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모 (문단 편집) === 요코즈나(横綱) === [include(틀:다른 뜻1, from=요코즈나, other1=여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프로레슬러, rd1=요코주나)] 리키시 중 최고위. 쉽게 말해 '''[[명예의 전당]]'''. 스모계에서는 전설의 경지로 생각하며 그에 맞게 대단한 예우를 받는데, 한 번 요코즈나가 되면 다른 스모 선수들과 달리 절대 강등이 되지 않는 특혜가 있으며, 강등이 되지 않으므로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출장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대회에 출전하면 그 격에 맞게 대회 출전자 중 무조건 가장 강한 15인과 싸운다. 요코즈나를 이기면 단순한 1승이 아닌 승격 강등 심사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스펙으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마에가시라의 경우에는 킨보시라고 하여 은퇴할 때까지 1년에 260만 원에 해당하는 상여금을 지급받을 요인이 된다. 그만큼 요코즈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대신 성적이 나쁘면 강등이 아니라 아예 은퇴를 해야 한다. 출전자 중 가장 강한 15명과 싸우면서 11승은 해야 체면을 지킨 것으로 평가받으며, 2대회 연속 10승 미만이면 거의 강제 은퇴라 보면 된다. 다만 요코즈나까지 될 정도면 기본실력이 대단하기도 하고, 강등 걱정이 없어서 몸상태가 안 좋은데 억지로 나와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10승 이하의 망신을 당하는 일은 별로 없다. 요코즈나를 이기는 것을 킨보시라고 부르며 우대해주는 것도 사실. 요코즈나는 아프면 쉬면 되고 실력이 떨어지면 집에 가야 하기 때문에 킨보시를 획득하려면 무조건 컨디션이 괜찮은 요코즈나를 이겨야 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일단 규정상으로는 오제키로 승격한 선수가 2개 대회 연속 우승 혹은 그에 준하는 성적을 거둔 경우, 심의위원회를 통해 진급을 심사한다. 전적 외에도 품행, 인품 등도 고려하지만, 이 부분은 거의 자의적인 스모협회의 해석 때문에 비판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사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2개 대회 연속 우승이 의무가 아니었다. 보통 오제키가 1개 대회를 우승한 이후, 심의위원회에서 '다음 바쇼에서 우승 혹은 몇승 이상을 올리면 진급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조건을 정해주는데 그 조건이 우승 직후 다음 대회에 13승 정도였다. 물론 그 조건에 미달하면 다시 처음부터 연속 우승이나 그에 준하는 성적을 달성해야 했다. 다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어서, 12승 정도로 우승에 실패했어도 요코즈나를 꺾었다거나 경기 내용이 좋으면 특별히 한 대회 더 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되기도 하며, 13승을 올리고도 패한 경기에서 정말 형편없이 졌다면 심의가 보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하와이]] 출신 고니시키, 아케보노 등이 연달아 요코즈나를 사정권에 두자 협회는 그들의 요코즈나 승격을 막기 위해 2대회 연속 우승을 해야 요코즈나로 인정해주겠다고 기준을 강화했는데, 이 때문에 90년대 일본의 국민 스타인 다카노하나의 경우, 2년 가까이 연속 우승 직전에서 아케보노에게 패해 오제키에 머무르다 간신히 요코즈나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부터 2대회 연속 우승은 엄격하게 지켜져 왔으나, [[일본인]] 요코즈나의 명맥이 끊긴 것을 이유로 협회가 괜찮은 일본인 오제키가 등장하는 대로 80년대의 완화된 승격조건으로 교체해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그 혜택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기세노사토인데, 기세노사토는 현 세대 최강의 리키시인 하쿠호를 상대로 그나마 가장 상대전적이 좋았던 일본인 리키시로 예전부터 많은 푸쉬를 대놓고 받아왔었다. 오제키 승진 때도 우승도 없는 32승 진급이라는 특혜에 가까운 성적이라 비판이 많았고 몇 년 간 맥이 끊겼던 일본인 리키시의 우승도 고에이도나 고토쇼기쿠가 차지하는 등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었다.