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황제/생애 (문단 편집) === 죽음과 [[사구정변]] === 말년에 불로초 찾기 대모험과 같은 삽질만 하던 시황제는 자신이 제패한 중국의 천하를 둘러보고자 여러 차례에 걸쳐 전국 순행을 단행했으나, 다섯 번째 순행 도중에 병에 걸려 회복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기원전 210년 7월 사구(沙丘 : 오늘날 하북성([[허베이성|河北省]]) 평향현(平鄕縣) 부근)에서 병사하면서 약 50년간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이에 대하여 《사기》에서는 한 가지 일화를 전한다. 평소에 미신에 대한 집착이 심했던 시황제가 낮잠을 자던 도중, 하늘에서 해가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곧바로 [[고제(전한)|홍의동자]]와 [[항우|청의동자]]가 나타나 서로 그 [[초한전쟁|태양을 가지기 위해 싸웠는데]], 홍의동자는 [[팽성대전|청의동자에게 수 차례 두들겨 맞아 쓰러져도]] 일어나 [[해하 전투|단 한 번의 일격으로 기어이 청의동자를 물리쳤다]]. 시황제가 홍의동자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묻자, '나는 백제(百帝, 서쪽의 방위신)의 아들이며 이후 [[한나라 #s-3.2|400년 황조]]의 기틀을 다질 자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사후 시황제의 유서로 멀쩡한 장남 [[부소]]를 [[몽염]]과 같이 처형시키고,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호해]]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바람에 나라가 작살나 버렸다. 이 때문인지 호해가 [[이사]]와 [[조고]] 등과 짜고 유서를 위조했다는 소문이 호해 재위 직후부터 돌아서, [[진승·오광의 난]] 등 부소를 사칭한 반란이 일어났고, 한나라 이후 공식화되어서 사마천이 [[사기(역사책)|사기]]에 기록해서 정설이 되었다. 그러나 측근들이 설사 정말로 유서를 위조했다 하더라도 대체 그들이 유서를 위조했는지 여부를 [[사마천]]이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의문점이 남는다. 그냥 흔히 떠돌던 낭설을, 2세 황제의 바보짓 때문에 시황제 같은 사람이 정말 2세 황제를 후계로 삼았을 리가 없다고 여긴 사마천이 믿어 버렸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마천이 이 기사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또다른 설로는, 사마천이 책을 쓰던 시기에는 정말 모두가 저 밀담에 대해서 당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라 따로 출전을 적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고, 혹은 이사가 형을 받으면서 모든 걸 불었다는 의견도 있다. 단지 사마천이 따로 적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들 호해와 관련되어 한 가지 민간 설화가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진나라는 호에게 멸망할 것이다.(亡秦者胡也)[* 망진자호야]"'''라는 점괘가 사실은 이민족(胡)이 아니라 호해에게 망하고 말았다는 얘기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오랑캐에게 멸망할 줄 알아서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되려 나라는 돌보지 않고 놀기만 하는 무능한 아들인 호해에게 멸망당했다는 것이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시황제, version=163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