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문왕 (문단 편집) == 평가 == 11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재위 기간을 보냈음에도 강력한 임팩트를 남긴 군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지지않을만큼 뛰어난 [[명군]]이다. 특히 할아버지 [[태종 무열왕]]과 아버지 [[문무왕]]이 오랜 난세를 끝내고 통일신라라는 한반도 [[왕조]]의 형태를 갖춘 [[창업군주]]형에 가까웠다면 [[숙청]]을 기반으로 한 [[왕권]] 강화책이나 행정 제도의 정비라는 업적을 보면 수성형 [[군주]]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문무왕은 [[나당전쟁]]에서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 바깥으로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수하는데 성공했지만 오랜 전란 과정 속에서 [[전쟁 영웅]]과 [[공신]] 세력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졌고[* 기나긴 전란 끝에 [[평화]]가 찾아오면 평화의 시대에는 필요가 없는 그동안 쌓여온 [[군인]]과 공신들은 [[나라]]의 골칫거리가 된다.] [[외교]]도 불안정했으며 옛 [[고구려]]계와 [[백제]]계 유민들은 아직 신라의 체제에 완전히 편입되지도 않은 상태에 국토는 [[삼국통일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상태였다. 보위를 계승한 신문왕은 자신이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잘 알았고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정비해 통일신라라는 나라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이 때 [[발해]]는 아직 [[건국]]되지 않았고 당나라는 [[측천무후]]가 [[황제]]가 되기 위해 국정을 흔들고 있는 시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8세기 중엽까지 지속되는 통일신라 [[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한 [[명군]]이지만 통일 전쟁기의 공신들도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숙청한 진골 [[귀족]] 세력들과 관련된 [[왕비]]까지 폐출시켰던 무시무시한 임금이기도 하다. 철혈 명군으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통일신라의 기틀을 굳건히 다지는 한편 문화 면에서도 뚜렷한 업적을 남긴 만큼 오늘날 [[국사]] 교육 과정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김흠돌의 난]] 토벌 교서에서 밝히기를 문무왕의 숭고한 기틀을 받아 지키느라 먹을 것도 잊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든다고 하고 있으므로 비교적 이른 붕어의 원인은 [[과로]]였을 가능성도 높다. 그런 가능성이 있는게 왕권이 강할수록 왕 자신이 직접 손볼 일이 많아진다. 다만 신라 [[왕실]]에 만연하던 근친혼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후대 왕들은 대부분 신문왕보다도 훨씬 명이 짧았는데 물론 이건 자기네들끼리 왕 자리 놓고 권력 투쟁하다가 서로 칼로 죽인 탓.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군이 이긴 것은 [[안동도호부]]로 대표되는 당나라의 동북방 군대들이었고 당나라의 주력 부대들은 이 시기에 관중에서 [[토번]]과 싸우고 있었다. 이 때 시기적으로 강성해진 토번이 서역과 관중 일대를 위협하자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했던 부대들을 일부 돌려서 관중 일대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의 시기는 후대 [[성덕왕]] 시기에 가서야 당나라와 외교 관계가 정상화되고 [[패강]] 이남의 지배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라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신라가 이미 영역화하고 있었기에 당나라의 인정 유무가 상관은 없지만 명목상이나마 인정한 것은 옛 백제 지역과 [[평양시|평양]] 이남 지역을 공격하지 않겠다라는 약속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만주]]에 발해가 건국되면서 당나라가 [[육지]]로 올 가능성이 없어진 상황과 발해를 견제하려는 [[이이제이]] 전략의 일환이기는 하지만 신라로서는 진정한 [[종전]] 선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신문(神文)·효소(孝昭)·성덕(聖德)은 간신히 수성(守成)할 수 있었고(후략) 대개 신문왕(神文王) 이후로는 순박함이 없어지고 난적(亂賊)이 뒤를 이어 그 화가 만연(蔓延)됨이 이에 이르러 심화되었습니다." 다만 《[[동국통감]]》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90636&categoryId=49614&cid=49614|평가]]는 위에서 소개했듯이 나라를 겨우겨우 유지한 왕이라는 평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