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센구미 (문단 편집) == 정체성 논란 == 한국에서는 2000년대 중후반 몇몇 블로그 글들을 통해 신센구미가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절 [[이정재(조직폭력배)|이정재]] 패거리와 비슷한 [[정치깡패]] 집단이라는 인식이 흔히 퍼져 있다. 이것은 신센구미를 기존 권력체계를 폭력으로 유지하려 한 집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메이지 정부는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의, 이른바 '[[삿초 동맹]]' 세력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낸 신정부이다. 이들이 교토에서 활동할 때 가장 큰 훼방꾼이 바로 신센구미였으며, 신센구미가 임무를 명목으로 수많은 양이지사들을 죽였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 이후 '막부의 개들'이라 불리며 신센구미에게 온갖 악역 이미지가 집중된 면도 있다. 실제로도 메이지 유신 이후 상당 기간 신센구미는 그 시대를 다룬 사극이나 역사소설에서 악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또한 신센구미 구성원들의 신분이 낮았던 것도 대부분 사족, [[화족]]으로 구성된 유신지사들과 대비되어 거칠게 묘사되는 데도 한몫했다.[* 그리고 역사적 인식이 얼마나 뜬금없이 형성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지만, 신선조를 다루는 대중매체가 한국에 대대로 들어온 시점이 2000년대 초반, 즉 야인시대 열풍이 한창 불고나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조폭코미디와 전반적으로 조폭물, 의협물에 대한 역풍이 불고 있던 시대적 문맥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면에선 애초에 신선조를 막부에서 인가받은 공무원 경찰이 아니라 유신지사들과 구별이 애매할정도로 낭만유협/사적폭력조직스럽게 묘사한 애니메이션, 만화들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신센구미는 교토의 치안유지를 위하여 조직된 '''막부 공인단체'''였다. 애당초 메인 스폰서가 교토 슈고쇼쿠(京都守護職. 막부가 임명한 교토의 치안책임자)를 맡았던 [[아이즈 번]] 번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松平容保). 신센구미에게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곧 교토 쇼고쇼쿠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였고, 나아가서는 당시 [[천황]]보다 센 권력이던 [[도쿠가와 막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였다. 그리고 소위 존왕양이, 유신지사를 칭한 이들도 별별 인물이나 세력이 뒤섞여 있었다. 일부 과격파들이 교토에서 벌인 행각을 보면, 존황사상을 주장하며 정작 [[금문의 변|왕궁에 총포를 쏘아대고 돌격하는 등 야만적 전투행위]]나 [[이케다야 사건|천황을 납치하고 교토를 불바다로 만드는 대방화 계획을 모의]]하는 [[테러리스트]]들도 있었는데,[* 유신지사를 칭하며 일반 서민들에게서 금품을 강탈하고 스스로 무사라면서 거리에서 인명을 마구 살상하는 일도 흔했다. 게다가 존양파 토막세력은 막부의 권위를 실추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며 이같이 민간에 대한 테러도 공공연히 옹호하기도 했다. 초대 국장 세리자와 카모가 존양파인데 그가 거리에서 양민을 상대로 이런 짓들을 하다 숙청당한 것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이런 집단을 상대로 신센구미도 무력 없이는 치안을 유지할 수 없었다. 참고로 신센구미 대원들은 대부분 사족 출신이 아니라 평범한 집안 출신들이었다. 대장인 곤도 이사미는 농민 출신으로 곤도 가에 양자로 들어가 천연이심류를 이어받았고, 부대장인 히지카타 도시조도 이시다 산약이라는 약을 팔던 농민 출신. 2번대장인 나가쿠라 신파치, 3번대장인 사이토 하지메와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탈번무사 출신이다. 