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흥시/역사 (문단 편집) === 1970년대 이후 ===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현재 시흥시의 남부지역이 안산군에서 시흥군으로, 현재 시흥시의 북부지역이 인천부에서 부천군으로 통폐합된 이후, 1970년대까지 별다른 행정구역 상 변화는 없었다. 그러던 중 1973년, 부천군의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부천군이 해체되어 부천군 남부에 있던 소래읍이 시흥군에 편입된다. [[파일:attachment/시흥시/역사/1982.png]] 1981년 시흥군 행정지도(1982년).[* 다만 소래면의 읍 승격이 반영되지 않은 오류가 있다. 또한 반월출장소 지역은 표기는 되어있으나 도 직할 출장소인 관계로 시흥군이 직접 관할하지 않는 것을 고려해 누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0년에는 소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에는 소래읍 옥길리가 [[광명시]]와 부천시에 분할 편입되었고, 계수리 일부가 부천시에 편입되었다.[* 옥길동이 광명시와 부천시, 계수동이 시흥시와 부천시 양쪽에 존재하게 된 계기가 여기서부터였다. 이뿐만 아니라 경기도 곳곳에는 이렇게 해당 리의 전 지역의 아닌 일부를 타 지역으로 편입하고 해당 이름을 그대로 쓰는 사례가 많다.] 1986년에는 시흥군에 위치한 반월출장소[* 군자면, 수암면과 화성군 [[반월면]]의 각 일부로 구성되었다.]가 안산시로 승격되면서, 군자면과 수암면의 일부 지역이 뜯겨 나갔다. 이로서 최종적으로는 시흥군에는 3읍(소래, 군포, 의왕)과 2면(군자, 수암)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파일:attachment/sih3.jpg]] 1986년의 시흥군. 결국 1989년 시흥군 서부지역인 소래읍, 군자면, 수암면이 [[시흥시]]로 승격[* 다만 수암면 일부의 경우는 1995년에 [[경기도]] [[안산시]] 안산동이 되었다.]되면서 시흥군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3> '''시 승격 당시 행정동 관할 구역''' || || '''행정동''' || '''법정동''' || '''인구'''[* 1990년 인구총조사 기준. 당시 시흥시 인구는 107,176명이었다.] || || 대야동 ||대야동, 계수동 || 21,903명 || || 신천동 ||신천동 || 25,422명 || || 신관동 ||방산동, 포동, 미산동 || 5,352명 || || 은행동 ||은행동, 안현동 || 12,799명 || || 매화동 ||매화동, 도창동, 금이동, 무지동, 과림동, 하중동, 하상동, 광석동, 장현동, 장곡동, 능곡동, 화정동 || 7,939명 || || 목감동 ||목감동, 논곡동, 물왕동, 산현동, 조남동 || 10,801명 || || 거모동 ||군자동, 거모동, 월곶동 || 10,850명 || || 정왕동 ||정왕동, 죽율동 || 4,143명 || || 안산동 ||수암동, 장상동, 장하동 || 7,967명 || 시흥군 해체 직전, [[인천광역시|인천시]]는 소래읍의 인천 편입을 내무부에 요청했지만,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80800329213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8-08&officeId=00032&pageNo=13&printNo=13188&publishType=00020|소래읍 주민들은 인천 편입이 아닌, 소래시 승격을 원했다고 한다.]] 또한 부천시에서도 역사성과 생활권[* 또한 소래읍을 부천시에 편입되었을 경우 내륙도시에서 탈피해 해안도시로 복귀 되었을것이다.]을 들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71100329215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7-11&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164&publishType=00020|소래읍의 부천 편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경기도는 소래읍의 인천 편입에 반대했고, 내무부도 소래읍의 인천 편입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 1992년에 신관동을 신현동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5년에는 안산 생활권이었던 안산동(수암동, 장상동, 장하동)[* 즉, [[1995년]]까지 안산동은 '''[[안산시]]가 아닌 [[시흥시]]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안산동은 조선시대 안산군 관아가 있던 곳이다.]과 화정동 일부[* 화정동이 시흥시와 안산시에 모두 존재하는 이유이다.]가 안산시에 편입된 이래[* 군자권(거모동, 정왕동 등) 역시 지속적으로 안산시 편입론이 있었으나, 결국 편입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거모동의 경우는 아예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흥시-안산시 행정구역 경계선이 지나며, 안산시 선부동, 원곡동, 신길동 시가지와 매우 가깝다.'''], 현재의 행정구역을 유지해 오고 있다. 1995년 내무부 주도의 인천 추가 확장 차원에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91100289113014&ed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9-11&officeId=00028&pageNo=13&printNo=2008&publishType=00010|시흥시도 인천 편입 대상으로 거론되었으나]] 시청과 시의회의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91100289113014&ed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9-11&officeId=00028&pageNo=13&printNo=2008&publishType=00010|거센 반발로 인천 편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의 김포군과 달리 주민투표 회부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변화를 지도로 보고 싶다면 [[http://cheonji.egloos.com/4809501|이 블로그 참조]]. 1995년 11월 15일, 무지동을 무지내동으로 개칭하였다. 이유는 무지라는 이름이 [[無]][[知]], 즉 아는 게 없다는 의미가 연상된다고 해서다. 1997년에는 [[시흥시청]]이 대야동[* 현재 시흥시 보건소. 시 승격 전부터 소래읍사무소가 위치한 곳이었다.]에서 현 위치인 장현동으로 이전했으며, 시 휘장도 현재의 것으로 바뀌었다. 1999년에는 정왕동이 정왕1동과 정왕2동으로, 2002년에는 정왕2동이 정왕2동, 정왕3동, 정왕4동으로 분동되었으며, 2004년에는 정왕1동이 정왕본동과 정왕1동으로 분동되었다. 2010년 시흥시청 일대 개발이 진행되면서, 연성동이 연성동과 능곡동으로 분동되었다. 2014년에는 군자동에서 월곶동이, 연성동에서 장곡동이 각각 분동되었다. 2018년 [[배곧신도시]]의 개발로, 정왕4동에서 [[배곧동]]이 분동되었다. 이후 2021년에는 법정동 배곧동이 정왕동에서 분리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행정동 배곧동이 배곧1동과 배곧2동으로 분리되었다. 이로써 시흥시는 총 '''19개'''의 행정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2023년 시화 MTV 개발로, 정왕2동이 거북섬동으로 분동되었다. 이로써 시흥시는 총 '''20개'''의 행정동을 관할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