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법 (문단 편집) === 동정을 나타내는 경우 === * 공손하고 어질었지만 재위 기간이 짧은 경우를 '''애'''라고 한다(恭仁短折曰'''哀'''). * 나라의 우환을 만난 경우를 '''민'''이라 한다(在國遭憂曰'''愍'''). * 자애롭고 어질었지만 재위 기간이 짧은 경우를 '''회'''라고 한다(慈仁短折曰'''懷'''). * 옛 과실을 반성하고 고친 경우를 '''밀'''이라 한다. (追補前過曰'''密''') 붙이는 목적이 동정이었으므로 해당 황제는 대부분 무늬만 황제라 권력을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으며, 어릴 때 죽거나 반군이나 외부의 적에게 피살당하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마친 경우가 많다. 가끔 여기에 상(傷)이 추가되기도 한다. '애'와 '민'은 어린 나이에 죽은 황제에게 붙이는 경우가 많다. 각 나라 말기에 자주 발견되는 [[애제]]나 [[민제]]는 이런 사례. 후한 [[헌제]]가 [[조비]]에게 양위할 당시 [[유비]]는 [[헌제]]가 사망했다고 선전하며 효민황제라는 시호를 올린 바 있다. ~~물론 헌제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한국사에선 [[신라]]의 [[애장왕]]이나 [[민애왕]], [[경애왕]]이 있는데 셋 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케이스. [[고려]]의 [[공민왕]]도 내우외환의 왕이었으며,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도 민황제의 시호를 받았다(물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이 시호를 공인하지 않기 때문에 사시이다). 왕은 아니지만 [[종묘]]에 배향된 [[대한제국]] 최후의 황태자 [[영친왕]]의 사시 '의민'의 민도 愍이다. 그리고 회(懷)의 경우에도 반드시 재위기간이 짧을 경우에만 주는 건 아니다. [[장의]]에게 속아 진나라로 간 뒤 생포되어 감금되었다가 죽은 후 시체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초회왕의 재위기간은 서적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30년 정도로 보고 있다. 밀(密)의 경우는 군주의 사례는 아니지만 강희제의 2남인 폐태자 이밀친왕 윤잉이 받았고 또 청나라 말기 탐관인 경친왕 혁광에게 수여되었다. 과오가 있지만 순박했다고 해선 약간의 동정(?)이 들어갔으므로 동정과 악시의 중간 취급 해서 여기에 기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