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술 (문단 편집) ===== 역사적 사례 =====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3486|한국의 음주 문화 역사를 정리한 기사]] 술 권하는 문화는 [[조선]] 시대에도 있어서[* 그 이전에 이미 [[삼국지]] 위지 동이전 같은 데서도, [[한반도]]는 음주가무로 이름을 떨쳤다.], 왕이 술을 권해서 신하들을 [[꽐라]]로 만들었다는 기록도 심심치 않게 나오며([[세조(조선)|세조]], [[성종(조선)|성종]], [[연산군]], [[정조(조선)|정조]]가 자주 그랬다고 한다) 심지어는 철혈군주 [[태종(조선)|태종 이방원]]마저도 아버지 [[이성계]]가 권하는 술을 사양하지 못하고 냅다 마셨다가, 결국 만취해서 환궁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왕실만 그런 게 아니라 [[선비]]들도 위에 나온 것처럼, 상대의 주량에는 한계가 있음을 명심하라는 원칙은 세워두었지만 거의 지키지는 않은 듯하며, 서민들의 술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암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은 이러한 [[조선]]의 술 권유 문화에 대해 '''"마셨다 하면 취하고, 취했다 하면 매번 주정과 난동으로 끝난다!!"'''고 크게 비판하기도 했으며 '''"[[선비]]들이 술 적당히 마시고 운치 있게 [[시]]를 읊는다는 둥의 술자리는 내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까지 단언한 바 있다. 청장관 [[이덕무]] 역시 [[선비]]들의 행동가지를 담은 예절책 「사소절(士小節)」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강제로 술을 권하는 행위를 '고권주(苦勸酒)' 라고 해서 지양해야 하며, 정 거절하기 힘들 때에는 입술만 살짝 적시고 말라고 조언했다. 다산 [[정약용]]도 정조 때문에 술로 곤욕을 호되게 치르고 나서[* [[정조(조선)|정조]]가 필통에 소주를 따라줬다고 한다. 참고로 이 당시 소주는 희석식이 아니라 증류식이라 더 독했으며, 필통은 요즘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사이즈의 [[필통]]이 아니라 [[붓]]을 모아두는 커다란 통이었다.] 자식들에게 술을 경계하라는 편지를 보낸 일이 있다. 한마디로 '''[[조선]] 시대부터 강제로 술 마시게 하는 건 진상 짓이었다.''' 구한말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선교사]]의 기록을 보면 "[[조선]]의 아침은 술꾼들이 토해놓은 토사물들로 냄새가 진동하고, 거리 곳곳에 주정뱅이들이 드러누워 있으며, 그 상태로 죽은 사람도 종종 있다."고 한다. "평소에는 그렇게 선량하던 조선인들이 술만 마시면 [[개]]가 된다."고 한탄을 했다. 결국 [[개신교]] [[선교사]]들은 "이 민족은 술 때문에 망할 민족"이라며 아예 술을 금지했다. 기독교에서도 포도주는 [[성만찬]](흔히 포도주를 예수의 피, 빵을 예수의 살이라 비유하는 그것) 때문에 흔히 마셨던 걸 생각하면, 술에 익숙한 기준으로 봐도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던 셈이다. 또, 한국에서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에 발간된 세계 알코올 대사전에는 한국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음주행위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라고 적혀 있다. 즉, 현대 한국의 음주 문화는 제사 등과 같은 일종의 [[한국 문화|전통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악습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끊어내야 할 부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