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숟가락 (문단 편집) === 한국 === [include(틀:한국의 전통공예)] [youtube(pte-m0wAltI)] [[파일:P5229537.jpg|width=50%]] [[파일:P5229538.jpg|width=50%]] [[파일:Ky268.jpg]] [[파일:2021012010564700025_l.jpg]]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숟가락. 일본에 수출한 숟가락이 포장도 뜯지 않고 보존된 [[정창원 신라 숟가락]]도 함께 참고해 보길 추천한다. [[한반도]]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숟가락을 써왔고,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현재 쓰이는 금속 숟가락 형태는 이미 고대부터 정립되었다. 다양한 생김새가 있는데 대체로 약간 우묵하게 들어간 원형에 기다란 자루가 달린 모습이다. 제작 재료로는 주로 [[금속]]을 사용한다. 국물만이 아니라 밥을 뜨는 데도 사용하기 때문에 밥을 떠서 입 안으로 넣고 입술이나 앞니[* 앞니로 숟가락을 긁어 먹는건 엄밀히 말하면 식사예절에 어긋난다.]로 밥알과 기타 내용물을 걷어내기 좋도록 크기와 형상을 맞추었다. 한국식 숟가락은 주식을 먹는 데 사용하며 식탁에서 가장 중심으로 사용하는 도구이다. 젓가락은 숟가락을 보조하며 반찬을 집어먹는 데 사용한다. 숟가락이란 식사도구 자체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지만 서양식 숟가락은 대개 수프를 떠먹기 위한 것으로 나이프, 포크와 함께 놓으며 식사에서 지위, 용도, 형태가 한국식 숟가락과는 많이 다르다. 중국과 일본도 과거 숟가락을 사용했었으나 점차 쇠퇴했다. 중국은 15세기 중반 이후로, 일본은 12세기 이후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숟가락은 함경북도 [[라선시]]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유적 '나진초도패총'에서 출토한 [[뼈]] 숟가락이라고 한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1662#|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수저)]] 또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에서 발견한 [[흙]] 숟가락이 가장 오래되었다고도 한다. [[https://eguegu.tistory.com/3912|한끼줍쇼 암사동 유적지]] 두 번째는 함경도 서포항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 중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숟가락과 동물의 뼈로 만든 숟가락이 있는데, 손잡이 부분에는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졌다. 그 외 다른 숟가락 유물들은 청동제, 놋쇠제, 백동제, 은제까지 나왔다. [[파일:l_20210927010032315002781411.jpg]] [[삼국시대]] [[백제]] [[무령왕릉]] 제삿상. 지금까지 발견한 국내 청동 숟가락 중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한다. [[백제]]도 [[무령왕릉]] 신봉동 고분 등지에서 숟가락이 나왔다. 궁궐, 왕자를 위한 사찰, 귀족들의 무덤에서 출토하여 청동 숟가락을 사용한 주체가 누구였는지 보여준다. [[고구려]] 지역에서는 아직 발굴한게 없지만 안악 3호분 벽화에서 부엌을 그린 그림을 보면 국자가 나오기 때문에 가능성은 있다. [[파일:1faaf4ab-04c0-4be2-8b20-520c97ec247e-1555553924746.jpg|width=50%]] [[고려시대]] 이전 동제 숟가락 [[고려시대]] 전기 숟가락은 자루가 휘어있고 모양이 독특하며 화려한 장식이 특징이다. 형식은 기본형, 쌍어형, 장릉형이 있는데 쌍어형이 대부분이고[* 쌍어형을 주로 사용한 이유는 물고기 한 쌍이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릉형은 출토품 중에서 10% 미만이다. 청동제 유물이 많은데 어느 숟가락은 술자루가 0.55cm인데 부러진 술자루를 수리하여 사용한 것으로 당시 숟가락이 귀한 물품임을 짐작케 한다. 물론 제작 재료별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후기 숟가락은 술총을 단을 지어 나누었고 술자루 두께도 0.3cm 이상으로 두꺼워 이전 시기에 제작한 숟가락과 일부 차이가 있다. 이 외에 초곡리, 성하리, 원북리 유적 등지의 유물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청도 대전리 고려·조선묘군 Ⅱ에서는 숟가락을 모두 82점 출토하였는데 술자루 두께는 모두 0.4cm 이상이라 고려 후기일 것으로 예상한다. 11세기 전후 무덤에서 숟가락 부장품을 많이 출토하였고 두께도 두꺼워진 것을 보아 제작 기술이나 형태 완성도가 올라갔음을 알 수 있다.