그리고 10번대장 하라다 사노스케는 무가의 하인의 자식이었다. '최후의 무사-신센구미'에 실린 표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탈번무사 출신들이 가장 많고(28명), 평민 계층들의 수(20명)를 다 합치면 번듯한 번사 자제들(15명)보다 많다. 그런 신센구미의 임무는 대부분 치안유지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방첩활동이었고, 실제로 이 시절 신센구미 말고도 이른바 '구미' 상당수의 활동들은 막부 지지파의 [[민병대|의용군]]이 정식으로 번주의 스폰서를 받아서 한 활동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직 내부에서 피바람이 벌어지는 것 때문에 다소 수상쩍어 보이는 요소가 있지만, 이는 조직 내에 침투해 분열을 획책하는 [[존황양이]]파([[이토 카시타로]])나 조직을 정말 깡패 수준으로 만드는 수준 이하의 대원(세리자와 카모)을 비교적 정당하게 숙청한 거라 볼 여지도 있다. 게다가 조직원의 비행은 가차없이 처벌하거나, 비행을 일삼는 조직의 리더를 숙청하는 등 상당히 청렴한 자세를 견지했다. 또한 대부분 구성원들이 나고 자란 부슈([[무사시]], 현 [[도쿄도]])는 막부 직할령으로, 당대 백성들에게 자신들은 쇼군의 백성이라는 의식이 팽배해있었으며 그들의 눈에는 [[조정]]보다 막부가 더 높게 보였기 때문에 막부 측이었다는 게 이상하거나 잘못된 일인 것도 아니다. 특히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경우 에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기에 여차하면 즉시 징집이 가능하도록 관에서도 은연중에 상무정신을 강조하던 고장이었고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검술도장이 많았다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신선조 핵심인물들을 배출한 시위관이다.] 게다가 애초에 13대 쇼군 이에사다 대까지는 막부-조정 간 의전에서 막부 쪽이 우세하였다. 실제로도 신센구미에 대한 악평이 주류였던 시절에도 코단[* [[책상]]에 앉아서 [[부채]]를 휘두르며 이야기를 하는 일본 전통 예술 중 하나.]에서는 꾸준히 신센구미를 주인공으로 삼는 등 민간에서의 인기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막부를 타도한 조슈와 사쓰마는 상당히 구석진 지방이었기 때문에 일본 문화의 주류를 이루는 교토 및 [[에도]](도쿄) 등 대다수 민중은 막부를 동정하거나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구석이 있었고, 특히나 주 임무가 테러행위를 저지르는 유신 세력들을 저지하는 치안 유지였고 역사의 한켠으로 비장하게 사라진 신센구미는 동정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언더독 효과|호간비이키]]라고 하여 패자를 동정하고 영웅시하는 풍조가 있는 데다[* 호간비이키에서 호간은 그 유명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가리킨다. 요시츠네가 당시 천황으로부터 판관(호간) 벼슬을 받았기 때문. 그리고 이 때문에 요시츠네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요시츠네의 형이자 당대의 쇼군이었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직접 정부로부터 벼슬을 받는 것을 금했기 때문.], 그 패자가 하필 민중에게 인기가 많고 몹시 폼나는 데다 [[근대화]]의 물결 사이에서 분투하는 [[라스트 사무라이]]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신센구미는 일반 농민 출신이 많아서 그런가 근대화된 전술 및 무기에 그닥 편견이 없었고 준군사조직이 되면서부터는 총을 주무기로 삼았다. [[대중문화]]와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칼을 주무장으로 삼는 무사집단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다.][* 고증에 충실한 [[토탈 워: 쇼군2/사무라이의 몰락]] 같은 게임에서는 요원일 때는 치안유지와 방첩을, 군 유닛일 때는 [[전열보병]]처럼 전투하면서도 근접하면 무서운 공격력의 발도 돌격을 감행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요원으로 고용되는 신센구미는 초기의 신센구미, 군 유닛으로 양성되는 신센구미는 후기 보신전쟁의 잔류 신센구미로 볼 수 있다.][* 한국도 비슷한데 폐위된 [[광해군]], [[사도세자]] 등도 동정하고 영웅화되어 그려진다.] 