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페인/문화 (문단 편집) == 종교 ==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가톨릭]] 문화권에 속해온 나라이다. 다만 서방권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세속화 현상을 스페인도 겪고 있으며, 막상 현대 [[한국인]]들이 현지 유학, 관광 가면 만날 일이 많은 사회적 자유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에 익숙한 전문직 계통의 다양한 문화에 익숙한 청년층에게는 이야기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스페인을 가톨릭 하나로만 이해한다면, 작금에 와선 [[유럽]] 최대 규모의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 행사를 보수 우파 [[인민당(스페인)|인민당]]까지도 지지하고[* 적어도 [[마드리드]] 지역당 수준으론 그렇다. 카스티야-레온 같은 아직도 사회문화적으로도 보수적인 지방에선 전형적인 보수적 스탠스를 유지하지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같은 거대 도시 지역당 차원에선 인민당이 시정부 여당 차지하고 있어도 여전히 시청 건물에 프라이드철 [[무지개]] 깃발 건다해도 반대하지 않는다. 마드리드 프라이드 시즌에 들어오는 어마무시한 전 유럽 게이 관광객 숫자를 고려할 때, 이거 건드리려고 하면 바로 규모 불문한 지역 관광업 종사자 모두한테 작살난다.],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강한지 하나도 설명이 안 된다. 역사적으로 스페인이라는 국가 정체성은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서 [[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 [[투아레그]]인, [[아랍인]] 같은 [[이슬람교]] 세력과 대결해서 이들을 축출하는 [[레콩키스타]]를 거치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 것이다. 따라서 스페인 중앙정부는 [[이슬람교]]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의 [[가톨릭]] 신앙을 철저히 고수하게 되었고, 가톨릭 신앙은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자 정통성 그 자체'''가 되었다. 특히 근대 초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로 대표되는 에스파냐의 문화적 전성기일 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학의 중심지로 에스파냐가 활약하였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로욜라의 이냐시오]]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창립한 [[예수회]], [[아빌라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이 개혁한 [[가르멜 수도회|맨발의 가르멜 수도회]]는 이 시기에 시작된 에스파냐산 수도회로서, 가톨릭 쇄신과 신학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한 마디로, 가톨릭이 이전 시대의 병폐를 쇄신하고 근대 가톨릭으로 나아간 '가톨릭종교개혁'의 선두에 에스파냐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15세기말 16세기초 에스파냐 종교재판이 보여준 폭력성 등 어두운 요소들도 있었으나, 초기 종교재판의 주먹구구식 판결의 문재점을 반성하고 행형을 더 공정하고 비폭력적으로 발전시키며, 식민주의의 폭력성을 내부고발한 것 또한 에스파냐인 스스로의 발전이었다. 이러한 에스파냐 가톨릭의 쇄신은, 흔히 단순화되는 것처럼 개신교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게 아니다. 경쟁이고 협력이고의 문제를 떠나, 근대 초 이베리아에서는 개신교 자체가 먼 동네 이야기라서 접점 자체가 극도로 미미했다.[* "점차 ‘가톨릭 종교개혁’ 또는 ‘가톨릭 쇄신’이라 알려진 것은 단순히 적에 직면하여 방어시설을 보강한 대응책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넓은 운동이었다. ...... 