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가(담배) (문단 편집) == 역사 == [[콜럼버스]]의 1492년 11월 6일 자 일기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담뱃잎을 바나나 잎 등과 함께 말아 불을 붙여 피운다는 기록이 서양인들이 처음으로 시가를 목격한 때이다. 이후 선원들 사이에 시가가 퍼져 귀국 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먼저 전파됐다. 마침 포르투갈 주재 프랑스 대사 장 니코(Jean Nicot)[* 이 사람의 이름은 [[니코틴]]의 어원이 된다.]를 통해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이탈리아, 영국 등을 거쳐 온 유럽으로 전파됐다. 스페인은 쿠바 담배잎을 전매해 [[세비야]]에서 시가를 양산했다. 쿠바는 당시 원재료 공급처일 뿐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게 담배잎은 일종의 약용 허브 이미지라 귀한 취급을 받았다. 시가는 생산량이 워낙 적은 탓에 백 년이상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만 비밀리에 유통됐다.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일어나던 해인 180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부자 평민인 부르주아 등도 맛볼 수 있게 됐다. 시가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게 되자 스페인은 기존에 시행하던 독점 정책을 폐지하는 것은 물론 쿠바의 시가 제작을 허용했다. 쿠바는 시가 공장의 수와 생산량이 동시에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쿠바산 시가는 점차 시가의 대명사가 됐다. 18세기 후반 쿠바에서 근무하던 영국군 장교 이스라엘 퍼트넘(Israel Putnam)이 담배 씨앗을 미국 [[코네티컷]]에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시가 공장들이 생겨났다. 그래도 시가의 대명사는 역시 쿠바산이었다. 시가는 20세기 초까지 상류층의 고급문화로서 엄청난 황금기를 누렸으며, 시가 시장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 시기 파르타가스(Partagas)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시가 회사들이 쿠바에 설립됐고, 서구의 자본가들은 앞다퉈 쿠바에 시가 회사와 공장을 설립하거나 기존의 회사들을 인수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헌터스 & 프랑카우(Hunters & Frankau)와 같은 쿠바산 시가 독점 판매처를 세워 쿠바산 시가를 본국으로 유통함과 동시에 쿠바의 타 시가 회사들과 일종의 얼라이언스를 형성했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사이에 궐련 제조 기계가 발명돼 오늘날과 같은 일반 담배(시가렛)의 대량생산이 시작되자 시가의 수요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포르 라라냐가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시가 회사들이 생산을 자동화해 코스트를 낮추려 노력했지만 시가렛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흡연의 해악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8134&cid=43667&categoryId=43667|미국의 대쿠바 금수조치]]와 같은 여러 악재로 시가의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20세기 후반 [[데탕트]] 이후 시가의 수요가 서서히 증가했고, [[닷 컴 버블|IT버블]] 때 시가붐으로 냉전 시기 대비 시장 규모가 6배 가까이 거대해졌으며 신생 시가 브랜드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https://straitsresearch.com/report/cigar-market|스트레이츠서치]]에 따르면 2021년 현재 글로벌 시장규모는 410억 달러로 2030년 114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