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법 (문단 편집) === 영(靈) === ||어지럽히고 어지러움을 덜어내지 못한 것을 '''영'''이라 한다. (亂而不損曰'''靈''')|| '영(靈)'은 어리석은 임금의 시호다. 춘추시기 진(晋)나라 영공(靈公), 후한(後漢)의 [[영제(후한)|영제(靈帝)]]는 임금답지 못했기 때문에 '영(靈)'을 시호로 삼았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비참하게 죽은 임금에게 올리는 시호였다. 대표적으로 [[조무령왕]]. 그는 기병대를 창설해 조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지만(武), 후계자 문제에 휘말려 궁에 연금된 후 비참하게 굶어죽어 영(靈)이란 시호를 동시에 받았다. 원래 영(靈)은 곱게 죽지 못한 임금의 영혼을 달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런 임금들은 대부분 자신의 실정에 의해 반란이 일어나 시해된 경우가 많다. 조금 예외가 있다면 [[초영왕|초나라의 영왕(靈王)]]이다. [[초영왕]]은 [[초평왕]]이 자신의 군위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정통성을 낮추기 위해서 영왕으로 시호를 내렸기 때문에 좀 억울한 경우다. 사실 성왕은 후계자 문제로 아들 목왕의 반란에 휘말려 자살했는데 목왕은 아버지의 시호를 영왕이라고 내렸다. 하지만 시신이 눈을 감지 않자 성왕으로 내렸더니 눈을 감았다고 한다. 초나라의 성왕(成王), 목왕(穆王), 장왕(壯王)을 제외한다면 영왕만큼 춘추시대에 이만한 업적을 남긴 왕도 사실 드물다. 영왕이 장화궁을 짓고 사치향락을 누리긴 했다. 영왕은 허리가 가는 여자를 좋아해서 궁녀들이 허리를 가늘게 하려고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많이 죽었다 [[카더라]]. 영왕은 결정적으로 형 강왕이 죽은 후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사람이다. 그러나 성왕 역시 자기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고 자신의 조카들이었던 [[정나라]](鄭) 목공의 두 딸을 취했다. 목왕도 자기 아버지를 자살로 내몰아 왕이 되었으며 평왕 역시 형 영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무엇보다 평왕은 자기 아들 태자 건의 아내가 될 며느리를 자기 아내로 삼고 간신 비무기의 말을 들어 [[오자서]]의 집안을 멸족해 오자서와 [[오나라]](吳) 합려의 침입을 받아 결국 초나라 멸망 직전으로 내몰았던 만큼 못된 짓 많이 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소왕(昭王)이 즉위한 후 평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그 후 그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 나갔다. 참고로 장왕의 경우도 초기에는 사치향락을 누렸지만 [[페이크]]였으며 신하의 말을 듣고 멸망시킨 진나라(陳)와 [[채나라]](蔡)를 복국시키기도 했다. 그래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려나 양에 비하면 좀 나은 시호라 그런지 [[제안대군]]의 시호에 들어간 글자이기도 하다.[* 제안대군의 시호는 영효인데 앞서 말했듯 어리석다는 의미로 영을 효자라는 의미로 효를 주었다. 제안대군이 당대나 후대나 멍청한 사람으로 기억될 생적을 많이 남겼지만 적어도 악행은 안 한 편이라는 점을 보면 너무 멍청하니까 영을 안 줄 수 밖에 없었거나 아니면 영이 나쁜 시호기는 해도 려나 양만큼은 아니라서 주는데 별 거리낌이 없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애초에 시호라는게 그래도 망자를 기리기 위해 붙이는 것이라서 나름대로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특히 왕족의 경우면 더더욱.~~애초에 살인마 순화군도 희민을 받았으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