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 (문단 편집) === [[일신론]]의 발달 === 그러다가 페르시아에 [[조로아스터교]]가 생겨나는데, 이 종교는 선신과 악신으로 나뉘는 이신론(二神論)을 주장하며 나머지 모든 신을 거짓 신, 혹은 아후라 마즈다의 부하로서 신격을 하사받은 존재로 단정지었다. 이렇게 최소 몇 명 최대 수십 명 이상에 이르는 신이 조로아스터교를 시작으로 제대로 된 신은 소수로 축약되며 그 외는 이런 소수의 신의 부하인 존재로 정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표적으로 [[야훼]]를 믿는 [[유대교]]와 같은 유일신 사상이 생겨났다. 유대인들은 [[성경]]에 의하면 [[모세]] 때문에 [[야훼]]라는 신만을 믿기로 계약을 맺는다. 고고학적으로든 모세오경상의 묘사로든, 초기 이스라엘 왕국은 일신교 신앙과 고대 근동의 다신교 문화가 느슨하게 병존했으나[* 모세와의 첫 만남부터 '''스스로 전능한 자존자'''라며 신원을 밝혔으나 정작 유대인들은 가나안의 토착 종교에 휩쓸려 바알, 아세라 등과 같이 섬기기 시작하였고, 그에 분노한 신이 벌도 주고 상도 주고 하는 것이 구약의 주요 내용이다.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부터는 야훼만을 신봉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뿐이지 원래 첫 등장부터 '''전지전능한 유일신'''이기는 했다.] 후대로 갈수록, 특히 바빌론 유수[*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사건.] 등의 사건을 거치며 더 엄밀한 일신교 신앙이 자리 잡게 된다. 또한 바빌론 유배 이후로는 관대한 다문화 정책을 펼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문화권의 [[조로아스터교]]와 교류하며 선악에 대한 고찰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사탄의 개념까지도 바빌론 유배 이후 갑자기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창세기부터 뱀이 나오며, 오늘날의 성서비평학은 모세오경이 오늘날의 형태에 가깝게 편집된 것의 계기로 바빌론유배를 거론하지만, 텍스트의 소스가 되는 전승들이 유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감을 부정하지 않는다. 가장 편집이 오래된 본문인 '야훼계 본문'(흔히 로마자 J로 표기)의 경우 왕정이 자리 잡기 전의 굉장히 오래된 전승까지 거슬러올라가며, 가장 편집이 늦은 본문인 사제계 본문(흔히 로마자 P로 표기)마저도 최후 편집자는 페르시아 시대의 사제계 저자로 여겨지지만, 왕정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더 오래된 제의 규정들을 담고 있다.] 다시 강압적인 박해를 가한 [[셀레우코스 왕조]][* 지혜서 8장에서 언급하는 사추덕, 곧 절제(sobrietas), 예지(prudentia), 정의(iustitia), 용기(fortitudo)는 플라톤의 영향으로 여겨진다.] 등의 치하를 거치며 이들과 교류하면서도 일신교 신앙이 고도화된다. 이렇게 엄밀화되어가는 일신교 신앙은 [[예수]]의 [[그리스도교]] 창설로 이어진다. 또한 이후 무함마드도 영향을 받아 [[이슬람교]]를 만들었다. [[그리스도교]]는 유럽의 대세가 되고, [[이슬람교]]는 북아프리카부터 서남아시아를 지나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대세가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른 일신교 신앙의 엄밀화는 성경 내부의 텍스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예를 들어 탈출기 2장 24-25절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살펴보시고 그 처지를 알게 되셨다"라고 서술함으로써, 마치 그 이전에는 하느님이 계약을 기억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처지를 몰랐던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 밖에도 대홍수 이야기에서 노아와 한 약속 역시,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창세 8,21-22)"라는 서술을 통해 하느님이 '후회'를 하는듯한 인상을 준다. 즉 전체적으로 모세오경에서 서술되는 야훼 신앙은, 유일신 신앙으로 묘사되면서도 고대 근동의 다신교적 묘사도 병존하는 것이다. 때문에 유일신 신앙이라기에는 그 서술이 상당히 소박한 느낌을 준다.[* 물론 소박한 서술이라고는 해도,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경고하고, 그들의 '운명'을 되돌려주니 마느니 하는 서술이 나오는 등 상당히 강력한 권능으로 묘사된다.][* 창세기를 비롯한 앞선 서술에서 이스라엘이 고통받을 것을 미리 알려주기 때문에 몰랐을리도 없고 민수기의 발람이 야훼를 후회가 없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해당 표현들은 당시 시대의 문학적 서술 특성으로 이해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작성 시기가 후기로 분류된 것들은 이러한 느슨하고 소박한 유일신 신앙이 훨씬 더 엄밀화되고 체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신교적 뉘앙스를 줄 수 있는 서술은 줄어들어간다. 특히 [[헬레니즘]]과의 교류는 철학적으로[* 구체적 사례로, 플라톤 철학의 사추덕과 유사한 개념이 지혜서에서 확인된다.] 구약의 서술에 영향을 주었다. 물론 종교와 철학이 엄밀하게 구분되는 시대는 아니였기에[* 둘의 엄밀한 구분은 스콜라 시대에서야 이루어진다.] 그리스 철학은 유대교의 '경쟁자'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마치 인도 문화권에서 나온 종교인 대승불교가 중국 철학과 경쟁하며 발전하였듯이,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 발전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면모는 [[그리스도교]]로 이어지는데, 이를테면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의 모습(μορφη, forma)을[* μορφη는 원문에, forma는 노바 불가타에 있는 표현] 지녔지만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종의 모습(μορφη, forma)을 취했다는 필리피서 2장의 서술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적지 않은 그리스-로마 철학자들 역시도 그리스도교의 경쟁자로 여겨졌지만, 이러한 논쟁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그들의 유일신 신앙을 철학적으로 설명하게 되면서 오히려 유일신 신앙의 체계화에 본의 아니게 기여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