포르투갈 무역상들과 에스파냐 정복자들에 뒤이어(때로는 그들에 앞서) 가톨릭교는 세계 종교, 남극 대륙과 아직 유럽인이 발견하기 전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를 뺀 모든 대륙에 신봉자를 둔, 진정으로 지구를 아우르는 최초의 신앙이 되었다. 더 넓은 세계를 복음화하는 것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대응하는 반격이 아니었다. 멕시코에 파견된 초기 선교사들은 인문주의 성향의 프란치스코회 수사들로서 마르틴 루터를 거의 또는 전혀 몰랐다." Peter Marshall, 『종교개혁{{{-2 ''THE REFORM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 이재만 번역, 교유서가, 2016, {{{[}}}ebook{{{]}}}] 역사적으로 이렇게 가톨릭교회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의미가 크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반교권주의, 급진적 [[세속주의]]도 강하게 생겨났다. 20세기 초반에는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왼쪽 끝에 있는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중도 성향의 [[공화주의]] 계열 정당까지 모두 반교권주의를 표방하며 친[[가톨릭]] 성향의 보수 정당들과 치열한 각을 새웠다. [[스페인 제2공화국]] 당시에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종종 반교회 폭동이 터질때마다 다른 나라에선 오히려 이런 극좌적 반교회주의를 중재할 법한 중도 공화주의자들도 '''마드리드에 있는 모든 성당 중 공화주의자 목숨 하나만큼의 가치 있는 성당은 없다'''[* 발언의 출처는 일각에선 대통령 마누엘 아사냐였다고도 하고, 중도 공화주의 정당 거두이자 반교권주의자로 유명했던 알레한드로 레로라는 말도 있다.]라고 과격한 발언을 하며 다른 사회, 경제적 문제에선 좌파와 대립하면서도 반교회 정책에선 뜻이 일치하곤 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교회도 정치적으로 우경화가 심했고, 이런 갈등이 결국 1936년 [[스페인 내전]]이란 극단적인 형태로 폭발하면서 내전 초기 스페인 공화진영 후방은 거대한 규모의 성직자 학살과 성당 방화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복수심에 가득 찬 가톨릭 사제들은 공화주의자들을 공격하며 '''[[무어인]]들인 프랑코군 소속 [[북아프리카]] 식민지 병사들이 가톨릭 성전의 이름으로 스페인인 노동자들을 학살, 강간하는 걸 축복했다.''' 때문에 지금도 스페인 종교계에서 스페인 내전은 언급 자체를 꺼리는 흑역사가 되었다. 좌파 세속주의자들을 때려잡으면서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 정권]]은 이념 투쟁의 일환으로 아예 사회 복지나 공교육 같은 사회 안전망, 서비스 체계를 전적으로 가톨릭교회에 맡겼고, 겉보기로는 프랑코 정권 치하 교회는 17세기 수준의 사회 통제력과 존재감을 회복한듯 보였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민심 자체가 이탈해 버린 교회는 그 기반이 크게 약해졌고, 따라서 프랑코 정권 당시 교회는 정권의 조직적인 유아 납치 등 거대 조직의 비리에 휘둘리며 내부로 더욱 썩어갔다. 교회 내부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맞물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체적으로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프랑코 사후 스페인이 민주화가 되고, 다른 [[서유럽]]이 30년 일찍 누리던 현대 [[자본주의]]적 상업 소비문화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대한 사회 변화의 물결을 타지 못하고 결국 가톨릭교회의 입지는 민주화 이후 급격하게 떨어졌다. 프랑코 정권 당시에는 [[미사]] 참례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주일미사에 안 나오는 사람들은 그 지역 불순분자로 찍혔기에 강제로라도 [[성당]]들이 사람으로 가득찼던 반면, 지금은 왠만한 스페인의 성당들은 다른 [[서유럽]]권처럼 노인들과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만 있고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나 꽉 차지, 평소 주일미사에는 성당들 대부분이 텅텅 빈 게 태반이다. 