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라 (문단 편집) == 개요 == || [[파일:external/cineaste.co.kr/14010711162408_cd500eb86897c4e0324a540a3e6844cb.jpg|width=70%]] ||[[파일:/image/003/2007/07/18/NISI20070718_0004825592_web.jpg|width=100%]] || ||<:> {{{#000000 {{{-1 통일신라 시기 서라벌 상상도[* [[강]]([[해자]]) 위, [[숲]] 아래가 [[법궁]]인 [[경주 월성]]이다. 그 위쪽 일부는 [[북궁]]이다. 또한 시가지 중간중간에 지붕이 누런 집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금|황금]]을 [[기와]] 모양으로 만든 것을 올린 [[기와집]]인 [[금입택]]이다.]}}}}}} ||<:> {{{#000000 {{{-1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의 궁궐터 [[경주 월성|월성]][br]([[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16호)}}}}}} || '''신라'''(新羅)는 [[고대]] [[한반도]]에 존재했던 군주제 국가이다. 약 1천 년간 56명의 군주를 거치며 [[한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존속하여 '''천년왕국'''이라는 별명과 함께 화려한 황금 문화로도 알려져 있어 '''황금의 나라'''라고도 불린다. [[삼국시대]]의 세 [[고구려|나]][[백제|라]] 중 [[영남|동남쪽]]에서 시작[* 신라의 시초는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사로국]]이다.]했으며 《[[삼국사기]]》의 서술에 따르면 고대 한반도에 존재한 [[삼국]] 중 가장 빨리 건국됐다. [[삼국통일전쟁]] 끝에 [[백제]] 전역과 [[고구려]] 중남부[* [[패서]] 지역.]를 병합한 이후 [[삼국통일]] 의식을 바탕으로 한반도 대부분 지역을 지배했다. [[676년]] 이후의 [[남북국시대]]의 신라는 '''[[통일신라]]'''라고 불린다. [[나당전쟁]]에서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내고 통일을 이룬 뒤로는 강력한 군사력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강국이자 부국으로 거듭나 [[청해진|남해와 동중국해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했으며, 불교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당대 아시아에서 [[당나라|중국]]과 더불어 가장 화려한 불교 문화를 꽃피운 바 있다. 옛날 신라의 경제적 풍요로움과 문화적 번성함은 멀리 [[서역]]까지 알려져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들 사이에서도 [[이상향]]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다가 9세기 말에 이르러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나머지 다시 [[후삼국시대|후삼국]]으로 분열되었으며 종국에는 [[태조(고려)|왕건]]을 필두로 한 [[고구려부흥운동|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고려]]에 의해 병합되었다. 신라정통론(新羅正統論)적 입장에서는 신라의 [[삼한일통]] 사상을 이후 [[고려]] 왕조가 계승한 것이 훗날 [[한민족]] 의식으로 발달하였다고 보아 삼한일통 사상을 한민족의 의식의 원형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 왕조는 국가 공인 관찬사서인 《[[삼국사기]]》나 그에 준하는 《[[삼국유사]]》에서 신라가 과거 통일을 했었음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신라의 삼국통일은 불완전,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진정한 통일로 봤기 때문에 신라의 통일을 정통으로 봤다면 삼국사기 이후에 등장했어야 할 신라사를 따로 저술하진 않았다. 중국사의 관찬사서인 [[24서]]와 비교해보면 중국 삼국시대 및 이후에 대한 관찬사서는 [[삼국지]]에서 [[진서]]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여기서 [[조위]]만을 정통으로 보아 본기로 넣고 촉한과 동오는 세가로 넣었으며, 통일 왕조로서의 [[서진]]사를 따로 저술하였다. 이에 비해 고려는 삼국 모두를 정통으로 보아 본기로 저술, 직후 고려 왕조로 이어지게 서술하여 고려야말로 중국의 서진 왕조처럼 그 모두를 완전히 싹 다 통합한 진정한 정통 왕조라는 입장이었다.][* 다만 [[한민족]]의 정체성은 [[고구려부흥운동]]의 한 갈래였던 고려의 후삼국 통일로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신라가 아닌 고구려쪽에 가깝게 단일화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