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코트어 (문단 편집) == 역사 == 본래 9세기 통일 스코틀랜드 왕국이 성립된 이래 스코틀랜드의 지배층이 쓰던 언어는 켈트어의 일종인 게일어[* 지금 기준으로는 스코틀랜드 게일어라는 별도의 언어로 구분해야겠으나 당시에는 아일랜드어와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분리되기 전이라 아일랜드어와 방언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였다. 아일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 서부(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 서부로 건너가서 정복함)를 지배한 게일계 달 리아타(Dal Riata) 왕국 이래로 게일어가 퍼져갔던 게 [[게일어]] 전파의 시작이었다. 그보다 이전에 본래 현 스코틀랜드 대부분 지역에서 쓰였던 언어는 또 다른 켈트어[* 픽트어의 계통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켈트어가 맞다는 쪽이 학계의 대세이다.]인 [[칼레도니아어]]→[[픽트어]]([[픽트족]]의 언어)[* [[칼레도니아족]]과 [[픽트족]]은 거의 동일한 민족 집단인데 단지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뿐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였으나 픽트어는 점차 소멸되고 게일어로 대체된다. 게일어는 한때 스코틀랜드 거의 대부분에서 쓰였으나 전국에서 다 쓰였던 건 아니다. 남동부는 과거 앵글족의 나라인 [[노섬브리아 왕국]]의 일부였던 곳이라 스코틀랜드로 합병된 뒤에도 계속 영어의 북부 방언이 쓰였다. 이것이 스코트어가 되었고 이게 점점 스코틀랜드 내에서 사용 인구를 늘리더니 11세기 즈음부터는 아예 지배층의 언어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현재 스코틀랜드 [[로우랜드]] 지역은 스코트어, [[하이랜드]] 지역은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고유 언어로 취급된다. 이런 복잡한 역사 때문에 '스코트어(스코틀랜드어)'[* 스코트(Scot)라는 표현은 스코트어로 스코틀랜드의~(Scottish~) 정도의 의미다. 영어에서는 스코트어 현지 표현을 차용했다. 스코틀랜드 게일어(Scottish Gaelic)와 구별이 쉬운 것도 있지만 말이다.]라는 표현의 의미에도 변동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주도 언어였던 시절에는 스코틀랜드 게일어를 스코트어라고 불렀고, 지금 우리가 스코트어라고 부르는 언어는 그냥 '영어'라고 불렀다. 하지만 스코트어가 지배 언어가 되자 반대로 그걸 스코트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물론 이후 잉글랜드와 합병된 이후에는 고유 언어라는 인식보다는 영어의 방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다시 일반화됐다) 게일어는 '아일랜드어'라고 불렸다. 현대에는 전자는 그대로 스코트어라고 하고, 후자는 스코틀랜드 게일어라는 명칭으로 정리되었다. 한편 스코틀랜드에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부터 잉글랜드 남부([[런던]] 포함)의 영어가 수입되기 시작한다. 원인은 [[종교 개혁]]과 [[인쇄술]] 때문이었다. 종교 개혁으로 [[라틴어]]가 아닌 토착어로 된 성경이 필요해졌는데, 스코틀랜드에는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를 통한 인쇄 기술의 유입이 잉글랜드보다 늦었다. 그래서 부득이 잉글랜드의 영어 성경을 수입해서 쓰기 시작했다. 스코트어 사용자 입장에서 영어는 비교적 쉽게 익힐 수 있는 언어였으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17세기 초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1세|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해 [[동군연합]]이 성립되고, 잉글랜드의 궁정으로 옮긴 제임스가 [[킹 제임스 성경]]을 영어로만 발행해 스코틀랜드에까지 배포했다. 이런 식으로 스코틀랜드에 잉글랜드 남부의 영어가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 초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완전히 한 나라로 합병되면서 영어가 표준 언어가 되니 자연스레 스코트어는 천박한 사투리로 취급돼 점차 쇠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스코트어 문학 작품을 많이 남긴 작가로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1759~1796)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