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칸데르베그 (문단 편집) ===== 1465, 1466, 메흐메트 2세의 3번에 걸친 총력전: 모두 막아냄 ===== 이에 기선을 잡았다 여긴 메흐메트 2세는 총력전을 시작했다. 1465년 4만의 병력으로 알바니아를 들이첬고, 이것이 격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다음해 재차 공격에 나선 것. 메흐메트 2세가 직접 이끄는 오스만 제국의 대군은 1466년 크루여에 육박한다. 이 과정에서 메흐메트 2세는 이제까지의 알바니아 전쟁의 실패는 알바니아의 복잡한 지형과 민중들의 비협조에 있다고 판단하고, 알바니아 주민들에 대한 대규모 살상과 난민들을 크루여로 몰아넣는 것을 병행하여 진격로 주변을 정리하였으며 숲을 뚫고 군사용 도로를 개설하여 보급선을 구축하는 등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이런 일은 과거 트라야누스가 골치덩어리 다키아를 멸망시키기 위해 시행한 전략과 거진 동일하다. 거대제국에 맞서 약소국이 민족영웅(데게발루스, 스칸데르베우)의 집결 하에 최대한 저항했다는 사실도 비슷. 사실 이러한 일들은 이전의 지휘관들이 멍청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휘관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 밖의 일이었기에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도를 찾아보면 금세 알 수 있지만, 그 넓은 알바니아 곳곳을 정리하고 다닌다는 건 황제가 아니라 일개 지휘관으로서는 어려운 일. 스컨데르베우 역시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이 국력을 집중하여 진지한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서방 세계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베네치아 공화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이제까지의 후원자였던 나폴리 측에서는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메흐메트 2세의 의도는 크루여 요새 주변에 콘스탄티노폴리스 때 그러했던 것처럼 오스만 제국의 요새를 구축하여 다른 알바니아 지역과의 연계를 끊고 장기간의 공성전으로 함락시켜 레저 동맹의 핵심축을 제거한 후 이곳을 기점으로 잔존세력까지 모두 제거한다는 장기적인 정복계획이었다. 그러나 스컨데르베우는 이러한 오스만 제국의 맹공을 다시한번 견뎌내었고, 메흐메트 2세는 엘바산에 요새를 축조하여 알바니아를 남북으로 분단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던 알바니아 출신의 군지휘관 발라반 바데라가 전사하는 바람에, 메흐메트는 급히 지원을 보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아래에 나오는 '3차 원정'.]. 2차 크루여 공방전 또한 실패하자 메흐메트는 곧바로 엘바산 요새와 크루여에 3차 원정군을 파견했다. 하지만 메흐메트가 직접 이끄는 대군도 크루여 성벽을 넘지 못한 마당에 이들이 알바니아를 정복할 수 있을 리는 없었고, 몇몇 대도시 인근을 약탈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 무렵, 레저 동맹은 심각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