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명기 (문단 편집) == 개요 ==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문설주와 대문에 써 붙여라. >---- >신명기 6장 4-9절[* 인용한 이 구절을 [[유대교]]에선 '셰마'(Shema, 들어라)라고 하며, 날마다 외워야 한다. 또한 이 구절에서 명령한 대로 이 구절이 적힌 쪽지를 담은 통(Mezuzah)을 대문 위에 달아놓아고 기도 시에는 문자 그대로 이 구절을 지키기 위해 이 구절을 담은 작은 통(테필린)을 끈으로 이마와 왼팔에 묶고 기도해야 한다. 심지어 [[하레디]]들은 일상생활 중에도 테필린을 착용하고 [[:파일:탈리트테필린.jpg|생활할 정도이다.]]] ([[공동번역 성서]])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한 땅이다. 이렇게 너의 눈으로 보게는 해준다마는, 너는 저리로 건너가지 못한다." >야훼의 종 모세는 그 곳 모압 땅에서 야훼의 말씀대로 죽어 >모압 땅에 있는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묻혔는데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오늘까지 아무도 모른다. >그 후로 이스라엘에는 두 번 다시 모세와 같은 예언자, 야훼와 얼굴을 마주보면서 사귀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다. >---- >신명기 34장 4-6, 10절 ([[공동번역 성서]]) [[성경]]의 5번째 권. [[토라|모세오경]]의 마지막 권에 해당되는 책이다. 신명(申命)이란 계명(誡命)을 거듭 되풀이하여 알려준다는 뜻이다. 또한 [[예수]]가 [[광야의 유혹|사탄의 세 가지 유혹]]을 뿌리친 세 가지 말씀 모두 신명기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기도 하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얘기한다. 이는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렙하고 여호수아 빼고 [[야훼|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었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방황하던 끝에, [[야훼|하나님]]을 의심했던 1세대 백성들은 모두 늙어 죽고 새로 태어난 세대들에게 경계를 삼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문학 유형으로 보자면, 법전인 동시에 모세의 유언이라[* 구약성경에서 유언은 매우 큰 의미를 지녔다.(창세 27장; 48장 9-16절; 50장 24절; 여호 23장; 2사무 23장; 1열왕 2장 1-3절; 2열왕 13장 14-18절; 토빗 14장 참조)]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신명기의 많은 부분이 [[출애굽기]]와 겹치기도 하고, [[창세기]]와 출애굽기처럼 극적인 에피소드도 없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신명기보다는 창세기나 출애굽기에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보자면 신명기의 위상은 Die Mitte des Alten Testaments(구약 성경의 중심)이며, 원숙한 신학뿐만이 아니라 문체적인 면에서도 매우 가치가 높다. >신명기의 언어는 수사학적으로 매우 세련된 산문이다. 이 언어는 삽입된 부문장들 위에 증축된 매우 팽팽한 복합문들의 물결치는 운율을 애호하고, 일종의 산문 박자{{{-2 Prosametrum}}}에 정통하며, 본문을 수사학상 '이야기 열{{{-2 列}}}들'{{{-2 (특히 마소라 본문 이전 독서 전통의 중간 휴지 형식에 의해 확인된다)}}}로 구분하고, 차례로 조화시킨 낱말 집합·조어{{{-2 造語}}}·잦은 불완전 운각[* 시부(詩賦) 따위에서, 글귀 끝부분에 다는 운자. 각운과 비슷한 의미이다. ]{{{-2 韻脚}}}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조화와 암시적 효과를 지닌 엄숙한 인상을 준다. 표제어 반복과 주도 낱말 체계들이 개개 본문군{{{-2 群}}}을 조직하고, 다른 본문군과 함께 묶는다. 동기 부여와 근거 제시가 청중을 설득하려 애쓰며, 극히 합리적인 논증이 전개되고,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정식{{{-2 定式}}}을 통해 청중의 의식 속에 기억되며, 특히 일곱 또는 그 몇 배의 전거에 의해 강조된다. …… 많은 점을 미루어 볼 때, 신명기 편저자들은 문학뿐 아니라 신학과 법에도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던 예루살렘의 주도적 엘리트 동아리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본원적 정체성으로 복귀시키고자 했던, 주로 제의와 정치에 정향된 개혁 운동을 떠받쳤다. 예컨대 '율법서'의 발견{{{-2 (2열왕 22-23장)}}} 당시, 임금의 가장 중요한 두 관리였던 대사제 힐키야와 서기관 사판이 결정적으로 관여했다. 나중에 예레미야 예언자가 사관 집단{{{-2 (특히 게달리야)}}}과 연결되었다. 