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안군 (문단 편집) == 역사 == || '''백제''' || '''신라''' || '''고려''' || '''조선''' || '''1896년~''' || '''1897년~''' || '''1910년~''' || '''1914년~''' || '''1949년~''' || '''1969년~''' || ||<|2> 물아혜군 ||<|2> 무안군 ||<|2> 물량군[br]무안군[br]무안현 ||<|2><-2> 무안군[br]무안현 ||<|2> 무안부 ||<|2> 목포부 || '''목포부''' ||<-2> '''목포시''' || ||<|2><-2> 무안군 || 무안군 || || 아차산현 || 압해군 || 장산현[br]육창현[br]임치현[br]압해현 || 나주목[br]광주목[br]지도군[br]영광군[br]해남현 ||<-3> 지도군 || 신안군 || 군 전체가 '''[[물량군]], [[남해군]], [[완도군]], [[진도군]], [[옹진군]], [[무안군]]'''처럼 전부 섬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나, 울릉군이랑 신안군을 제외하고는 전부 내륙과 가까이 있기에[남쪽 부분은 신도시 개발이 진행 중. ] 실질적인 생활 상으로는 [[울릉군]]과 함께, 단 둘 뿐인 군도이다. 단, [[지도읍]]은 간척으로 [[무안군]] 해제면과 붙어버려, 사실상 육지가 되었다. 2개읍(邑) 12개면(面)에 1,004개섬들로 이루어져 있다며, '천사섬'으로 자칭하나[* 신안군 홍보자료에 의하면 간척으로 섬이 합쳐지기 전을 기준으로 유인/무인도 외에 자잘한 섬까지 포함해서 섬 개수 1,004개(유인도 72개, 무인도 932개)라 지은 명칭.]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2236533|박우량 신안군수]]에 의하면 신안군에는 1,025개의 섬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틀렸다. [[삼국시대]]에는 원래 [[마한]]의 [[신미국]]을 중심으로 한 소국 연맹체인 [[침미다례]]의 영역이었다. [[침미다례]]는 독자적으로 중국에 사신을 파견할 정도로 상당히 세력이 있었으나, [[백제]]에게 정복 당한 뒤, 아차산현(阿次山縣)이 설치된다.[* 서울의 지명 아차산과는 다르며 한자도 다르다.] 백제 멸망 후 [[남북국시대]]엔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가,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 정책으로 개칭되면서, 압해군(壓海郡)으로 바뀌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압해도]]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당시에는 중심지였던 압해군을 중심으로 안파현(安波縣, 장산면), 갈도현(碣島縣, [[영광군]] 군남면), 염해현(鹽海縣, 영광군 백수읍)을 소속 영현으로 거느렸다. 즉 신라 때는 섬 바깥 육지 일부까지 거느리는 상당히 큰 행정 구역이었다. 이렇게 원래는 독자적 지역으로 존속했지만, 고려 말부터 [[왜구]]의 위협이 심해지고, 수많은 섬까지 행정 관리가 힘들어지자 시행한 공도(空島) 정책으로 원래 주민들은 육지로 옮겨 섬을 일부러 텅 비우고, 남은 섬은 전라도 지역의 여러 군현들이 나눠 관할했다. 그 중 대부분이 [[나주시|나주목]] 소속이었다. 이외에 [[영광군]], [[광주광역시|광주목]] 등도 이 지역을 관할했다. 이러한 경향은 [[갑오개혁]] 이전까지도 이어져, [[철종(조선)|철종]] 시대 지도인 [[대동여지도]]에서도 신안군 지역을 찾아보면 [[나주]]와, [[영광]]이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지도(智島)는 대놓고 '나주 땅'이라고 써있고 [[임자도]], [[증도]], [[고이도]] 등등은 행정 구역이 영광과 이어져 있다. 서쪽의 대부분 섬은 어디 소속인지 명기되어있지 않으나, 진도·해남·영암·무안·영광과는 경계선이 쳐져 있으므로 이곳과는 다른 고을 소속일 것으로 추정된다. 나주목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조선 후기엔 도서 지역답게 [[유배|유배지]]로 자주 활용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호남 지역에서 보기 힘든 성씨들도 꽤 보인다. 