또한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세워진 정부도 백성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는 정부는 아니었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을 바쿠한 체제에서 법치주의 등에 입각한 서구식 입헌국가로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인간사가 어디나 그러하듯 지도층에도 여러 입장과 인물이 뒤섞여있었다.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 강경 엘리트 지도층의 온갖 오판이 쌓여 벌어진 [[태평양 전쟁]]과 패전 후유증, 유례없는 원폭 응징까지 겪은 현대 일본인들은 평민 출신들로 나름 끝까지 막부에 대해 신념을 지키려 애쓴 신센구미를 보다 호의적, 동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래도 역시 우리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어"라는 자위적이면서도 소소한 반발심이 일어난 까닭으로 보는 역사가들도 있다. 이런 심리가 드러난 가장 이해가 쉬운 작품이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이다. 양심적인 유신지사 켄신은 시종일관 과격한 동료 지사들을 좋게 평가하지 않고 적이던 신센구미에게 오히려 더 큰 공감을 가진다. 신센구미 멤버였던 사이토 하지메는 유신 이후에도 치안 유지와 민중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물론 이건 주로 사실에 대한 가치 판단이 아니라 단순히 이미지의 문제이다. 대중은 그것이 설혹 틀렸을지라도 '상대적으로 강한 상대방에게 억압받으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우직할 정도로 노력한 것처럼 보이는' 어떤 세력이나 인물에 감정이입하여 그들을 어떻게든 좋게 봐주려고 노력하거나 '그 억압하는' 세력이나 인물을 증오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중들이 동정했으니 옳다는 말은 불쌍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말만큼이나 한심한 얘기니 대중이 동정했다는 것은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신센구미의 내부숙청이 항상 정당한 동기로 벌어졌던 것은 아니며, 곤도 일파가 신센구미의 전권을 쥐기 위한 정치투쟁의 성격도 있었다고 평가된다. 비행을 근거로 세리자와를 암살한 곤도 본인도 나가쿠라 등 간부들에게 여러 죄목으로 상부에 고소당한 적이 있는 등, 신센구미라는 조직 역시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청렴결백한 집단은 아니다. 실제로도 신센구미가 없어질 때까지 일치단결한 것도 아니다. 유명한 간부들 여럿도 신센구미 조직에 환멸을 느끼고 중간에 이탈했을 정도였다. 즉 검증된 자들만을 모은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주장마저 제멋대로라 조직 결속은 상당히 불안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다소 무리한 수단도 거듭 쓴 걸로 추정된다. 다만 신선조를 어찌 평가하던 간에 한동안 신선조 낭만화에 반발해서 나온 '정치깡패' 운운하는 주장은 옳지 않다. 신센구미의 과격성과는 별개로 신센구미 자체는 당시에 일본에서 정통성 있던 정권인 도쿠가와 막부에서 인정한 국가에서 공인한 치안기관이고 흔히 정치깡패라고 불리는 조직들이 그러듯이 유신지사들이 평화시위 하고 있는데 신선조가 정당성도 없이 막 죽이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무슨 되도않은 20세기 한국의 경험을 투영하면서 '민주화 투사 유신지사 때려잡는 막부 일본의 백골단' 수준으로 치환해서 보면 안 된다는 것. 애초에 당대에 일본 유신지사들 중에서는 존황, 양이를 내세우며 친막부 인사들이나 개국파, 외국인들을 암살하는 것조차 서슴치 않는 위험인물들이 많았다. 