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종(대한제국) (문단 편집) == 개요 == [include(틀:토론 합의, this=, 토론주소1=EntertainingDrabWretchedMoney, 합의사항1=순종을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의 제27대 왕으로 표기하기)] >황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짐이 부덕으로 간대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하는 것에 관하여 누차 도모하고 갖추어 시험하여 힘씀이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원래 허약한 것이 쌓여서 고질이 되고 피폐가 극도에 이르러 시일 간에 만회할 시책을 행할 가망이 없으니 한밤중에 우려함에 선후책이 망연하다. 이를 맡아서 지리함이 더욱 심해지면 끝내는 저절로 수습할 수 없는 데 이를 것이니 차라리 대임을 남에게 맡겨서 완전하게 할 방법과 혁신할 공효를 얻게 함만 못하다. 그러므로 짐이 이에 결연히 내성하고 확연히 스스로 결단을 내려 이에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여 밖으로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팔역의 민생을 보전하게 하니 그대들 대소 신민들은 국세와 시의를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각각 그 직업에 안주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라. 짐의 오늘의 이 조치는 그대들 민중을 잊음이 아니라 참으로 그대들 민중을 구원하려고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 >---- >[[http://sillok.history.go.kr/id/kzb_10308029_002|《순종실록》1910년 8월 29일 양력 2번째 기사]] 中. '''《순종실록》마지막 기록.'''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조선]] 제27대 마지막 국왕.[* 엄밀히 말해서 순종은 [[조선왕]]이 아닌 대한제국 황제로서 즉위했다. 즉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이쪽은 진짜로 공식 직함이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국왕'''이다.)처럼 두 작위를 겸직한 게 아니다. 유럽 문화권에서는 황제이면서 동시에 왕이고 또 동시에 공작이라는 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지만(소위 [[동군연합]]도 이런 이유로 성립할 수 있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황제면 황제고 왕이면 왕이였지 1인에게 여러 층위의 작위나 타이틀이 양립 불가능한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조선 왕조의 법통을 잇는 군주로서 조선의 제27대 왕임을 병기하고는 한다. 고등학교 국정교과서(7차)의 [[https://imgur.com/a/ln9anNh|표기]]는 물론 [[한국학중앙연구원]] 산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1947|순종(純宗)]] 문서 내용이 대표적인 사례. [[국사편찬위원회]]가 감독하는 한국사 콘텐츠에서는 표제어에 조선을 넣어 조선과 대한제국이 별개의 국가가 아닌 연속된 계승국임을 밝히고 있다.[[http://contents.history.go.kr/front/kc/relatedInfoViewPopup.do?infoId=n_0702320&searchType=&searchCharGubun=&pageIndex=1&pageUnit=10&pageIndex=5&searchWord=%EC%88%9C%EC%A2%85|순종('''조선''') [純宗] ]].] [[한국사|한국]] 최후의 군주이며 천자다. [[묘호]]는 순종(純宗), [[시호]]는 '''효황제(孝皇帝)'''. 휘는 척(坧), 자는 군방(君邦)이다. 정식 시호는 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純宗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 약칭 순종효황제. [[융희]]황제, [[융희]]제라는 호칭도 사용한다. 현재 대한민국 [[http://royaltombs.cha.go.kr/tombs/selectTombInfoList.do?tombseq=121&mn=RT_01_04_01|문화재청]]에서는 '순종 효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생일인 [[3월 25일]]은 대한제국 때 '건원절(乾元節)'이라는 이름의 국가 경축일이었다. [[1907년]]([[융희]] 원년) [[8월 7일]] 궁내부대신 이윤용이 황제 [[절일|탄신경절]]을 건원절(乾元節)로 개칭하자고 상소해 이를 윤허하였으며, 다음해인 [[1908년]](융희 2년) [[음력]] [[2월 8일]]을 [[태양력|양력]]으로 환산해 [[3월 25일]]로 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