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리아/역사 (문단 편집) == 중세 == * 자세한 내용은 [[알레포]], [[다마스쿠스]] 문서 참조 [[동로마 제국|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의 이란 제국 간에 전쟁이 장기화되며 양국 모두 약화된 이후 이슬람 제국이 이 지역을 손쉽게 정복한다. 아랍 무슬림 군대는 [[야르무크 전투]]에서 로마 군대를 궤멸시키고 레반트의 패권을 장악한다. [[다마스쿠스]]는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 이 지역은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가 되고, 아람어,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주민들은 행정 및 통상에서 아람어 대신 아랍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로마 제국의 행정 체계는 우마이야 왕조로 체계적으로 흡수되었다. 우마이야 왕조가 전복되고 압바스 왕조가 시작하면서 그리스어를 아랍어로 번역하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지원되었는데 시리아의 기독교인들은 헬레니즘 문화에 밝았기 때문에 그리스어로 된 고대 의학, 과학 및 철학 서적들을 아랍어로 번역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스어를 아랍어로 번역하는 국가적 사업이 진척을 이룸과 동시에 아람어, 기독교의 입지는 점차 약화되었고, [[하룬 알 라시드]], [[알 마문]]의 시대 이후 지방 군벌왕조들이 이슬람 제국 각지에 들어선다.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시절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던 관료제가 약화되면서 무슬림 통치자들은 비무슬림 신민들에 대한 지즈야를 늘리는 일이 많았고 이 과정에서 시리아 주민 상당수가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9세기와 10세기를 기준으로 남부를 중심으로 [[툴룬 왕조]], [[이크시드 왕조]], 북부의 [[알레포]]를 중심으로 한 [[함단 왕조]] 군벌 정권이 존재했으나 이렇게 분열된 군벌정권들은 외부의 침략에 취약한 편이었다. 하마단 왕조는 10세기 로마 제국의 침공을 받아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서기 996년에는 로마 제국이 한때나마 시리아 전역을 석권하기에 이른다. 시리아 남부에는 북아프리카에서 발흥한 [[이스마일파]]의 [[파티마 왕조]]가 들어서서 이크시드 왕조를 전복하였다. 로마 제국이 다시 장악했던 시리아 영토는 [[셀주크 제국]]이 다시 재정복한다. 셀주크인들이 시리아로 유입된 계기는 아바스 왕조의 부침과 관련이 있다. 압바스 왕조는 우마이야 왕조의 옛 수도 다마스쿠스 대신 이라크의 중세 신도시 [[바그다드]]를 수도로 삼았다. 압바스 왕조의 행정력이 약화된 이후 바그다드의 아바스 [[칼리파]]가 [[시아파]] [[부와이흐 왕조]] 군벌들의 통제를 받는 상황이 되자, 수니파들은 위기의식을 느꼈고 이 기회를 노리고 [[셀주크 제국]]이 바그다드에서 부와이흐 왕조를 몰아낸다. 바그다드의 칼리파를 등에 업은 튀르크인들은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동로마 제국을 밀어부치고 이 과정에서 시리아에는 셀주크계 소국들이 들어섰다. 튀르크인들의 거듭된 공격에 로마 제국은 십자군을 초청하는데 이를 계기로 시리아 일대는 [[십자군 전쟁]]의 전장터가 되었다. 한 때는 시리아 각지에 여러 십자군 공국들이 세워졌으나 백여년 간의 지속적인 전쟁 끝에 결국 이집트를 근거지로 [[맘루크 왕조]]가 레반트 일대의 십자군 세력을 전멸시키고 시리아는 다시 이슬람권의 영토가 되었다. 맘루크 왕조는 몽골 제국의 침략마저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저지하면서 시리아에서 수니파 무슬림들의 영향력을 확고하게 다진다. 본래 이슬람권에서 신학이 가장 발달한 지역은 중앙아시아 트란스옥시아나와 호라산 지역과 바그다드였다. 해당 지역들이 몽골 제국 군대의 침략으로 황폐화된 이후 이슬람 신학의 중심지는 샴 지역(시리아 및 팔레스타인 일대)으로 옮겨간다. 시리아의 이슬람 신학자 [[이븐 타이미야]]는 아랍인으로 당시 아랍인들을 지배하던 튀르크계 군벌들이 수피 이슬람을 공격하고, 아랍어 이외에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며 중세 아랍 민족주의의 기틀을 다졌다.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시절 아랍인이라는 개념은 그저 단순하게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페르시아인과 반대되는 개념이었다면 이븐 타이미야 이후 아랍인이라는 개념은 순수 이슬람 신앙과 가까이 접근한, 이슬람권에서 아랍어의 우월성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순니파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타프시르([[꾸란]] 주해본)로 평가받는 주해서를 서술한 사람이자, 이슬람권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학자 중 한 명인 [[이븐 카시르]]가 바로 이븐 타이미야의 제자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