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돈 (문단 편집) == 기타 == * [[일제강점기]]까지도 신돈은 제정 [[러시아]]의 [[그리고리 라스푸틴]]마냥 [[정력]]의 상징쯤으로 취급되었다.대표적인 예가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이다. 작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관계한 여인의 수효에 대하여..(중략)..스무 서너 살에 벌써 200명은 넘으리라는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서른 살 때는 벌써 괴승 신돈이를 멀리 눈 아래로 굽어 보았을 것입니다." * 공민왕이 내린 [[작위]]는 '진평후'(眞平侯)인데 작호가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과 똑같다. 이후 다시 내린 봉호는 '취성부원군'(鷲城府院君)으로 봉지 '취성'(鷲城)은 현 [[대한민국]]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이다. * 공민왕이 '신돈'이라는 이름과 함께 준 호는 '청한거사'이다. [[원효]]도 스스로를 '소성거사'라 칭했고, [[국조(고려)|국조]] 보육도 '거사'라 칭했다. * 전래에 따르면 봉황은 왕을 상징하는 영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신돈은 봉황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1939078?sid=103|오동도의 무성한 오동나무 숲]]'''에서 무리지어 살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새로운 임금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 안의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려 당시까지 전해오던 `오동도의 명성'을 지워버렸다. 신돈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https://ncms.nculture.org/traditional-stories/story/748|전라도 출신의 전주 이씨인 이성계]]'''에 의해 망하고 말았으니 결국엔 오동나무가 없는 오동도가 된지 오래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