[* 그 와중에 협회가 제시한 조건을 [[몽골인]] 리키시 가쿠류가 먼저 만족해, 협회가 울며 겨자먹기로 가쿠류를 요코즈나로 진급시키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여러 번 협회의 파격적인 특혜성 승진 조건에도 번번이 물을 먹어오던 기세노사토가, 결국 준우승 이후 연속된 바쇼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2017년 [[https://imnews.imbc.com/replay/2017/nw1800/article/4212474_29865.html|19년 만에 순수 일본 출신 요코즈나로 승격했다]]. 바로 다음 바쇼에서 다시 우승을 차지하면서 연속 우승의 굴레도 뒤늦게나마 벗고 자신을 요코즈나로 올린 것이 틀린 선택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긴 했는데, 하필 그 바쇼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제대로 치른 바쇼가 별로 없던 기간이 길어졌고 18년 11월 바쇼에선 개막 후 내리 5연패를 당하는 망신을 당한 끝에 강제 휴장 조치가 내려지는 수모를 겪다 회복이 되지 않아 19년 1월 16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드물게 우승을 하지 않고도 요코즈나가 된 사례가 하나 있는데 나중에 [[프로레슬링]]과 격투기로 전향해[* [[텐류 겐이치로]]와 함께 WWE 레슬매니아 7에 등장한 적도 있었다.] 트러블메이커가 되었던 키타오 코지(요코즈나 시절 이름은 후타하구로)이다. 키타오는 10대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2미터에 가까운 체격과 잘생긴 얼굴로 엄청나게 인기몰이를 했는데, 사상 최연소 오제키 승진 후 연달아 우승권에 근접했고, 당대 최고의 요코즈나이던 치요노후지와 2번 연속 동률을 이루고 우승결정전까지 가는[* 2번 다 치요노후지에 벽에 막혀 우승결정전 끝에 패했다. 한 번은 13승 1패 상황에서 대회 마지막날 14승이던 치요노후지를 이겨 우승결정전까지 가게 되었다. 이때 키타오에 대한 어마어마한 환성과 관중들의 성원은 볼만했다.] 접전 끝에 준우승에 머물렀다. 엄청난 인기에 이제 20대 초반이고 절대자로 군림하던 치요노후지의 대항마로 키타오가 성장하리라 기대했던 협회는 논란을 감수하며 요코즈나로 승격시켰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우승자와 동률이고 3명의 요코즈나를 모두 격파한 실적을 근거로 내세웠다. 문제는 승격한 후타하구로가 번번이 치요노후지의 벽에 막혀 준우승만 2번 한 게 고작이라는 것. 게다가 품행 문제로 말이 많은 데다 도장의 후배와 스승의 사모를 두들겨 패는 대형사고를 치는 바람에 고작 1년 만에 강제 은퇴당했다.[* 심지어는 폭력을 휘두른 이유가 '''챵코가 맛이 없어서'''(...)] 시합에서도 정면승부를 암묵적으로 강제당하는 등 요코즈나로서의 품격을 유지할 것을 요구받는다. 요코즈나가 헨카(変化, 회피기)를 썼다가는 갑분싸를 느낄 수 있을 정도.[* 위에 언급된 요코즈나 가쿠류는 부상입은 어깨로 인해 그 기세노사토를 상대로 헨카를 썼는데 어쩌다가 그 바쇼에서 우승까지 차지하자 왕창 까였다.][* 다르게 말하면 요코즈나를 상대하는 다른 리키시들도 요코즈나에게는 암묵적으로 하타키코미(叩き込み) 같은 기술은 쓰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날렵한 몸매를 가졌던 리키시들도[* 다카노하나라든가, 하루마후지라든가…….] 요코즈나에 오르고 나서는 정면승부를 위해 그 전보다 체중을 늘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모든 기록을 갈아치워나가고 있는 69대 요코즈나 하쿠호에게 따라오는 비판도 여기에 있다. 팔꿈치를 쓰는 등 요코즈나씩이나 되는 리키시가 '요코즈나다운 스모'가 아닌 '이기기 위한 스모'를 한다는 비판이 그것. 아무래도 일본식 정서의 결집체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603년]]부터 현재까지 [age(1603-01-01)]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반열에 오른 사람은 단 73명뿐으로,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명예와 존경을 받는 영광스러운 위치이다. 한국 씨름으로 비유하자면 '''천하장사''' 정도. 덤으로 이 계급과 마에가시라의 경기에서 요코즈나가 패한다면 경기장에서 방석이 날라가는 풍경이 연출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