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dh0AshCl2NSVAQ26ndJyM9JLtnnbkGTAIZAwXsAKJ18hqT7xJ571xaTz0LObcR6L.cha-was01_servlet_engine1?nttId=76191&bbsId=BBSMSTR_1008&pageUnit=10&searchtitle=title&searchcont=&searchkey=&searchwriter=&searchWrd=&searchUseYn=&searchCn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mn=NS_01_09_01|청자로 만든 숟가락도 있다.]] [[파일:cd233f6c-fe7e-41bb-943d-abc9a3ac458d-1555561124935.jpg|width=50%]] [[파일:CP0309000831_m0001.jpg]] [[파일:GetImage984153.jpg|width=60%]] [[조선시대]] 목제, 청동, 백동 숟가락 [[조선시대]] 전기에는 기본형이나 쌍어형을 사용했다. 후기로 들어서 이상하게도 16세기까지 유행하던 숟가락의 여러 가지 형식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둥근 술에 일자형 자루 형식이 정착했다. 갑작스럽게 변한 원인은 구체적인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추정하기가 어렵다. 《주자가례》를 기반으로 한 상례가 일반화되어 숟가락도 한 가지 형식으로 통일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보지만 뚜렷한 근거는 없다. 다만 숟가락의 각도가 10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직선화되어 현재와 비슷한 수저들이 만들어졌다. 근대 이후로는 [[스테인리스]]가 발명되어 수저 산업에서 널리 사용하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무덤에서 토기만큼 많이 출토하는 게 숟가락이라고 하니, 아시아에서 한국만큼 숟가락을 중요하게 여긴 나라는 없다. 그리고 한국 숟가락에서만 특히 흔히 가는 음식점 등지에서는 인삼 무늬를 한 숟가락과 젓가락을 흔히 볼 수 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95957|#]]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힘든 노동환경 속에 '밥은 보약'이라는 의미를 부각하여 인삼 무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수저를 제작했는데, 그 중 인삼 무늬가 가장 잘 팔려서 디자인 특허까지 신청하여 장기적으로 생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년이 지나 디자인 특허가 풀린 1990년대 이후로는 더 많은 공장에서 생산하므로 여전히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미래에는 한국에서 인삼 무늬 수저가 다량으로 출토할 것(…)이라 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울러 '[[수저]]'라고 한다. (수져 『[[월인석보]]』[1459] ← 술+져) 하지만 숟가락만을 가리켜 수저라고 하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두 뜻을 모두 정의하여 '수저와 젓가락', '수저로 떠먹다' 등 표현도 맞는다. 이 때문에 식당에서 '수저를 달라'고 말하면 숟가락만 주기도 한다. 일단 '원의'로만 따지면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울러 부르는 단어란 것을 명심하자. 참고로 어른의 숟가락은 '간자'라고 높여 부른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민속학 효과적인 식사도구 숟가락 한국인만 사용하는 이유는? 2008-09-02 * [[https://chf.or.kr/c2/sub2_2.jsp?thisPage=1&searchField=&searchText=&brdType=R&bbIdx=103305|한·중·일 저의 등장과 사용,한국문학재단]] * [[http://www.ikoreanspirit.com/news/articleView.html?idxno=40968|고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 , <코리안 스피릿>, 민성욱 국학박사 , 2014.01.07 21:27]] * "청동(靑銅)숟가락의 등장(登場)과 확산(擴散) -삼국시대(三國時代)~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정의도, 2008년 9월 * 신은제․허선영, 2011, 14세기 동기의 유행과 그 의미: 고려시대 분묘유적을 중심으로, 석당논총 *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조선후기 시장, 2003 * [[YTN 사이언스]], [[https://www.youtube.com/watch?v=lEIJNw5Xn_Q|참조]]. 2017. 10. 2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