나아가 신명기의 산문은 궁정의 문체 그리고 지혜 문학의 언어{{{-2 (아마도 특히 고급 관리 사회에서 많이 사용되었다)}}}와의 관련성도 보여 준다. >---- >게오르크 브라울리크{{{-2 G. Braulik}}} OSB, "신명기", 에리히 쳉어{{{-2 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2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241-242쪽 >신명기는 흔히 __'구약 성경의 중심'__이라 지칭되니, 구약 성경이 문학사와 종교사의 시기·내용상의 기준점이요 이스라엘의 법·역사·예언에 대한 이해를 지속적으로 규정지었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구약 정경 형성에서 열쇠 역할을 수행하며, 아니 '결정점'{{{-2 結晶點}}}을 형성하며, 나아가 토라라는 개념과 더불어 정경의 '핵 안의 핵'을 이루고 있다. >---- >게오르크 브라울리크, 같은 책. 255쪽 >일차적인 테 두르기를 통해 설정된 바로 이 해석학적 상황 속에서 신명기는 '야훼의 배타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이는 히브리어로 네 개의 단어만을 내포하는 그야말로 간결하면서도 프로그램적인 형태를 띤다{{{-2 (6,4)}}}.[* (발췌자 주석) 6장 4절의 신앙고백:[br] '''"[ruby(YHWH, ruby=야훼)] [ruby(eloheinu, ruby=우리-엘로힘)] [ruby(YHWH, ruby=야훼)] [ruby(echad, ruby=유일)]"'''[br]이 네 글자 신앙고백은 다음 두 가지로 번역 가능하다. ①'''"[ruby(주, ruby=야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ruby(주님, ruby=야훼)]이시다.'''" {{{-2 (가톨릭 새번역. 유사 번역: 개역성경)}}} ②'''"[ruby(주님, ruby=야훼)]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ruby(주님, ruby=야훼)]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2 (개신교 새번역. 유사 번역: 공동번역)}}}] 야훼의 '유일성'은 아직은 유일신 고백은 아니나, 중요한 예비 요소에 해당한다. 신명기의 최후 편집은 한편 다른 신들의 존재를 명백하게 거부하면서 철저한 '유일신 신앙'을 표명한다. "야훼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다"{{{-2 (4,39)}}}. 민족의 하느님이 궁극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하느님, 온 인류의 하느님이 되기 위하여 '보편화된다'. __이러한 관점에서 신명기는 진정 '구약 성경의 중심'과 유일신적인 성경의 [[유대교|두]] [[그리스도교|종교]]를 위한 근본적인 문헌을 이룬다.__ >---- >Martin Rose, "신명기", Th. 뢰머{{{-2 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2 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1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434쪽 '신명기는 출애굽기 후반부의 반복인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책인가?'이라는 생각이 나올 수 있으나, 후대의 수용이라는 맥락에서 보더라도, 유대교에서든 그리스도교에서든 매우 중요한 책이다. >유다교에서 신명기는 오경을 맺는 책, 곧 '토라의 완성'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탈출기에서 맺은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계약은 신명기의 권고와 많은 규정들로써 완성된다. 신명기에서 제시하는 삶, 곧 광야에서 계명을 지키며 장차 하느님이 주실 땅을 희망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유다인들의 운명이다. 신명기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곧 어디에 있든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삶 그 자체가 절대적임을 잘 표현한다. >라삐 시대 유다교 형성의 기초를 제공한 책도 신명기다. 라삐들의 613개의 계명 가운데 200개 정도가 직접적으로 신명기에 기반을 두었다. 특히 기원후에 라삐들은 신명 17,11을 독특하게 성찰하여, 필요한 상황이 되면 율법을 만들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이 해석은 훗날 유다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유다교 라삐들이 구약성경에 들어있지 않은 율법을 상황에 따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신명기는 현대 유다교의 믿음과 실천에도 큰 영향력을 지닌다. 지금도 유다인들은 신명 6,4-9과 11,13-21을 매일 두 번씩 바쳐야 한다. 유다교의 핵심 전례문이자 토라를 읽기 전에 암송하는 또 다른 '셰마'는 신명 31,11에, 식사 후 바치는 기도(바르캇 하마존)는 신명 8,10에 기반한다. 이 밖에도 중요한 기도문에 인용된 신명기의 구절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이른바 '교육 신경'(6,20-25)은 유다인 어린이 교육에서 중요하며, 미쉬나에 따르면 '역사 신경'(26,5-8)과 미드라쉬적 해석은 학가다의 핵심이다. >유다교의 전례 또한 신명기에 기반하고 있다. 유다교 전례력의 중요 절기는 신명기에 설명되어 있다.