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흥시 (문단 편집) === 시흥시에는 시흥이 없다? === [youtube(nXOJv_rKARI)] '시흥'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지금의 [[서울/영등포|영등포]], [[금천구|금천]], [[광명시|광명]] 일대를 차지하던 옛 시흥군이라는 고을에 두고 있었다. 이들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잉벌노현, 통일신라시대에는 곡양현, 고려시대에는 금주현이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 금천현이 되었고 정조 때 시흥현으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시흥'이라는 타이틀만 단 오늘날 시흥시는 원래 [[인천광역시]](미추홀→인천도호부), [[안산시]](장항구→안산군) 지역이었다. 왜냐하면 옛 시흥군의 중심지인 [[금천구]] 시흥동을 비롯한 원 시흥군 지역이 광명시 일대를 제외하고는 일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서울특별시]] 확장 정책에 따라 서울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시흥군 지역은 수도권의 팽창으로 각자 시로 분리되어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 원래 인천, 안산 땅이었던 오늘날 시흥시 지역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흥시 북부는 인천도호부 전반면, 황등천면, 신현면→부천군 소래면이었다가 1973년에 시흥군으로 편입된 곳이고, 시흥시 남부는 원래는 안산군의 일부였다가 1914년에 시흥군에 편입된 곳이다. 현재 시흥시와 시흥시의회에서도 중심부의 개발 없이는 도시의 성장이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시흥시 중심부를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유래를 보면 이해가 더 빠른 것으로서 시에서는 2013년을 시흥 100년이라고 기념한다. '시흥'이라는 타이틀을 100년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금천현이 금천에서 시흥으로 명칭이 바뀐 때(1795년)를 기점으로 한다면 [[2013년]]이 시흥 218주년이 되어야 하겠지만, 시흥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1914년 이전까지는 '시흥'에 속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의 시흥시가 '시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타당하다는 것이 시흥시청의 입장이다. 이미 100년 넘게 '시흥'으로 불려왔기도 하고, 현 시흥시 지역까지 '시흥'이라 불리게 된 것이 [[1914년]] [[일본]] [[조선총독부]]의 [[부군면 통폐합]] 정책의 결과이긴 하나, 대한민국의 많은 행정지명이 그러하듯 고유한 명칭의 소유권은 가장 오래 소유하고 있는 지자체에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타 시.구의 반발은 소모성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시흥시청 측의 입장이다. 광복 이후 수도권 [[도시화]]로 인해 역사성과 정체성에 있어 혼돈을 겪어왔으나, 시흥시 내의 자연부락이나 도농 복합형태의 마을 혹은 공동체 등의 특성 등을 보면 일제강점기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하나의 도시에 집약한 역사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도시 곳곳에 오랜 흔적들이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