스페인 인구의 80% 이상이 '''명목상''' 가톨릭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교회 출석률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정교분리]] 문제가 다른 [[서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더 이상 정치적 이슈도 못 되는 반면, 스페인에서는 이런 현대사적 배경 때문에 여전히 각종 사회적 의제나 여전히 교회의 지분이 큰 [[공교육]] 세속화 문제로 좌파, 중도 성향 정치인들과 교회가 서로 험악하게 싸우는 경우가 많다. 가령 스페인과 똑같이 [[가톨릭]] 종교권에 속해있는 다른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만 보더래도 교회나 정당 고위 지도부층이야 뭐라 하던간에 민간 차원에선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베니토 무솔리니]] 독재정권에 맞서 반파시스트 빨치산 투쟁을 같이 했던 공산주의자 [[빼뽀네]] 읍장과 가톨릭 사제 [[돈 까밀로]] 신부의 이야기인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같은 대중매체의 인기 작품들도 나오고 있고 '총선, 지선에서 공산당 등 좌파계 정당들도 찍지만 성당도 잘 다니는', 정치적으로는 세속주의계과 종교계의 느슨한 공존이 일반적이었던 [[이탈리아]][* 반대로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산업화가 상대적으로 느렸으며,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영향력이 막대하고, 이에 반발한 좌익, 자유주의계의 급진 반교권주의도 강했던 라틴 문화권이란 큰 역사적 배경도 공유하는 만큼,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 보여주는 20세기 [[이탈리아]] 사회의 갈등상은 [[스페인]]하고도 나름 비슷한 면도 많다. 대충 작중에서 [[돈 까밀로]] 신부와 [[빼뽀네]] 읍장이 투닥거리면서도 결국 타협하며 마을을 위해 같이 일하는게 아니라, 진짜 서로를 증오하며 총으로 쏴죽이려고 들고 마을 전체가 서로 인민재판과 학살을 사이좋게 주고받는 막장 스토리로 떨어진 게(...) 스페인의 경우라고도 말할수 있다.], 스페인과 똑같이 파시즘 우파 독재정권의 통치를 받았지만 정치적 폭력은 훨씬 덜 심했고,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민주화된 이후에 가톨릭교회의 정치 개입을 법률적으로 억제하여 민간 정치계와 종교계 간의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스페인의 이웃나라 [[포르투갈]], 19세기 이후 세속주의 세력이 확실하게 승리했던 [[프랑스]]와는 달리, 스페인에서는 거리 민심을 양분하는 종교계와 좌익 대중정치가들과의 대립이 아직도 심각하다. 또한 근대 들어와서 가톨릭교회와 민심 갈라먹기 문화 투쟁의 일환으로 [[페미니즘]]이나 [[LGBT]] 담론 또한 일찍부터 많이 발전한 편에 속한다. 이런 스페인의 사회적 세속주의, 진보주의 운동은 크게 보면 역시 [[20세기]] 초반 세속주의 좌파가 기존의 교육, 육아, 복지 같은 사회생활의 공동체적 안전망을 독점하고 있던 가톨릭교회로부터 지분을 뺏어오기 위해 시작했던 일련의 사회운동에서 기원을 두고 있으며, '''자유 연애''', '''[[동성애]] 양지화''', '''[[낙태]] 합법화''' 같은 가톨릭적 사회ㆍ도덕 윤리에 정면으로 도전히는 의제들을 의식적으로 파왔다. 여성운동이 제도적인 참정권 같은 국가와 법의 틀에서 노는 [[서프러제트]] 운동에서 보다 심도 있게 생물학적, 심리적 여성성 자체를 탐구하며 이에 기반해 급진적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데 있어선 생리학자, 생물학자로서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주장했던 암파로 포슈, [[스페인 내전]] 당시 아나키스트 [[CNT]] 산하 자유 여성단 (Mujeres Libres) 창설자였던 루시아 사오르닐, [[유럽]] 최초의 여성 장관 중 하나였으며 재임 당시 여성의 낙태 자유 결정권을 법제화했던 페데리카 몬세니 같은 스페인 내전 전후로 하여 스페인 급진 좌파, 특히 [[아나키스트]]들은 걸출한 페미니스트와 사회적 자유주의 사상가들을 배출했다.