(1,3) 또한 제2성전이 파괴된 뒤, 유다인들은 희생제를 멀리하고, 토라를 즐겨 읽으며,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신명기의 신학에 기반해서 전례를 발전시켰다. 그 밖에 수많은 기도문이 신명기에 기반한다. >특히 유다교 특유의 사상, 곧 유일신, '거룩한 책(=토라)' 중심의 종교 등이 신명기에 신학적 근거를 둔다. 중세의 위대한 라삐 마이모니데스가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 신명기다. 그의 대표작인 『미셔네 토라』{{{-2 מִשְׁנֵה תּוֹרָה}}}의 제목은 '신명기'를 따라 붙인 것이다. 사제 등 특정한 계층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토라를 읽어야 하고 아이들에게도 늘 가르쳐야 한다는 사상도 신명기에 기반하고 있다(신명 5,1; 6,7). 지금도 전통적인 가정에서 아이들이 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맨 처음 가르치는 말이 다음의 신명 6,4와 33,4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야곱의 모임에 소유로 준 것이다." >---- >주원준,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5: 신명기》, 바오로딸, 2016, 38-40쪽 >마르코 복음서 12,28-30에 따르면 예수는, 하느님과의 계약의 이 근본 원칙 ― '백성으로서, 회중(교회)으로서 하느님 사랑하기'―을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는 계명'이라 언명했다. 특히 요한계 문서들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2 (요한 5,42)}}} 또는 예수에 대한 사랑{{{-2 (요한 8,42)}}}이라는 이 주 계명을 강조하고, 또 이것과 '계명 준수'의 결부를 강조한다{{{-2 (요한 14,15.21.23-24; 참조: 1요한 4,2-3)}}}. >구원의 구체적 양상으로서, 특히 구원의 사회적 차원의 설계로서 토라는 '새 계약'에서도 핵심으로 남아 있다{{{-2 비교 참조: 예레 31,33과 신명 30,1-14}}}. 토라는 세부 내용에서는 변하지만{{{-2 (이는 이미 신명기 자체 내의 법규들 수정과 보완이 보여 준다)}}}, 또 따라서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사회적 의도도 바뀌지만, 창조 질서에서 떨어져 나가 죄에 예속된 세상의 사회적 설계들에 맞선 토라의 대안은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있다. 산상 설교{{{-2 (마태 5-7)}}}조차 새로운 토라를 선포하지 않고 토라의 완전한 성취{{{-2 (5,48 참조)}}}, "더 큰 의로움"{{{-2 (5,20)}}}을 선포하거니와, 이것을 산상 설교는 예수 추종에서 발견한다{{{-2 (5,17-20)}}}. >바오로의 율법 신학과 의인론은 사유 과정, 인용{{{-2 (예: 로마 10,6-9는 신명 30,12-14를 인용하는데, 신명 30,1-10의 지평을 염두에 둔 적절한 인용이다)}}} 그리고 개념 정형화{{{-2 [예: "자기의 의로움"(로마 10,3; 참조: 신명 9,4)]}}}에서 무엇보다 신명기를 전제하고 있다. 신명기 각색층{{{-2 脚色層}}}들이 이미 '율법과 복음'의 변증법을 전개한다. 예컨대 신명기 6,24-25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계명을 실천하는 것은 이스라엘 구원의 일부다.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이집트 탈출로 선사받은 자유를 구현하고, 또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신명기 9장에서는 죄인들의 의인{{{-2 義認}}}이 가나안 민족들을 대적한 이스라엘의 전쟁 안에 암호화되어 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자기의 의로움"{{{-2 (9,4)}}}에 힘입어서는 이길 수 없는 소송처럼 보인다. 과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의 끊임없는 반항, 특히 호렙에서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진노의 심판에 떨어지지 않고 약속이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비로운 은총 덕분이니, 하느님은 모세의 간절한 대청{{{-2 代請}}}으로 우두머리 조상에게 하셨던 맹세를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의 죄과를 용서하신다. 30장에서는 하느님이 죄스러운 이스라엘에게 마련해 놓으신 "마음의 할례"{{{-2 (30,6)}}}가 언급되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회심을, 그리고 사랑의 계명을 비롯한 토라의 모든 계명의 준수를, 또 그로써 자기 하느님과 함께하는 새롭고 복된 삶을 가능케 해 준다. 신약 성경의 새로운 면으로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사건을 하느님 구원 행동의 구체적 형태로 들여오며, 또한 (다른 구약 성경 텍스트와 연계하여) 이방인들도 의인{{{-2 義認}}}이라는 하느님 백성의 차원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 >게오르크 브라울리크, 같은 책, 264-265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