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종(고려) (문단 편집) == 기타 == * '최충헌 전용 [[허수아비(은어)|허수아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서 본인식의 정치를 하지 못해 군주로서의 총평을 매기기가 참 힘든 인물이다. 늙은 보령에 옥좌에 강제로 올라 아무 [[권력]]도 없었으며, 옥좌에서 내려오는 것마저 무신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해야 했다. 다음 대인 아들 [[희종(고려)|희종]]은 최충헌을 역으로 제거하려다 실패해('''수창궁 사변''') 폐위당한 뒤 [[유배]]당했고, 대신 즉위한 조카 [[강종(고려)|강종]](희종의 사촌형)도 삼촌과 사촌동생처럼 늘그막에 최충헌에 의해 강제로 [[왕위]]에 오른 뒤 건강 문제까지 겹치면서 얼마 못 가 붕어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여러모로 비운의 인생을 살다 간 [[임금]]이다. * 제25대 군주 [[충렬왕]]은 그의 증손녀 사위뻘이다. 충렬왕이 아직 태자 시절이던 1260년, 신종의 증손녀 [[정화궁주]] 왕씨를 태자비로 맞이했다. 그러나 [[원나라]]와의 오랜 전쟁이 끝나고 [[원 간섭기]]가 시작되면서 충렬왕은 결혼한지 14년이나 된 정화궁주를 두고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의 막내딸 [[제국대장공주]]를 [[왕비]]로 맞이해야 했다. 정화궁주는 제2비로 밀려나 갖은 수모를 당하며 살았다. * 신종의 7대 직계 후손이 바로 [[고려]] 최후의 군주인 [[공양왕]]이다. * 《[[동문선]]》 31권에 <함성절하표>(咸成節賀表) 곧 [[절일]] 함성절을 축하하는 표문이 남아 있다. '함성절'은 신종의 [[절일]]이다. 김극기란 신하가 썼으며 >'성상폐하'(聖上陛下)의 생일을 맞아 만국(萬國)이 조천하러 왔다. 고 표현했다. 신종을 바라보는 것을 '하늘을 바라본다'고 표현했다. * 《[[동문선]]》 116권에 신종의 친손자 회경공(懷敬公)의 <뇌사>(죽은 자를 추모하는 시)가 기록되어 있다. <뇌사>는 [[이규보]]가 칙령(勅令)을 받고 썼는데 회경공을 '천자지손'(天子之孫)이라 칭했다. 고종이 신종을 '성황'(聖皇)이라 한 것도 그렇고, 허수아비 임금치고는 사후 나름 우대받았다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