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윙스 (문단 편집) == 생애 == [[서울]]에서 태어나고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9년간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다시 [[한국]]에서 자랐다. 한국으로 와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한국]]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는 한국 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전학 가서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국제 크리스쳔 외국인학교를 졸업했다.[* 해외에서 3년 이상 거주하고 영어 테스트를 통과한 한국인 학생은 [[외국인학교]]를 다닐 수 있다.] 현재도 [[영어]]로 된 책을 자주 읽는다고 한다. "유년 시절의 미국 생활 때문에 한국어 발음이 좀 느끼하게 들릴 수 있다"며, 양해를 구하는 내용을 본인 유튜브 채널에 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한국 생활을 한 덕분에, [[영어]]와 [[한국어]]가 모두 유창하다. 영어 전문 유튜버들도 스윙스의 영어실력에 대해 좋게 평가한다. [[https://youtu.be/YbfR1qJEwM4|#]][* 사실 스윙스는 상단에 언급됐다시피 태어난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기에 영어가 [[제1언어]]다. 제1언어가 영어이기에 유창한 것은 당연한 셈.] 본인 말에 따르면 상당히 거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2014년]] 7월 16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 전과는 없지만 '''보호관찰 2건'''이 있음을 시인했다. 2009년도 [[힙합플레이야]] [[http://magazine.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page=13&sort=&num=3957&keyfield=&key=|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서 할 이야기가 있다며, 스윙스는 말을 이었다... 스윙스: 디스 이야기하기 전에 제가 가장 먼저 말해야 하는 게 있는데 일단 저는 제 성장 과정 이야기를 할게요. 그런데 얘기하기 전, 이것이 절대 센 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에서 살고 난 후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에 처음 왔어요. 처음 왔을 때 일주일 만에 어떤 형한테 폭행을 당했어요. 당시에 ‘형’이라는 말은 친형한테만 붙이는 줄 알고, 맞으면서 어설픈 [[한국어]]로 "왜? 정신 차려, 왜?"만 하면서 맞았죠. (웃음) 그때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트라우마]](trauma)가 되게 컸어요, 한국에 오자마자 그런 경험을 하고 그때부터 굉장히 불만이 많았어요. 제가 학교에 [[무스#s-3]]를 바르고 가면 선생들이 때리고 왜 너 혼자 튀려고 하냐, 오락실 가서 게임을 하면 중, 고등학생 형들은 [[삥#s-1|돈을 뜯었고]], 골목길에 끌려가서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참 [[체벌|많이도 맞았고]],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갔는데 세상이 더 어두워지고 더 험악해졌어요. 전 원래 춤을 되게 좋아해서 비보잉을 해서, 동네에서 그냥 좀 했어요. 그런데 당시엔 노는 형들이 춤을 많이 췄어요, 자연스럽게 그 형들과 어울리게 됐고, 그때부터는 더 동네북이 됐죠. 오락실에서 돈 뜯긴 정도가 아니라 이젠 몇백만 원이 왔다 갔다 했어요.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조폭]]들이랑 다를 게 없었어요, 우린 돈을 모으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해야 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구한테 돈을 뺏었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 죄책감은 아직도 있고, 또 나중에는 감당을 못하니까 전 엄마 지갑에 손을 댔어야 했고 저는 그 억눌림이 너무 힘들었어요. 밤새 끌려다니고 좀 보수적인 집안이었는데, 매번 늦게 들어가니깐 아버지께선 너는 왜 맨날 늦게 들어오냐 하시는데,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집에서도 또 맞을 대로 맞고, 밖에 나가서 또 맞고 여기저기서 맞으니깐 제가 유난히 좀 심한 위계 문화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 안에서 저는 적응한 편이고, 늘 노력해요. 그걸 꼭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미국]]에서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전해 들은 [[투팍 샤커]]의 곡 "[[Dear Mama]]"를 접한 후 [[랩(음악)|랩]]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다.[* [[2007년]] 발매한 자신의 데뷔 앨범이자 첫 믹스테잎인 "Punch Line King"의 수록곡인 '''"Dear 엄마"'''도 바로 이 곡의 비트에 랩을 얹은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흑인 음악에 빠져 살던 중 고교 시절에 친구 Crybaby와 현 [[2AM]]의 멤버 [[임슬옹]]과 소울밴드 Crybabies를 결성했지만, 노래로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어서 래퍼로 전환하였다. 이 때가 대략 06년 10월경. 원래 크루는 베지터블 허슬러즈. 그곳에서 제작된 랩 유닛 '7人 ST-Ego(칠린스테고)'를 시작으로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지만 정작 저 앨범은 망했다. 첫 번째 EP인 'Upgrade' 수록곡인 Punch Line놀이의 가사에도 "칠린스테고 로마처럼 크게 망했지"라며 스스로 가사에서 언급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믹스테잎을 준비했는데, 이게 리스너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이후 [[버벌진트]]와 친해지면서 그가 소속되어 있는 크루인 [[오버클래스]]로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사이먼 도미닉]]의 크루인 혼란 속의 형제들(Illest Konfusion)에도 들어가는데 IK에서는 2011년부로 탈퇴했다. [[토익]] 970점까지 받았다는 걸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언급했다. [[http://cdn.mydaily.co.kr/FILES/201305/201305150803561130_2.jpg|참조]] 아무튼 영어 랩과 한국어 랩 둘 다 잘한다. 나중엔 힙합 그룹 [[업타운]]의 멤버로도 들어가서 방송에 출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