[* 암파로 포슈 박사의 아버지인 군의관 호세 포슈는 반대로 1936년 쿠데타 당시 적극 참여했던 골수 우익 프랑코주의자 장군이여서 내전이 궤도에 오르고 딸이 나머지 아나키스트들과 프랑스 망명행에 오를 때 프랑코에게 "가정교육을 잘못해서 딸이 빨간물 먹은 걸 한 번만 특별한 기회를 주시면, 잘 타일러 사람을 바꾸어 놓겠으니 한 번만 안전한 스페인 귀국을 보장해 달라"란 식으로 절절한 편지를 보낸 게 남아있다. 하지만 프랑코는 불허했고, 암파로는 한평생 [[프랑스]]에서 반 프랑코 운동을 지원하며 살다가 1968년 [[툴루즈]]에서 타계했다. 전쟁 이전 부녀관계도 한편으론 "여자애가 어딜 고등교육, 과학자냐"는 전형적인 보수적인 군인 가부장스런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기 딸이 그 시절에 대학갈만큼 영특하다는 사실에 대단히 복잡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스페인 현지에서도 페미니스트, 성생리학자로서의 업적 외에도 근현대사와 내전의 비극을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화자된다.] 때문에 [[스페인 영화]]나 문학, 서브컬쳐 등을 살펴보면 급진적인 세속주의와 저항심을 내세우며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가톨릭적 사회와 엄숙주의에 대들고 반항하는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대놓고 무신론자로 신성모독에 힘썼던 [[루이스 부뉴엘]]부터 시작해 <누가 아이를 죽일 수 있는가?>와 같은 강렬한 반윤리적 호러 영화를 내놓았던 나르시소 이바녜즈 세라도르, 라 모비다 마드릴레냐 시기에 데뷔한 [[페드로 알모도바르]]나 소아성애와 강간 묘사를 다룬 <유리 감옥>으로 충격을 안긴 아우구스틴 빌라롱가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2019년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게 의심될 정도로 가톨릭을 끔찍하게 비틀어놓은 인디 게임인 [[Blasphemous]]까지 나왔다. 이만큼 가톨릭교회의 무게가 [[스페인/역사]]에서 컸던 만큼, 그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 급진 세속주의 운동의 역사도 현대 스페인에선 굉장히 영향력 있기 때문에, 가톨릭의 영향력은 예전같지 않다. 오늘날 스페인 교회는 오히려 제2공화국과 프랑코 정권의 유산 때문에 '프랑코 시절 때 물려받은 책임은 많은데 막상 [[미사]]에 꾸준히 참례하면서 [[교무금]] 똑바로 내는 신자 수가 하도 줄어서 이를 감당할 재정, 인력은 안 되는 많이 불쌍한 조직' 취급 받는 경향도 있는 편이다. 점차 늘어나는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아예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혐오증]]이 자체적인 정치 기반이 될만큼 커버려서 이에 기반한 메이저 극우 정당들이 전국적 존재감을 발휘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비교하면 여전히 약한 수준이고[* 기껏해야 2018-19년 총선 이후로 떠오른 [[VOX(정당)|VOX]]도 사실 그 본질을 따지고 보면 이슬람보다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대해 훨씬 더 자극받은 극우 정당이고, 그 기반도 면밀하게 따져보면 옛날부터 [[카탈루냐]] 부르주아들에게 "저 동네는 [[아랍인]]의 피가 섞여서 게으르고 미개하다"는 드립의 집중적인 피해자였던 [[안달루시아]], 무르시아의 지역 정당에 가깝다.], [[이슬람교]]에 대한 경계가 가톨릭교회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스만 제국]]의 침략 이후로 근대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총든 무슬림들이 유럽 본토에 수백명 단위로 쏟아져 대규모 전시 강간을 저지른 역사적 경우가 이 스페인 내전기 국가군의 [[모로코]] 식민지병 운용이었던 만큼 일반적으론 우파의 의제인 반이슬람, 반이민자 정서도 스페인에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현재 [[무신론]]은 예전과 달리 [[사회주의]] 보급의 영향으로[* [[스페인 내전]]의 원인이 저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공화파와 가톨릭 지주가 주축인 보수파의 대결이었다.] 