대표적으로 은진 송씨 집성촌[* [[송시열]]과 인척인 집단이 신안군으로 유배되었다.]과 강릉 유씨 집성촌, 안동 권씨 집성촌 등이 있다. 참고로 전라도 서부에서는 말 그대로 [[월경지]] 잔치를 볼 수가 있는데, 망운반도가 [[무안]]이 아닌 [[영광]]과 [[함평]] 땅이었다. 해제반도도 함평 땅이었지만 월경지는 아니다. 게다가, 목포진 근처에는 무안에 둘러싸인 나주목 월경지가 또 있고, 영암과 해남 쪽에는 진도군 월경지까지 보인다. 또한 해남반도 동부, 소안군도나 청산도, 추자도 등등은 영암군 월경지였고, 법성포는 영광이 아닌 월경지로 되어 있으며, 때문에 [[홍농]]은 [[영광군]]의 다른 지역과 이어지지 않게 됐다. 이렇게 일부러 [[월경지]]까지 만들어가며 가까운 무안현이 아닌 큰 고을들이 나눠 관할한 것은 각각의 고을들에서 각종 물자를 스스로 조달하기 위해 월경지를 두었던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다가 [[대한제국]] 시기에 이들 섬들을 하나로 묶어 '''지도군'''이라는 독립된 군을 설치한 것이 신안군의 본격적인 기원이다. 참고로 이때는 저멀리 고군산군도까지 전부 지도군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서 [[무안군]]이 지도군을 흡수하여 무안군의 일부였는데, 1969년에 도서 지역들을 다시 신안군으로 분리시켜 현재에 이른다(지도군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군청 소재지는 [[목포시]]에 있다가 2011년 압해도로 이전하였다. 그런데 주소가 압해읍 '''천사'''로 '''1,004'''.[* 원래는 신장길 61이었는데, 1004번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77번 국도 뿐만 아니라 작은 골목길까지 천사로로 지정했다. 덕분에 로급 도로이지만 기초번호가 부여되는 간격이 20m가 아니라 길급 도로와 같이 10 미터가 되어버렸다. 1,004가 되도록 도로구간을 끼워맞춘 게 신기할 지경.] [[다음 지도]]등에서 [[천사]]로의 선형을 검색해보면 기가 막히는데 구 도선장에서 출발해서 77번 국도를 잘 따라가다가 갑자기 동네 농로로 들어가서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온다음 다시 77번 국도로 복귀한다. 심지어 군청 입지 자체도 영 좋지 않다. 압해도의 중심지는 섬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데, 군청은 남동쪽에 치우쳐 있다. 압해대교 입구가 근처에 있어 타지에서의 접근성은 나쁘지 않은데, 정작 원래 압해도의 중심지와 신안의 주요 여객항으로 군내 교통의 요지인 송공항에서 떨어져 있어 정작 군민들이 군청을 이용하기에는 불편하다. 압해도 내에서는 농어촌버스를 이용한다고 해도, 아직 송공항행 여객선이 없는 군내 대다수의 섬들은 어떻게 하고? [[1969년]] [[무안군]]으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무안'''이라는 뜻에서 '''신안(新安)'''[* [[함경북도]] [[라선시|나진]]도 과거 이름이 '''신안'''이었고 '''한자도 같다.''' 또 [[신안 주씨]]의 시조 주잠이 정착한 나주와 인접한 지역이기도 하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즉 [[완주군]]이나 옛 [[청원군]]처럼 무안군과의 동질성만을 나타내기 위한 작위적인 지명. 무안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에 목포-무안-신안 통합 [[떡밥]]에 등장한다. 무안군민의 반대와 함께 2009년 여론조사때는 그나마 통합에 협조적이던 신안군민의 반대비율이 급격히 상승했으나, 2020년에는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신안군이 먼저 통합 제안을 해오면서 통합 떡밥이 재점화되고 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02072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