인과의 약속을 어기고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프랑스는 대놓고 여길 식민지 취급했고 2차 대전이 끝나자 시리아-레바논을 대놓고 침공했다가 영국군에게 패배하기까지 했으니 누가 봐도 식민지였다. 상술한 신탁통치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는 이러한 이미지가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왔다고 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