꽤 커져서 적지 않는 편이라, 현직 정부 수반 [[페드로 산체스]]부터 공개적인 무신론자다. 산체스 총리는 사회노동당 출신 [[사회주의]]자이다. 스페인 내전에서도 [[소련]]이 후원하는 공화파와 기존 가톨릭을 수호하려는 보수 왕당파 간 피 튀기고 싸울 정도로 좌우익 갈등이 심했던지라, 10-20% 이상 상당수의 무신론자들이 있다. 스페인에서 [[전통 가톨릭|가톨릭 원리주의]]는 구세대, 극우 꼴통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프랑코 정권'''을 방불케 하는지라[* 스페인의 경우 어쨌든 역사적 전통적 절대 다수의 민족 종교는 [[가톨릭]]이 맞고, 당장 문화유산에서부터 일상 생활까지 가톨릭 문화가 침투해있다 보니 이런 정치적 교권주의자 입장에선 '''"스페인 국민은 가톨릭 민족이고,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비국민]]이다!!"'''라고 주장하기 쉬운 조건이다. 실제로 이게 프랑코 정권 시기 공식 관점이기도 했고, 민족 국가의식이 형성된 16-17세기의 관점에선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저 명제를 19세기, 20세기에도 쿠데타군이 총칼로 새운 독재 정권이란 형태로 강요했다는 거지...] 이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많다. 무신론자까진 되진 않더라도 가톨릭이 맘에 안 들어 [[개신교]]로 갈아타는 사람도 있다. 특히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아메리카]] 국가 대부분도 개신교로 갈아타거나 무신론자가 되는 경향이 있어 이러한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다. 이들 나라 출신 목회자들이 선교사로 들어오거나, [[스페인어]]를 쓰는 히스패닉 계통 [[미국인]] 목회자들이 선교사로 목회를 돕고 현지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까지 스페인에서 개신교는 중남미, 아프리카 등 이민자 출신들이 많이 믿는 편이다. 프랑코 독재 정권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던 1970년대 후반 교회와 사회의 변화에 대한 반발의 하나로 [[전통 가톨릭]] 운동이 스페인에도 들어왔는데, 이 중 일파는 아예 [[가톨릭교회]]로부터 독립하여 [[거룩한 얼굴의 팔마리아 가톨릭교회|거룩한 얼굴의 팔마리아 그리스도교회]]를 창립했다. 이 종파 수장은 스스로 ''''가톨릭교회의 정통성을 계승한 [[교단|교회]]의 교황''''임을 자칭한다. 이 교회의 신자들은 정말로 극우 성향일 가능성이 높은데, 아예 교단 차원에서 [[팔랑헤]] 창설자인 [[프리모 데 리베라]]를 성인으로 시성하여 공경하고 있다. 이 교회의 본부 역할을 하는 대성당은 [[안달루시아]] 지역 세비아 주의 작은 마을에 있으며, 나름 [[컬트]]적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는 [[차드]], [[말리]], [[모리타니]] 등 이슬람 [[서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난민]] 증가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모로코]]와 스페인에 임시 정착한 뒤 나중에는 이웃한 타 [[서유럽]] 국가인 [[프랑스]] 그리고 더 나아가 [[영국]]으로 이주를 원하기 때문에 계속 대규모로 불법 이주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로 건너오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가는 것이나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폴란드]]로 건너오는 [[시리아]], [[이라크]] 난민들이 [[폴란드]],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 그리고 거기서 다시 [[독일]]의 이웃나라인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가는것과 똑같다. 이것은 스페인 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와 [[알제리]], [[튀니지]]에게도 상당한 곤욕이다. 