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성우 (문단 편집) == 활동 == 1982년부터 밴드를 시작하여 여러 밴드와 언더그라운드 무대를 거친 후 1987년, 밴드 <부활>의 보컬로 참여하며 본격적인 음악을 시작했다. 데뷔는 1992년 1집 앨범 내일을 향해.[* 원래 [[부활(밴드)|부활]]의 리더 [[김태원(음악인)|김태원]]에게 발탁 되어 김태원이 당시 결성했던 밴드 GAME의 보컬로 영입, 앨범작업을 위한 곡 작업 중 음악 성향에 관한 견해차이로 탈퇴하였다. 당시 신성우는 새로운 밴드 이므로 정통 Rock 음악을 하길 원했으나 김태원은 부활 스타일의 음악을 고집했다. 그 후 밴드 [[카리스마]], [[작은하늘]]의 기타리스트였던 이근형, 이근상 형제의 [[작은하늘]] 3기 보컬로 합류 하였으나 제작사의 기획 변경으로 중추멤버를 주축으로 곡 작업을 한뒤 솔로로 데뷔하게 되었다.] '테리우스' 태그의 올바른 예시이다. 초콜릿 복근의 탄탄한 몸매,[* 사실 록커 활동시에는 그런 몸매는 아니었고, 꾸준한 운동을 통해 단련한 것이다.] 조각같은 외모, 키, 기럭지, 허스키한 목소리[* 원래는 미성의 고운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나 로커의 보이스를 만들기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의 연습으로 목소리를 바꾸었다고 한다.] 요즘 그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는 배우로 기억되고 있다. 데뷔 시절에는 같은 시기에 데뷔했던 [[이덕진]]과 함께 '''원조 테리우스''' 논쟁을 벌일 정도로 꽃미남 가수였다. 데뷔 때 부터 그가 하는 음악 보다는 그의 외모가 먼저 주목 받았는데, 동시기에 비슷한 컨셉으로 소비(?)되었던 이덕진과 비교해 본다면, 이덕진은 들국화 최성원의 기획 하에 그냥 곡 하나로만 주목받았던[* 그 당시 비슷한 스타일을 두고 경쟁구도를 만들어 이슈로 삼던 방송형태가 많았다,사실 음악 빼고 외모 덕을 본 건 이 사람이 더 하다면 더 했다.] 것에 비해 신성우의 경우 꾸준히 자신의 앨범에서 작사, 작곡을 해 오던 싱어송라이터였다. 즉, 신성우는 외모 때문에 그 음악성이 역차별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록커라고 불리는 [[신해철]], [[김경호]], [[박완규]] 등은 배고픈 수준을 넘어서 생존을 고민하다가 스스로의 정체성과는 조금 다른 대중적인 노래로 히트를 치고 메이저로 편입된 경우인데 신성우는 본인의 출중한 외모를 무기로 1집때에도 록밴드 보컬리스트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AR을 틀든 MR을 틀든, 무대에 오를 때는 언제나 자신의 밴드인 '내일뉴스'를 뒤에 배경으로라도 두었다. 한참 가요프로그램에선 '신성우와 내일뉴스'로 소개된 적도 있다. [* 실제로 1집은 기타리스트 이근형, 이근상 형제와의 공동작업이며 밴드 형태의 음반이다. 형인 밴드 ’카리스마’ 기타리스트 이근형의 프로듀스하에 동생인 이근상과 밴드 '작은하늘'로 데뷔하려고 했으나, 제작 중에 신성우의 솔로 앨범으로 변경 됐다는 얘기가 있다 '부활'의 '신성우'와 '작은하늘' 2기 보컬인 '김재기'가'서로의 밴드 자리를 바꾸면서 김재기는 '사랑할수록'을 발표, 이후 '작은하늘'은 '신성우' 솔로 앨범으로 기획 전환 하며 동생 이근상이 내일뉴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1집 앨범 뒷면에는 신성우, 그리고 드러머와 함께 사진도 실려있다.) 1집부터 5집까지 이 형제는 편곡자로서, 기타리스트로서, 몇곡에서는 공동작곡가로 꾸준히 크레딧을 올리고 있다.] 다행히 LA메탈 풍의 <내일을 향해>의 인기가 워낙 오래 갔기에, 앨범 활동도 오래 할 수 있었고, 1집 활동 막바지에는 발라드 <꿈 이라는건>도 소폭 히트했다. 활동 당시 신성우는 [[김경호]]가 후에 인터뷰에서 밝힌, 초창기 포크 음악을 하다가 신성우와 라디오 공개방송을 한후에 그의 모습을 보고 롹음악으로 쟝르를 바꿨다 라고 말할 정도의 무대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당시 대중들에게 퍼져있는 배고픈 락 뮤지션의 이미지 때문에 신성우는 오랜 밴드 음악 경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이 겉멋만 들어서 락커를 흉내내는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신성우 본인은 자신의 잘생긴 외모만 집중하는 그 시기 침통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이후 2집은 자기의 원류인 헤비메탈/하드록 성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복장도 헤비메탈 시대의 끝물인 LA메탈 시대 보컬리스트의 상징인 가죽점퍼/가죽바지/롱부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타이틀곡 <노을에 기댄 이유>는 마이너의 헤비한 록 발라드인데 그리 대중적인 곡은 아니었지만, 후반부의 샤우팅에서 신성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1집에 비해 영 신통치 않았고, 급하게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밝고 부드러운 미드템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건>으로 주력 노래를 바꾸면서 다시 인기를 회복한다. 2집에는 특이한 곡들도 많이 들어 있는데 [[핑크플로이드]]의 The Wall 을 연상시키는 첫 곡 <요람에서 무덤까지>, [[데이빗 커버데일]]의 솔로 시절을 연상시키는 피아노와 브래스 사운드가 가미된 셔플리듬의 록넘버 <민아의 일기>등 앨범 발매년도인 1993년을 무색케 하는 세련된 넘버 들로 가득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와 같은 실험 적인 곡들은 이후 ‘사랑한 후에’가 수록된 5집 앨범까지 추가적으로 발표 되었다. 신성우 3집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과 발표 시기가 거의 같았는데, 서태지와 비슷하게 얼터너티브 록으로 발매되었다. 