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간 (문단 편집) === 역사 === 인간에게 시간이란 개념이 생겨난 것은 하루(밤과 낮) 및 한 해(계절)의 흐름이 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하루의 흐름은 [[해시계]]를, 계절의 흐름은 [[스톤헨지]] 등의 도구를 이용해 측정하고, 분 단위의 시간을 측정할 때는 [[모래시계]] 등을 이용했으며, 톱니바퀴와 태엽, 진자 등을 이용해 보다 정밀하게 시간의 흐름을 측정할 수 있게 된 후에는 초 단위의 시간까지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정밀한 시계로 측정하는 초, 분, 시간의 길이는 일정한 데 비해, 하루의 길이는 지구라는 천체의 움직임에 좌우되기에 일정하지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고대 [[바빌론]]과 [[고대 이집트]]에서는 천체, 즉 달과 태양이 하늘에서 움직인 거리를 이용해 시간을 표현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태양이 (특정 위치로부터) 팔뚝만큼 움직이는 시간", "태양이 한뼘만큼 움직이는 시간", "태양이 손가락만큼 움직이는 시간"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허나 이는 당연히 정확한 시간 측정이 아니었으며, 정확한 시간의 측정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바빌로니아인들의 60진법식 시간 측정이었다.[* 바빌로니아인들도 이를 수메리아인들에게서 전수받았다고 하는데, 수메리아인의 시간 측정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바빌로니아인들은 1년을 360일로 나누었는데, 오늘날엔 물론 1년이 360일이 아니지만 원을 360도로 분할하는 관습은 그대로 남아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1년이 360일이 아니라 365일이 되어야 한다고 최초로 주장한 것은 [[탈레스]]였다.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등 다양한 고대 문명이 해시계를 이용해 하루를 여러 개의 시간으로 쪼갰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24시간은 그리스 천문학자인 [[히파르코스]][* BC190~120 고대그리스 학자. [[별의 등급]]으로 유명하다.]가 주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파르코스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인 분일(춘분과 추분)의 밤을 12조각, 낮을 12조각으로 나누어 그 한 조각을 시간의 표준 단위로 사용하자고 했는데, 당시엔 그 한 조각(한 시간)이 얼마만큼의 시간인지 나타낼 방법이 없었기에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일정한 길이의 시간을 한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시계]], 정확히는 [[기계식 시계]]의 발명(14세기) 이후이며, 한 시간을 60분으로 나누게 된 것은(즉 시계에 분침이 달린 것은) 더욱 발달된(정확한) 시계가 등장한 16세기부터이다. 초 단위(즉 시계의 초침)가 등장한 것도 16세기 중인데, 당시 초침이 달린 시계는 오늘날의 원자 시계급으로 과학자용 전문장비(?)였기 때문에 시계방에서 판매하는 물건이 아니었으며 과학자들이 직접 고안해 만들었다.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요하네스 케플러]]의 스승이기도 하다.] 정밀한 천체 측정을 위해 초침이 달린 시계를 만들었는데(1581년), 기술의 한계로 시간이 정확하지 않아 똑같은 시계를 네 개 만들어 그 중 두 개의 평균 시각을 측정에 이용했다 한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인류 최초로 시간을 1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진자 시계]]를 발명함으로써 정확한 시계 개량과, 정확한 시간 표기에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1656년). 그러나 하위헌스의 진자 시계는 움직이는 환경, 예를 들어 선박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었다. 진자 시계는 진자의 왕복 주기를 시간 단위(1초)로 측정하는 원리인데 시계 본체가 움직이면 진자의 왕복 주기가 변동되기 때문이다. 당시 정밀 시계가 가장 긴요했던 분야가 바로 대양 항해였기 때문에 이는 큰 문제였다. 망망대해에서 선박들이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려면(당시엔 [[GPS]]가 없었으므로) 하늘의 해와 달의 위치에 의존해야 했는데, 배가 동쪽이나 서쪽으로 항해할 경우 해/달의 위치를 이용해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해/달의 위치가 배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으므로).