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진사대부 (문단 편집) == 잘못된 용어 == 기록 부족으로 논쟁이 끝나지 않는 문벌 귀족 vs 문벌 관료 논쟁과 달리 신진 사대부라는 표현은 현재는 문제가 있는 용어로 어느정도 논쟁이 마무리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제기된 지 20여 년이 지나 국내외에서 이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대두했다. 기본적으로 용어 자체가 어색하다. 고려 전기, 중기엔 관료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관료집단을 통틀어 일컫는 '사대부'라는 용어를 고려말 유신 집단에게만 가져다 붙일순 없다. 또한 성리학을 원에서 들여온 이들이 소위 '권문세족'이고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바로 불교식 생활양식이 사라진 것도 아니라서 성리학과 불교를 통한 구분도 합당치 않다. 성리학자들이 불교와 거리를 두는 건 보다 성리학적 생활 양식이 체계적으로 뿌리내린 조선 중기나 가서다. 조선 초기엔 집 밖에선 유학 경전을 논하고 귀가 후 불공드리고 사후에 불교식 수륙재 지내는 일이 결코 드물지 않았다.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의 대결구도가 잘못된 해석이다. [[조준(조선)|권문세족들도 조선 건국에 적극 참여]]하고, 반대로 [[정몽주|신흥 유신 중에도 조선 건국에 저항]]한 사람들이 존재하니[* 사실 조준도 말이 좋아 권문세족이지 가문을 제외하면 신진사대부라는 카테고리에도 잘 들어맞기에 신진사대부로도 분류된다.] 조선 건국 참여 여부를 놓고 구분할 수도 없다. 원에 대한 입장에 서도 중국의 세력향방에 따라 달라졌지 일방적으로 친원 VS 친명으로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토지 문제에서도 마찬가지. 사대부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고만고만한 지주가 아니었다. 여기에 신진 사대부라고 분류된 인물들 대다수가 이르면 고려 초기부터, 늦어도 고려 중기 이후 중앙에 진출한 이른바 [[문벌귀족]]이라고 불리는 세력과 일치한다고 보기도 하며[*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1』 ,역사비평사, 2009, 217~218쪽][* 이 부분도 논쟁거리다. 고려의 기득권층이 문벌귀족인지 문벌관료인지는 학계에서 결론나지 않았다.] 이는 [[무신정변]] 이후 지방의 토착 세력들이 중앙에 진출하면서 세력을 이루었다는 기존의 학설과 대치된다. 게다가 이들의 세력은 [[원 간섭기]] 이후 집권한 세력들과 상당수가 교집합에 있기도 하다. 그래서 최신 논문일수록 신진사대부란 용어 대신 신흥 유신, 신흥 사류, 신진 관료 등의 대체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다. 신진 사대부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학자들은 여말선초 정치사 전공자가 아니거나 학부 교양 수준으로 설명하는 케이스다. 권문세족도 과거의 친원, 친불교, 보수 같은 정의 대신 원간섭기에 급성장한 세력들을 아울러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며 적극적으로 원에 영합한 세력은 부원세력으로 따로 구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