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팍스 (문단 편집) ==== 내전과 안정 ==== [[파일:스팍스 튀니지 성벽 2.jpg]] 밥 엘 디완 일대 1159년에 시작된 무와히드 조의 지배 역시 오래가지 못하였다. 1185년부터 [[무라비트 왕조]]의 잔당인 바누 가니야가 튀니지 남부를 습격하였고, 가프사와 토주르가 그에 가담하였다. 다만 스팍스는 최소한 중립을 유지하여 1187년 무와히드 칼리파 [[야쿱 알 만수르]]가 반란에 가담한 도시들의 성벽을 허물었을 때에도 무사하였다. 1195년 스팍스를 포함한 튀니지 전역은 바누 가니야의 야흐야 빈 이샤크에게 점령되었다. 1204년 야흐야를 축출하고 튀니지를 수복한 무와히드 칼리파 [[무함마드 앗 나시르]]는 스팍스 주변에 366개의 우물을 뚫었고, 이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앗-나시리야로 명명되었다. 다만 그의 사후 무와히드 조는 분열되었고, 1229년 스팍스는 약간의 저항 끝에 [[하프스 왕조]]령이 되었다. 그 4대 군주인 이브라힘은 전임 군주인 조카 야흐야 2세와 그 자녀들을 살해했는데, 스스로 후자의 숨겨진 아들이라 주장한 아흐마드 이븐 아비 아므라가 반란을 일으켰다. (1282년) 아흐마드는 가프사에 이어 스팍스를 장악하고 결국 튀니지까지 점령, 이브라힘 1세를 살해하였다. 1284년에 이브라힘의 동생 우마르 1세가 아흐마드를 처형하며 하프스 조의 지배는 회복되었지만, 이브라힘의 아들 야흐야가 [[베자이아]]에서 자립하여 내전이 이어졌다. 혼란을 틈타 1287년 메노르카 섬을 점령한 [[아라곤 왕국]] 해군이 스팍스 앞의 케르켄나 섬을 점령하였다. 1318년 내전을 마무리하고 하프스 조를 통합한 야흐야의 아들 아부 바크르 2세 (알 무타와킬 1세)는 1335년 케르켄나 섬을 수복하였다. 다만 1346년 그가 사망한 후 하프스 조는 내분과 [[마린 왕조]]의 침공으로 혼란에 빠졌고, 스팍스를 비롯한 튀니지 남부는 가베스에 기반한 바누 막키의 수중에 들어갔다. 1370년, 아부 바크르의 손자인 베자이아의 아흐마드 2세가 재차 하프스 조를 통합하였다. 그는 스팍스를 두고 대립하던 막키 가문의 아흐메드와 압델 말레크를 축출하고 튀니지 남부를 수복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