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종(송) (문단 편집) === 고려 === 송 신종의 외교적으로 가장 노력한 나라가 바로 고려다. 당시 고려와 송의 관계는 적대는 아니었으나 송태종이 고려 성종의 원군 요청을 거절한 1차 여요 전쟁 이후 공식적인 외교가 단절된 상태였다. 송나라 초기에는 요나라와의 긴장 국면을 해소하는데 고려의 역할을 크게 보지 않았으나 이는 송나라의 최대 실책 돌아왔다. 1차 여요 전쟁에서 서로 입장을 확인한 후 불안정한 견제 관계에 돌입한 요나라와 고려가 2차, 3차 전쟁 끝에 고려의 승리로 끝나며 고려가 국력을 증명하자 송나라 입장에서 고려는 요나라와 관계에 필요한 나라로 급부상했다.[* 당시 요나라 초기~전성기에 툭하면 기마병 20~30만을 조직하여 송나라를 대규모로 침공하는 요나라는 송에게 큰 위협이었고 그들이 송나라로 침공하지 못하도록 후방에 불안을 조성할 나라는 서쪽의 서하와 동쪽의 고려가 유이했다.] 송 신종은 즉위 이후 서하, 요나라와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하여 국력을 향상, 당대에 서하를 물리치고 요나라를 견제할 국력을 쌓아가고자 했는데 서하를 치기 위하여 요나라 방면을 안정화시키기 위하여 고려을 끌어들이는 '''연려제요'''[* 고려와 연합하여 요나라를 견제한다.]를 실시한다. 당시 문종의 치세에 국력이 치솟던 고려를 보며 요나라와 형식상 군신관계이나 송나라가 먼저 재수교를 제의하면 고려는 요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을 확신한 송 신종은 먼저 상인 황신을 보내 재수교의 의지를 강하게 보였고 문종이 화답하며 고려와 관계를 복원했다.[* 송나라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려 문종은 황신이 고려에 온 1068년보다 10년 전인 1058년에 재수교를 하려고 했지만 요나라와 관계를 걱정하던 신하들의 반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특히 고려의 입장에서는 송나라는 이미 군사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한 나라였기에 문종이 재수교 강행에 부담이 있었으나 송나라가 먼저 제의하자 고려 문종은 바로 재수교를 강행한다.] 비록 송 신종 사후 송나라, 요나라의 국력이 약해지며 고려와 관계 복원에서 원하던 요나라 공세적 견제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주변국이 전부 적국이던 당시 송나라는 북송이 멸망하던 때까지 고려와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수세적 견제로서 요나라가 흔들리기 시작하던 도종 시기부터 고려의 존재로 인한 후방 불안과 내부의 정치 다툼으로 요나라가 송나라에게 대군을 소집한 침공은 사라졌으니 신종의 최대 업적 중에 하나로 평가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