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칸데르베그 (문단 편집) ==== 몸을 일으키다 ==== 제르지 카스트리오티, 즉 스컨데르베우가 오스만 술탄국을 떠난 것은 헝가리에서 출발한 바르나 십자군이 불가리아의 니스를 공격한 1443년 11월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알바니아인]]으로서 오스만 술탄국에 복무하던 300여 명의 병사들과 함께 군을 이탈, 알바니아로 가서 위조편지를 통해 알바니아 산간의 크루여(Krujë) 요새를 점거하였다. 그는 이제까지 써오던 [[오스만어]] 이름을 버리고 [[알바니아어]] 이름인 제르지 카스트리오티(Gjergj Kastrioti)를 내걸었으며, 가문의 문양인 검은 쌍두 독수리를 내걸었다.[* 이때 그는 크루여의 주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그대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여기에서. 그대들 가운데에서 찾았노라.'] 알바니아에서는 이미 1443년(39세)부터 오스만 술탄국에 반하는 반란이 일어난 상태였다. 이 시기는 오스만 술탄국의 팽창을 막고자 하는 기독교 세력의 동시다발적인 반격이 있었던 시기인데, 헝가리에서는 2만 5천에 달하는 '콘스탄티노플 구호 십자군'이 결성되어 헝가리의 [[후녀디 야노시]](37세), 교황청의 체사리니 추기경, [[폴란드 왕국]] 및 [[헝가리 왕국]]-[[크로아트 왕국]]의 왕 [[브와디스와프 3세]] 등의 지휘 하에 진격해 니스에서 전투를 벌여 [[오스만 제국군|오스만군]]을 대파하는 등의 전적을 올렸고, 남부 그리스에서는 모레아의 군주 콘스탄티노스 친왕(후의 [[콘스탄티노스 11세]])도 마찬가지로 로마의 후원을 받아가며 중부 그리스로의 진출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알바니아에서는 대대적인 반오스만 반란이 일어나 있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오스만 술탄국이 신임하던 장군이자 알바니아에 큰 영지를 가지고 있었던 스컨데르베우가 동참한 것. 이는 [[오스만 술탄국]]이 알바니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