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치제 (문단 편집) == 개요 == [[청나라]]의 제3대 황제. [[청태종]]의 9번째 아들. [[강희제]]의 아버지. 5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치세 초기 7년 동안은 숙부인 예친왕 [[도르곤]](多爾袞)이 섭정왕이 되어 청나라를 다스렸다. 즉, 이시기 순치제의 치적 대부분은 사실상 황부섭정왕 도르곤에 의해 이루어졌고, 오늘날 교과서에 쓰여진 순치제의 업적도 모두 도르곤의 업적이었다. 이때 이룬 청의 대표적인 업적이 [[순나라(명말청초)|순나라]] 멸망과 베이징 정복. 즉, 도르곤은 순치제가 후세에 존재감을 남길 수 있게 해준 존재였으나, 어린 순치제는 황권을 위협하는 도르곤을 매우 증오하여 1650년 도르곤이 사망한 이후 그를 [[부관참시]]했다. 말이야 그럴 듯하지만 순치제 입장에서 도르곤은 황제를 깔고 뭉갠 권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실 도르곤 항목에도 있지만 도르곤은 순치제의 어머니 효장문황후와 [[형사취수|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소문]]까지 있었으니, 순치제가 도르곤을 증오할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다만 반대로 도르곤 입장에서 순치제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누르하치가 사망하자 같이 순장(...)시켰다) [[숭덕제|원수]]의 아들이었다. 누르하치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누르하치가 가장 아꼈던 아들인 도르곤에게 제위가 돌아갔을 가능성도 높았다. 참고로 유목민족인 만주족은 장자 상속이 아니라 말자 혹은 말자에 가까운 아들에게 상속하는 관습이 있다. 게다가 홍타이지는 적자도 아니었기에 적자인 도르곤 형제에 비해 정통성도 부족했다. 하지만 도르곤이 장성하기 전에 누르하치가 갑작스레 사망했고, 이미 성인이 되어 스스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홍타이지가 재빠르게 움직여 도르곤의 친모를 자살시키고 스스로 대칸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홍타이지가 죽은 후 도르곤은 역사에서 종종 보이듯 직접 순치제를 죽이고 황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원수의 아들인 순치제를 보필했다. 도르곤이 끝내 스스로 황제가 되지 않은 것은 청사 최대의 미스테리 중 하나다. 사실 따져보면 홍타이지 역시 원래라면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도르곤과 도도 형제를 살려줬다. 또 당시 상황은 도르곤이 순치제를 함부로 죽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스스로 황제가 되기 쉽지도 않았다. 사실상 순치제는 도르곤과 경쟁해서 황제가 된 것이 아니라 누르하치파와 홍타이지파의 타협의 산물로 즉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르하치파는 누르하치의 적자인 도르곤을 밀어줬고 홍타이지파는 홍타이지의 서장자이자 순치제의 이복형인 [[아이신기오로 호오거|호오거]]를 밀었는데 둘 다 안되자 타협점으로 순치제를 세운 것이기 때문. 이후 호오거는 도르곤에게 목숨을 잃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