실제로 몇몇 방송에서 서로를 '같은 실험적인 장르로 돌아온 동반자'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터너티브 록에 맞추어 춤을 춘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신성우는 제대로 록밴드의 형태를 갖추고 방송과 무대를 누빈다. 당시 활동에서 특이한 점은 타이틀곡으로 두 곡을 밀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카세트 테이프 기준 A면 첫번째 곡인 <기쁨이 될것을>, 다른 하나는 B면 첫 번째 곡인 <'''서시'''>. 업템포에 경쾌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면서도 실험적인 성격이 있어 많은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전자와 달리, 후자는 익히 알려진 서정성으로 금새 많은 인기를 끌었고, 결국 그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가 되었다.(역대 가요 중에 좋은 가사를 뽑는 순위에선 늘 상위에 랭크된다.) 그런데 묘하게 유명세를 잘 못타는 성격이 반영 되었는지 노래를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하고 아는 사람들도 제목이나 가수는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서시는 현재까지 넓은 연령대에서 불리워지는 명곡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도 노래방 애창곡 들중 항시 상위 랭크되어 있다. 참고로 <서시>는 신성우 본인이 앨범작업을 위해 합숙을 하며 곡들을 만들던 중 연습실 근처 감자탕 집에서 식사를 하고 연습실로 돌아온 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기타리스트 이근상이 친 코드진행에 영감을 받아 그 자리에서 원 테이크로 만들어 졌다고 전해진다. 사실 3집 또한 <서시> 한 곡을 제외하곤 대중적인 앨범으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본인의 말마따나 정통 얼터너티브록 앨범이다.[* 록음악 팬이 아닌 TV에서 서시 나 내일을 향해 등의 팝 성향의 히트곡으로 그를 처음 접한 팬들은 앨범 구매후, 한 두곡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중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실험적인 넘버들에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그를 폄하 하던 록매니아들은 그의 앨범을 접하고 나서는 그의 외모에 가려진 음악성을 안타까워 했다.] <초연>은 퍼즈톤이 두드러지는 질펀한 블루스 록이며, <천사여 울지 마세요>는 그런지가 구현할 수 있는 따뜻함과 온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건달의 허세>는 얼핏 코믹하지만 당시에도 존재했던 취업난을 풍자하여 작은 인기를 끌어서 2000년대로 넘어와 (신성우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플래시 영상물로도 만들어졌다. 이후 신성우는 [[015B]]의 [[장호일]], [[N.EX.T]]의 멤버였던 이동규와 함께 프로젝트 밴드 '[[지니#s-10]]'를 결성해서 펑크 롹 쟝르의'뭐야 이건'과 '바른생활'이라는 곡을 히트시켰다. 1996년 발표한 신성우 4집은 녹음을 진행한 영국에서 오페라의 유령,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캐츠의 작곡가로 유명한 거장 엔드류 로이드 베버와 전설의 롹밴드 Stone Roses의 기획사인 SGO에서 영국에 머물며 활동할것을 권유까지 할 정도로 그의 음악적 역량이 절정에 오른 시절이었으며, 1998년 발표한 5집에는 그의 노래 중 서시와 더불어 가장 히트한 곡 '사랑한 후에'가 실려있다. 1998년엔 '드라큘라'로 뮤지컬을 시작, 활동 영역을 확장했으며 1999년 'Rock햄릿' 이후부터는 아예 뮤지컬 배우로 전환하여 '삼총사', '모짜르트 오페라 롹', '체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하루', '메피스토', '아이언 마스크' 에 이르기까지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잭 더 리퍼'의 잭. '락 오브 에이즈'의 스테이시로 캐스팅되어 폭풍 간지를 선보였다. 뮤지컬 배우로서의 행보는 진행 중이며, 현재 [[백석대학교]] 문화예술학부 뮤지컬 전공 전임교수로 2016년 부터 재직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뮤지컬 배우 외에도 연기자로서 활약하고 있으며,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사실상 [[진 주인공]]인데다가 연기도 괜찮았고 김선경과 로맨스 호흡도 상당히 잘 맞았다. [[김광규(배우)|김광규]]와 함께 최고의 인기 캐릭터.], 드라마 [[첫사랑]], [[위기의 남자]], [[위풍당당 그녀]], [[12월의 열대야]], [[디어 마이 프렌즈]] 등 20여편이 넘는 [[드라마]]에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예능 프로그램]] [[룸메이트(방송)|룸메이트]]에 나와 신엄마로 불린다. 크크섬의 비밀에 같이 나온 배우 [[김광규(배우)|김광규]]와는 이웃사촌으로 무척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2015년 드라마 [[엄마(드라마)|엄마]]에서 민태헌 역을 맡아 연기자로 복귀했다.무사 백동수와 영화 결혼식후에 [[OST]]도 불렀다. 그리고 [[무림학교]], [[디어 마이 프렌즈]], [[위대한 유혹자]] 등에도 출현하였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이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