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식목일 (문단 편집) === 공휴일 이전 === * 기원전 636년, [[청명]]과 [[한식(명절)|한식]]이 생겼다. 이 무렵에 성묘를 가서 벌초 및 식목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 기원전 4세기, [[옥저]] 시대부터 한민족은 [[온돌]] 방식 난방을 이용하면서 [[땔감]] 확보를 위한 벌목이 잦아졌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소빙하기]] 영향으로 온돌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고 벌목이 증가하면서 온 국토가 [[민둥산]] 일색이 되었다. 오죽하면 조선시대 전래동화에 나오는 고정 레퍼토리 중 하나가 "땔감용 나무를 베러 산에 올라갔다가 [[호랑이]]를 만난다"일 정도였고, 20세기에도 마찬가지여서 1932년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도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 676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를 몰아낸 음력 2월 25일이 양력으로 계산하면 4월 5일이다. * 983년, [[고려]] [[성종(고려)|성종]] 때 이 날 즈음 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친경의례'를 만들어 조선까지 이어졌다.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22050664781|#]] * 1493년, [[조선]] [[성종(조선)|성종]] 역시 세자와 문무백관들과 함께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군 날이 이 날이다.(음력 3월 10일, 양력 4월 5일) * 1860년, [[천도교]]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음력 4월 5일에 [[동학]]의 깨달음을 얻었다.[* 천도교에서는 음력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하지 않고, 단순하게 날짜만 그대로 옮겨서 기념한다. 그래서 음력 4월 5일을 양력 4월 5일에 기념한다. 그래서 식목일 폐지를 '''천도교에서''' 반대한 것인데 폐지 논의를 담당한 실무 행정 담당자조차 처음엔 천도교의 연관성을 몰랐다고 한다.] * 1910년, [[조선]] [[순종(대한제국)|순종]]이 친경의례 중 밭을 갈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나무도 심었다'''. * 1911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쇼와 덴노|쇼와 천황]](昭和天皇)의 생일이 4월 5일이었으므로 이와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식목일 행사를 4월 3일로 옮겼다. * 1937년, 처음 본격적인 범국가적 식수 운동이 생겨났다. [[일본제국]]이 각 학교별로 나무를 심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전시동원의 일환이었다. * 1946년, 일본제국이 패망하자, 미 군정은 식목일을 다시 4월 5일로 환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