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아파 (문단 편집) ===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 이슬람의 교조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알리]]가 시아파의 시초'''이다. 알리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결혼하여 사위가 되었기 때문에 혈연적으로 무함마드에게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또한 최초의 남성 무슬림이었고, 무함마드에 대한 믿음도 깊었으며 능력도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무함마드의 아들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무함마드의 장녀 자이납은 무슬림이 되기를 거부하고, 아버지를 선지자로 인정하기 또한 거부하여 결국 무함마드도 고집을 꺾었다. 자이납과 파티마를 제외한 다른 딸 2명은 무슬림이 되어 결혼은 하였으나 역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시아파 전승에서는 무함마드의 장, 차, 삼녀가 친딸이 아니라 카디자 전 남편의 딸이라고 본다. 이 전승이 사실이라도, 무함마드는 양아버지로서 딸들을 책임졌다.) 결국 알리-파티마 부부만이 무함마드와 육체와 종교를 모두 포함하여 가장 가까운 혈족으로 통했다.][* 믿음과 능력 뿐 아니라 때때로는 희생 정신도 발휘해서 가령 헤지라 당시 무함마드는 자신을 대신해서 누군가를 자신인 것처럼 속이고 탈출했는데 그 누군가는 알리였다. 알리에게는 다행히도 자신이 무함마드가 아니라는 것이 반대파에게 들켰지만 어찌저찌 목숨은 구하고 무함마드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당초부터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주목받았지만, 무함마드 사후에는 [[아부 바크르]]가 칼리파로 선출되었다. 알리 지지파들은 당초부터 이에 불만을 품었는데, 정통 칼리파는 알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리는 이에 승복하였고, 이후 2대 칼리프 [[우마르]]의 즉위도 지지하였다.[* 다만 아부 바크르가 칼리파로 선출된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 수니파 측 기록과 시아파 측 기록 모두 아부 바크르와 알리 간에 불화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수니파 측은 그저 불화가 있었다 정도로 끝나지만 시아파 측은 아부 바크르가 알리에게 "너네 집을 불태워 버리겠다!" 라는 식으로 협박했다고 말한다.] 제3대 [[정통 칼리파]]인 [[우스만 이븐 아판]]이 사망한 뒤에, 그 뒤를 이을 후계자 자리를 두고 벌어진 다툼이 시아파 분리의 계기가 되었다. 우스만의 뒤를 이어 당초부터 많은 지지를 받던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알리]]가 4대 칼리파로 선출되었으나,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우스만의 6촌인 무아위야가 우스만 암살에 복수를 한다며 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은 결국 진압되었다. 궁지에 몰린 무아위야는 [[쿠란]]의 낱장을 창 끝에 붙이고 낭송가들이 뒤를 따르면서 쿠란을 낭송하게 하며 알리의 군대로 돌진하도록 했다. 신앙심이 깊었던 알리의 군대는 쿠란을 더럽힐까 봐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알리는 이에 무아위야와 협상하였다. 이전부터 알리는 같은 무슬림 내에서는 매우 신사적이고 관대한 인물로, 자신의 권력보다 이슬람 세계의 통합을 중시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거역하는 정적들에게도 관대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전에도 무함마드의 마지막 아내 [[아이샤]]와 관대하게 협상한 적이 있었고. 하지만 이런 알리의 관대한 태도에 반발하는 이들이 나타났으니, 이들은 급진적이고 젊은 세력이었다. 이들은 알리에게 실망했다면서 알리 진영에서 이탈하면서 이탈자라는 뜻으로 '[[하리지파]]'로 불리게 된다. 알리의 세력이 분열되면서 여유를 얻고 세력을 확대해나가던 무아위야는 예루살렘에서 칼리프를 칭하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하리지파는 무아위야를 암살하려 시도하고, 알리는 무아위야와 싸우면서 하리지파와도 싸워야 했기 때문에 세력이 피폐해졌다. 결국 하리지파의 인물인 Abd-al-Rahman ibn Muljam는 무아위야의 회유에 넘어가서,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던 알리를 [[독극물|독]]을 바른 단검으로 찔러서 '''[[끔살|살해하고 말았다.]]''' 알리의 아들 하산이 칼리프 지위를 이어받았다. 무아위야는 군대를 이끌고 가서 하산의 세력을 토벌하려 하였고, 하산은 어쩔 수 없이 협상을 할 뜻을 밝혔지만 같은 편에게 공격당해서 부상을 입었다. 몇 차례 전투를 거친 다음 하산은 결국 불리한 상황에서 평화와 화합을 위하여 무아위야에게 항복하고 칼리프 지위를 포기하였다. 하산이 이후 죽게 되자 시아파 내에서는 무아위야의 음모로 인한 독살설에 나오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