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슬라브족이여 (문단 편집) == 역사 == [[1834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부였던 [[슬로바키아]][* 엄밀히 말하면 슬로바키아는 [[헝가리 왕국]]의 일부였다. 그 헝가리 왕국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하고 있어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는 슬로바키아라는 3중 지배 형태였다.]의 시인인 사모 토마시크(Samo Tomášik, 1813–1887)가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 [[프라하]]를 방문하였다. 이때 토마시크는 [[체코어]]보다 [[독일어]]가 훨씬 많이 들리는 프라하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보헤미아 왕국]]이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로 편입된 이후 독일 본토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독일인]]이 체코 영내로 이주했다. 이후 보헤미아는 주요 민족인 [[체코인]] 뿐만 아니라 [[프라하]] 등 대도시와 [[주데텐란트|수데티]]를 중심으로 [[독일인]] 역시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프라하는 [[30년 전쟁]] 이후 독일인의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오히려 [[19세기]] 중반까지 독일인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프라하가 다시 체코인 다수지역이 된 것은 [[1848년 혁명]] 이후 체코 [[민족주의]]의 등장과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체코인]]이 프라하로 대거 이주해 온 19세기 후반부터였다. 즉 이 당시에는 프라하에서 독일어가 더 많이 들리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 순간 토마시크의 머리 속에서 [[폴란드]] 노래(이자 훗날 폴란드의 국가가 되는)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가 떠올랐고 강한 영감이 떠오른 토마시크는 바로 노래의 가사를 자신의 민족인 [[슬로바키아인]]으로 바꾼 내용으로 개사했다. 이것이 나중에 슬로바키아인뿐만 아니라 슬라브족 전체를 가리키는 내용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노래가 만들어졌다. 그 후 이 노래는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서슬라브 및 남슬라브 민족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