현재는 난민 급증으로 인한 국경 통제 불능 현상을 최대한 막아보기 위해 [[스페인 경찰]]과 모로코 경찰이 엄청나게 애쓰는 중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Islam_in_Spain|스페인 내의 이슬람교]]는 대부분이 [[북아프리카]]나 [[서아프리카]] 등 [[아프리카]] 출신인 경우가 많지만, 최근 들어서면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다 스페인 사람들 중에도 소수지만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만 가더라도 중세 시대에서 비롯된 이슬람권의 문화적 유산이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이런 문화적, 역사적 [[카스티야]] 중심 가톨릭 교권주의에 반발해서 정복 이전 알안달루스 문화에 심취하다 아예 개종해버리는 부류들도 아주 가끔씩은 있는 모양. 이들은 IS나 [[알 카에다]] 같은 극단주의 이슬람에 동화될 우려에 경찰의 감시를 받기도 한다. 다만 사람들의 생각 이상으로 아랍을 비롯한 이슬람 계통의 이민자들 비율이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선 인구대비 낮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럽 국가가 스페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다른 유럽 국가의 파트 타임 잡이나 배달 종사자들로 북아프리카계 아랍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스페인에서는 이러한 계층들의 대부분이 '''구 식민지인 중남미계 히스패닉들의 비중이 단연 더 높은 편'''이다. 모로코에서 보통 이민 러쉬를 행할때도 스페인이 최종 목적지라기 보다는 프랑스나 다른 유럽 국가들을 가기 위한 교두보 정도로만 삼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10년대에 전 유럽을 공포로 물들게 한 IS발 테러 행위들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좀 더 잠잠한 편이기도 했다.[* '''스페인의 치안 관련 행정력이 상상 이상으로 잘 발달된 것도 특징'''이다. 단적으로 스페인의 고속열차인 [[AVE]]만 보더라도 탑승하기 위해서는 '''공항 수하물 검사처럼 철저하게 검사한 이후에나 탑승할 수가 있다.''' [[스페인 국가경찰|스페인 경찰]]과 [[스페인 헌병군|과르디아 시빌]]의 일 처리와 공조는 일찍이 지난 세월동안 바스크 독립주의자들의 테러나 카탈루냐 독립주의자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다른 유럽 국가들의 경찰력보다도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타 유럽 국가들이 2010년대의 이슬람권 이민자들 사이에 숨어서 테러 행위를 저지르는 것에 대처하기 위해 부랴부랴 경찰력을 최근 들어서 증진시킨 것과는 대비된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중남미나 다른 분야에서 느긋한 스페인 공무원들 생각하고 스페인조차도 [[치안/국가별 현황/유럽#스페인|치안]]에 있어서 허술할 거라고 보면 오산이다. 적어도 테러, 공안 사건 같은 분야는 스페인 사법당국은 백년 넘게 끊임없이 카를리스타, 아나키스트, 빨치산, 극좌 게릴라, ETA, 21세기 들어 지하디스트들까지 싸워온 경험이 있고, 이런 정치적 공안 문제 말고도 스페인이란 나라 자체가 지리적으로 마약과 밀수 문제가 심할수밖에 없는 나라라 이런 방면에서도 스페인 경찰은 잔뼈가 굵고 유럽 안에서도 손꼽히는 조직력으로 유명하다.] 현재 스페인에서 이슬람권에 대한 의식은 스페인만의 고유 특성이라기 보다는 전 유럽과 공유하는 속성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바로 아래 각주에서도 설명된대로 정치권에서 주로 가지는 이슈는 분리주의에 관한 이슈가 더 주된 편이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레콩키스타]] 이후 [[이베리아 반도]] 각 나라를 [[카스티야]] 위주로 묶으며 생긴 나라다. 그래서 이웃 [[포르투갈]]이 단일 공동체인것과 달리 스페인은 사촌나라 [[이탈리아]]나 과거 [[유고슬라비아]] 처럼 각 지방 정체성이 화끈하게 다르고, 카스티야인을 싫어하는 타지인들도 많다. [[안달루시아]]는 카스티야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스페인에 편입되는 와중 피정복 무어인들은 다수가 강제개종당한 소작농 무산계급으로 떨어지고, [[산티아고 기사단|산티아고]], 알칸타라, 칼라트라바 기사단 같은 기독교 정복자들이 지주로 군림하며 지배계층을 형성했던 지방이라 [[카탈루냐]] 못지않게 카스티야를 싫어한다. 