[* 이를 [[경도]] 문제(Longitude Problem)라 부르는데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짙은 안개가 끼거나 달 없는 흐린 밤처럼 주변을 살필 수 없는 상황에서 배가 자기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경도 문제로 난파되어 사망한 뱃사람의 수는 무수히 많았다. 특히 1707년 [[시실리]]에서 영국 해군 함대가 안개 속에서 [[암초]]를 들이받고 난파해 2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 유명하다. 참고로 "[[위도]] 문제"라는 건 없는데, 배가 남북 방향으로 항해하는 경우 해/달의 위치가 배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시각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배의 동서 이동과 관계없이 태양/달의 위치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이 문제의 해결에는 진자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일년에 몇 초밖에 틀리지 않는 초정밀 시계가 필수적이었으며(시계가 1분 틀리면 위치 산출 시 약 20킬로미터의 오차가 발생한다), 영국의 앤 여왕이 1714년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게 당시 돈으로 2만 파운드(지금 돈으로 약 55억원)의 상금을 주겠다고 하자 당시의 석학들이 모두 여기에 도전했으나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아이작 뉴튼]]조차도 실패했다). 결국 영국의 시계공인 [[존 해리슨]]이 1735년에 100일에 1초밖에 틀리지 않는 초정밀[* 오늘날에도 이 정도로 정확한 기계식 손목시계는 많지 않으며, 보급형 [[쿼츠 시계]]조차도 H1보다 덜 정확하다.] 태엽식 시계인 "해리슨 원"(H1)을 발명함으로써 이 문제의 해결에 성공했다. 해리슨의 H1 시계는 항해 도구로서 육중한 기계장치였기에(높이가 약 60센티미터) 시계(clock)가 아니라 “시간계측기”(크로노미터 chronometer)라 불렸으며, 해리슨은 크로노미터를 계속 개량해 H2, H3를 개발하고 마침내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의 초소형 크로노미터인 H4 모델을 완성했다. H4는 현대식 태엽 시계의 시초로 먼 훗날 [[쿼츠 시계]]가 발명될 때까지 많은 이들이 애용한 위대한 발명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초정밀 시계에는 크로노미터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처럼 시계가 정확해지자 "초"를 시간의 표준 단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1832년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밀리미터]], [[그램|밀리그램]], 초로 구성된 표준 단위계를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영국과학진흥협회(BAAS)가 1874년에 [[CGS 단위|CGS 단위계]]를 정식으로 채택함으로써 1초가 시간의 표준 단위로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에 이용되는 [[MKS 단위|MKS 단위계]]에서도 시간의 표준 단위는 초이다. 처음에는 1초 = 1일(1 평균 태양일)의 86,400분의 1로 정의했지만, 지금은 1초의 정의가 훨씬 정밀해지며 반대로 1일 = 86,400초(세슘 원자시계로 측정한 표준 초)로 정의한다. 옛날식 정의도 1956년에 한 번 바뀌었는데, 종전에는 그냥 1 평균 태양일을 기준으로 하던 것을 1956년에 정의를 손보면서 춘분의 하루 길이를 평균내서 그것을 하루의 길이로 삼게 되었다. 허나 머지 않아 원자시계가 등장하면서 이 정의도 버려지고, 1967년에 오늘날 사용하는 [[세슘]] 원자 초미세구조의 전이주파수를 기준으로 하는 1초의 길이가 표준으로 채택되었다. 세슘 원자시계는 1960년대 과학기술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원자시계였다. 세슘은 알칼리족 원소로서 [[원자가전자]]가 1개라는 특징 덕분에 에너지 준위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고 준위간 전이주파수 측정이 용이하다는 특성이 있다. 참고로 1초 = 하루의 86,400분의 1로 정의하던 시절의 1일과 오늘날의 1일(즉 86,400초)은 의외로 큰 차이가 있어, 현재의 1일이 과거(1967년 이전)의 1일보다 무려 3밀리초가 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