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오대사 (문단 편집) == 의의와 평가 == 원사료인 《구오대사》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신오대사》는 특이하게 《[[사기(역사책)|사기]]》와 더불어 <세가>가 쓰여 있다.[* 《구오대사》에서는 10국의 군주들을 <열전>으로 분류하며 각각 <참위 열전>과 <세습 열전>에 수록했다.] [* 본래 제후국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세가>였으나, 한나라 시절부터 사실상 독립적인 제후국이 사라졌기에 반고의 《한서》부터는 제후왕들 역시 <열전>에 기록되었다. 또 <세가>로 기록될만한 5호 16국시대의 나라들은 《진서》에 <재기>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기록되었기에 <세가>가 기록된 정사는 《사기》와 《신오대사》 둘이 전부이다.] 구양수는 지방에 파견나가 있을 때 《신오대사》를 편수했다. 그는 《[[춘추#s-4|춘추]]》의 필법을 이용했는데, 봉건적인 질서를 강조하는 부분이 적지 않게 있다. 또한 그의 필체 덕분에 글이 간결하고 구수하다. 그러나,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쓰인 《구오대사》와 달리 《신오대사》는 화이사상 내지는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그런 점에서 《신오대사》와 더불어 원사료인 《구오대사》를 필히 참고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대조영]]의 [[발해]] 건국을 다룬 내용을 보면, 《[[구당서]]》와 《[[신당서]]》의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비해서 《신오대사》의 내용은 상당히 차이가 있어서 [[천문령 전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동북공정]]이 이 책을 좋아합니다.~~ 그래도 후삼국시대와 고려사 연구에 있어 당대에 쓰인 사료이기 때문에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도 가치 있는 사료이다.[* 특히나 당대에 쓰인 사료이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 마치 초기 삼국시대와 가야, 백제의 역사를 더 잘 알기 위해 《삼국사기》보다 《한서》, 《후한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 《일본서기》를 주로 참고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