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안시 (문단 편집) ==== 쇠퇴 ==== 장안이 망한 이유는 후한 말부터 이어진 계속된 전란과 환경파괴로 인한 섬서, 산서 일대의 토지 염화 때문이었다. 장안은 한국사로 치면 [[경주시]]와도 비슷한 특징을 가지는데, 중원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중국 영역 전체에서는 다소 한쪽에 치우친 위치이며 주변 지형도 험준한 산지에, 한정된 입구만이 존재하는 폐쇄적인 분지 지형이나 그 안의 분지가 비옥하다. 즉, 지키기 좋으면서 중장기적 세력 확장의 기반으로서도 유용했다. 전성기에는 이 앞마당의 부양력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되었는데 수천 년간 중국의 중심지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번영은 화북을 통일한 정권이거나 혹은 천하를 완전히 통일한 정권에서나 가능했지, 전란이 터지면 당연히 쇠퇴할 수 밖에 없었다. 후한 말부터 이어진 계속된 전란으로 관개 시설이 파괴되는 일이 잦았고, 여기에 수천 년간 계속된 농사 및 산림벌채로 섬서, 산서 일대의 강수량이 감소했다. 또한 장안을 포함한 관중 분지의 생산력은 토지 염화로 인해 감소, 식량 자급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미 진과 한나라 시절에 중국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이라던 관중 지역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농사에 치명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잠시 화북을 통일한 [[북위]]는 관개 시설을 복구하는 한편 물을 적게 사용하는 밀농사로 대체해서 지으며 버틸 수 있었다.[* 삼국지를 보면 촉한과 조위가 이 지역에 풍부하게 자라는 [[보리]]를 두고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북주]] - [[수나라]]는 이 지방의 역량으로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이후 수-당나라 시기에는 부양해야 할 인구가 이전시대에 비해 엄청나게 늘었고 섬서와 산서 일대의 토지 염화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문제 때부터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황제라는 의미인 축량천자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결국 수나라는 대[[운하]] 개발을 통해 강남 지역의 물자를 관중 지역으로 수송하기 위한 개발 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물론 운하 문서에도 나오지만 수양제의 운하는 한계가 있었고 따라서 관중지역으로의 수송도 한계가 있었다. 어쨌거나 그래도 이 시기까지는 그럭저럭 100만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지만 당나라 말기에는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버틸 수 있을 만큼의 토지, 관개시설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며 농업 인프라가 붕괴했다.[* 이미 측천무후 시대부터 식량문제 때문에 황제들이 종종 낙양에서 기거하는 일이 잦아지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당나라 말기의 정치적 불안은 외부 물자를 수송할 대운하 통제의 상실로 이어져 장안이 수도로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주전충]]이 [[소종#s.5-1|당 소종]]을 움직여 낙양으로 천도했으며 이후 장안에서 멀지 않은 낙양도 비슷한 이유로 중국사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무대는 차차 경제력이 풍부한 강남 동쪽(해안)지역으로 옮겨가거나 중원 대륙 진출의 필요성을 느낀 [[거란]], [[여진]], [[몽골]] 등 흥기한 북방 민족이 중원 대륙을 거처갈 요충지인 베이징을 택하였다. 여기에 송나라가 [[정강의 변]]으로 강남 동해안 일대로 도망가면서, 장안과 낙양은 정강의 변 이후로 완전히 도시 기능이 파괴되면서 더 이상 중국사에서 수도로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낙양도 장안보다는 중원 및 해안에서 좀 더 가깝긴 하지만 입지가 좁아 이전 시대에 비해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에 역부족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편 다음 시대인 [[북송]]은 낙양과 장안에서 멀지 않고, 수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수운이 용이한 [[카이펑시|개봉]]부를 수도로 삼기도 했으나 역시 오랫동안 이어진 토지 염화로 인해 농업 생산력이 더 감소되어서 경제력이 좋았던 송나라도 이건 아예 손을 놓았다. 그리고 때마침 금나라가 중원 대륙을 치면서 송나라는 그러든지 말든지 경제력이 풍부한 강남 동쪽 해안으로 옮겼으며, 요, 금, 원, 청을 비롯한 북방계 왕조는 중원 대륙 진출을 위해 베이징 일대에 본거지로 삼았다. 그래서 이후에 중국의 정치 중심지는 [[베이징]]을 중심했고 경제 중심지는 [[상하이시]]와 [[홍콩]] 등 강남의 동부 해안 지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후 왕조들이 [[항주]]([[남송]]), [[난징시|남경]](초기의 [[명나라|명]] 및 [[중화민국]])과 [[베이징]]([[요나라|요]], [[금나라|금]], [[원나라|원]], 명([[영락제]] 이후 남명 이전까지), [[청나라|청]] 및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 도읍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