하지만 반대로 근대화 과정에서 대규모로 카탈루냐의 산업 도시에서 국내 이민자층을 형성하며 토착 카탈루냐인 부르주아들에게 "아랍의 피가 섞여서 게을러 터진 잡종들"이란 식으로 멸시도 받았기 때문에 카탈루냐 분리주의에 가장 거품 물고 반응하는 곳도 안달루시아다. 지역적 역학 관계가 이리 복잡하니 현대의 카탈루냐 문제도 단순한 한 지방의 불만을 넘어 스페인 전국적인 논쟁과 여론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스페인]] 내의 [[가톨릭]] 영향력이 줄어드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대 다수 종교는 여전히 가톨릭이다. 위키피디아에 인용된 [[https://en.wikipedia.org/wiki/Religion_in_Spain|통계]]에 의하면 2019년 스페인의 종교는 21.5%가 활동하는(Practicing) 가톨릭이며, 46.8%는 비활동이지만(Non-Practicing) 어쨌거나 가톨릭이며, 나머지는 무신론(12.5%), 불가지론(7.3%), 무관심하거나 믿지 않음(8.1%), 무응답(1.2%), 기타 종교(2.6%)이다. 활동과 비활동을 전부 포함한 가톨릭 신자를 합치면 여전히 70%의 스페인 국민들이 가톨릭 신자라고 볼 수 있다. 개신교와 이슬람교의 신자가 증가한다고 한들 가톨릭 이외의 모든 종교는 '기타 종교'에 한꺼번에 묶일 정도로 그냥 비주류이며, 위키피디아에 인용된 [[https://en.wikipedia.org/wiki/Religion_in_Europe#/media/File:Europe_No_Belief_enhanced_2010.png|다른 통계]]에 의하면 무종교인의 비율에서 스페인은 [[프랑스]], [[독일]], [[영국]]보다 낮으며, 이웃나라인 [[포르투갈]]과 비슷한 수준이다. 스페인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압도적으로 [[가톨릭]] 다수임을 생각한다면, 현대 스페인도 마치 가톨릭교회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편견도 틀렸지만, 가톨릭을 '스페인에서는 극우들이나 믿는 종교' 쯤으로 단순화해서 파악하긴 더욱 어렵다. 프랑코 정권 시절 저질러진 박해는 그 규모와 범죄성이 워낙 커서 일반적인 가톨릭 신자도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변명하는 역사지, 대놓고 당당하게 이를 옹호하는 건 남아 있는 신자들 기준에서도 막나가자는 소리다. 큰 성향은 정권 따라 갔어도 교회 내에서도 당장 눈앞에서 [[신부(성직자)|신부]]들을 총살하던 좌익의 위협이 사라지자 독재 정권의 문제와 한계를 인식하고 저항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현재 스페인 사회에서 가톨릭의 위치는 근현대 들어서 큰 쇠락을 겪었으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적으로는 여전히 나름 중요하고 존재감이 강한 복잡한 대상이며 긴 세월동안 스페인이란 국가의 중심적인 정체성을 형성해온 종교이자 주요 사상으로서 단순한 일개 종교로 치부될 수준이 아닌, 개개인의 삶에 깊게 녹아들어있는 관습의 위치라서 부정하기 어렵다. 스페인에는 [[유대인]]들도 존재한다. 대다수는 종교만 [[유대교]]일 뿐 기독교를 믿는 토착 [[스페인인]]들과 언어·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세파르딤]]이지만, [[북아프리카]]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안달루시아]]에는 [[아랍어]]나 [[베르베르어]]가 모어인 [[미즈라힘]]도 거주한다. 전근대에 해외로 추방된 스페인 유대인의 후손들은 [[서유럽]]에 정착하여 세파르딤이 되거나 중동에 정착하여 미즈라힘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중유럽]]·[[북유럽]]·[[동유럽]]에 정착하여 [[아슈케나짐]]에 동화되기도 했는데, 현대 스페인은 이들이 스페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허용하여 유대인들에 대한 유화책을 쓰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