당장 막부말 역사만 하더라도 태반의 폭력사태, 상황의 급격화는 특히 조슈번 중심의 양이지사들이 먼저 도발하는 입장이었고 그 방식도 방화에, 백주대낮에 난도질, 외국인 습격 등 진짜 전형적인 사회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안지는 테러리스트들의 방식이었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토막세력이 역사의 승리자라서 고평가받는거지 혹시나마 막부가 당시 패권 경쟁에서 승리했거나, 그정도까지 가지도 않고 메이지 신정부의 주류 구성 세력만 조금만 달랐어도[* 과격화된 변방세력이었던 조슈, 사쓰마가 아니라 주류에 좀 더 가까웠지만 사상적으론 존황론의 고향이었던 미토 번이라던가...] 후대의 평가가 상당히 나빴을 것이다.[* 당장 현실에서도 이 시대를 다루는 작품치고 막상 진짜 역사의 승리자였던 야마가타, 이토 히로부미 같은 인물들을 그냥 곧이그대로 추겨새우면서 영웅시하는 대중문화 작품은 적어도 2020년대 현대 들어가선 진짜 보기 힘들다. 막부 말을 다루는 현대 창작물은 애초에 태반은 주역을 신선조나 아이즈번, 오우에쓰 열번 동맹 같은 시대의 패자였던 좌막파인게 더 많거나, 유신지사 측이 주인공이라도 [[사이고 다카모리]]같은 여전히 일본인 테이스트에 맞는 영웅적인 패자나 사카모토 료마, 다카스키 신사쿠처럼 꼰대 관료로 늙기 전에 요절한 청춘 풍운아 혁명가들을 좋아하고, 끝까지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오쿠보 도시미치]] 계열의 조슈 관료들은 예나 지금에나 대중문화에선 역사의 승리자지만 지사시절땐 폭력적이었고, 유신 이후엔 탐욕스럽고 고압적인 인물상으로 나오는게 태반이다. 그리고 이건 기본적으로 어느 사회에서나 대중문화는 늙어서 추한모습 보인 사회의 주류 꼰대보다 드라마틱한 패자, 청춘스타를 좋아하는 점도 있지만, 사회적으론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도 일본 서민들에겐 전혀 살기 좋은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사회정치적 문맥에서 양이지사 때려 잡는데는 막부 자체와 좌막파 번들의 힘을 합쳐 똑같이 칼 좀 쓰는 신선조 같은 집단을 창설한건 구조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런 '구미'들은 유신지사 측이 먼저 막부 인사들 상대로 암살을 저질러대서 방어적으로 만든 조직이며 막부가 이 시기의 통치주체였고 그 막부밑의 번주가 스폰서로 공식적으로 치안유지 권한을 부여한 집단이니 공무원 축에는 든다. 이런 저런 폄하나 미화를 제외하고 보면 오늘날로 따지면 신분으로 인해 출셋길이 막막했던 사람들 특채로 뽑아 조직한 지방직 경찰 특수부대 공무원+역사적으로 이런저런 난세에 등장하는 정치경찰이라 볼수 있다[* 이런식으로 분석하면 사실 현대 사회에서 신선조랑 가장 비슷한 조직은 막상 아시아에는 없고, 치안유지와 공안 사태에 특화된 준군사화된 경찰조직이란 점에서 유럽 나라들에 있는 각국의 [[헌병군]]이랑 비슷하다.]. 그러나 하필 막부말기라는 시대상이 워낙 막장이라 당시엔 테러리스트들이었던 유신지사들과 싸우느라 유명해진 케이스라고 보면 되겠다. 중기 이후로는 아에 에도 막부에 정식 소속된 군대이기도 했다. 괜히 현대 패러디 매체에서 신센구미를 '경찰' 취급하는 게 아니다. 정리하자면, '악질 정치 깡패'라는 평가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제국이 망할때까지 유신정부의 반대축이었던 이들을 죄다 역적으로 취급해 몰아간 것 뿐이지만, 그렇다고 대중문화 속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센구미가 마냥 낭만 속의 완전무결 청렴결백한 검객 집단이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 집단이나 모두가 한 방향을 보고 일치단결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미디어를 통해 비쳐진 '신센구미'의 모습은 상당히 미화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고 경찰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청렴하고 정의감 넘치는 경찰만 있는게 아니듯이 신센구미를 비롯한 막부말기의 구미 조직들도 그랬던 것이다. 다만 정치깡패란 폄하는 당장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폄하일 뿐이다. 그 역사적인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더라도 신선조는 어쨋든 당시 관에서 공인한 치안유지 공권력이었고, 사실 정치깡패는 적대했던 유신지사들에게 훨씬 더 적합한 멸칭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