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라/역사 (문단 편집) == 중앙집권화와 국력 강화 == [[지증왕]](재위 500년 ~ 514년)과 [[법흥왕]](재위 514년 ~ 540년) 때 국가 체제의 정비, 불교의 수용과 장려, 왕권 강화, 영토 확장 등의 국가적 사업을 연이어 성공하며 중앙 집권 국가로 변모하였고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다. [[지증왕]](재위 500년 ~ 514년) 대에 대대적으로 체제를 정비하고 국력 강화를 이루었다. 503년 국호를 정식으로 "신라"로 확정하고[* 이전에 사로, 사라, 신라 등이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신라'는 이미 377년과 382년 신라 사신이 [[전진(오호십육국시대|전진]]을 방문했을 때 '신라'라는 국호로 표기된 만큼 이전에도 어느정도 대표성있는 국명이지 절대 지증왕 시기에 등장한 신생 국명이 아니다.], 마립간 대신 왕(王)을 칭했는데 이는 '간' 중에서 우두머리인 마립간 대신 '간'을 초월한 그 위의 지위를 못박은 것이다. 또 관등 정비(503년), 상복 제정(504년) 등을 통해 체제를 정비했고 지방 제도를 개편했다(505년). 아울러 502년 우경법을 실시하여 식량 생산이 크게 증대되어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다. 국방력 강화에도 힘을 써 12개의 성을 축조했고, 동시전도 설치했으며(509년), [[이사부]]가 지휘하는 [[수군]]을 보내 [[우산국]]([[울릉도]])를 복속시켰다(512년). [[법흥왕]](재위 514년 ~ 540년) 때는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크게 강화하여 영토를 확장하면서 중앙 집권 국가로 변모해 나갔다. 516년 법흥왕은 병부(兵部, 오늘날의 국방부)를 설치하고 병부의 장관인 [[병부령]](兵部令)을 임명하여 군 체계를 정비하고 군사력을 강화했다. 520년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했다. 527년에는 [[이차돈]]의 [[순교]]를 통해 [[불교]]를 공인했는데, 왕족을 [[석가]]족과 동일시하면서 왕권을 강화해 나갔고, 동시에 토속 신앙의 제사장이었던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531년에는 [[상대등]] 직위를 신설하여 귀족 대표를 관료 체계에 포함시켜서 귀족 세력을 왕권에 복속시켰다. 532년에는 가야연맹의 중심 국가인 [[금관국|금관가야]]를 병합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이러한 국력 신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법흥왕은 536년 마침내 건원(建元)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 법흥왕 때 제정된 신라의 연호는 648년 나당동맹이 체결될 때까지 지속된다. 나당동맹 체결 당시 당나라가 연호의 폐지를 요구했고 신라가 이를 수용했던 것. 신라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국가다.]하였다. 이처럼 지증왕과 법흥왕의 치세를 거치며 국력이 탄탄해진 신라는 차기 진흥왕 때 전성기에 이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