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우리말/지명 (문단 편집) ==== 시(市) 또는 군(郡) (고을) 단위 [* 과거 독자적인 고을이었던 일부 읍·면 포함] ==== * 한밭, 비수리([[대전광역시]]): '한밭'에서 '한'은 '큰[大]'의 옛말이므로 한밭은 큰 밭이라는 말이다. 대전의 각급학교[* 초, 중(남중/여중),고, 대학교까지 이름에 '한밭'이 들어간다.]는 물론 도로명, 민간 가게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의 예전 이름이 한밭 야구장이었다.] '비수리'는 현재 전하는 대전의 지명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사기]]》에서 처음 등장하며 이후에도 [[계족산]] 인근 지역의 전래 지명으로 구전되어 왔다. 백제 시대 때 앞부분은 훈차, 뒷부분은 음차해서 우술군(雨述郡)이라 표기한 것을 신라 경덕왕 때 훈차, 음차 순서만 바꾸어 비풍군(比豊郡)이라고 고쳤고, 고려 시대 때 회덕현(懷德縣)으로 중국화했다. * 한내: [[보령시]]의 현재 중심 시가지인 대천(大川) 및 같은 지명을 가진 지역들. [[보령시]]에선 도로명이나 초등학교 이름 등에 사용 중이다. * 두나기([[세종특별자치시]], 구 [[충청남도]] [[연기군]]): 두나기를 음차하여 '두잉지(豆仍只)'라고 표기하였다. * 마르골([[청주시]]): 맑다(淸) + 고을(州) 이다. 마르달 (마ㄹ달) 이라고도 한다. * 고마나루, 고마([[공주시]]): 고마는 곰을 뜻하는 [[일본어]] くま(쿠마)와 어원이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마나루는 곰나루라는 뜻이며, 곧 [[웅진]](熊津)을 훈독한 것이다. [[일본서기]](720)에서 [[백제어]]로 [[웅진]](熊津)을 ‘구마나리(久麻那利)’라고 한다는 구절이 나오고, [[용비어천가]](1445)에서도 웅진을 한글로 '고마ᄂᆞᄅᆞ'라고 표기한 사례가 있어 상당히 오래 쓰였던 지명으로 보인다. 공주'의 '공(公)' 역시 '곰'을 음차한 것이다. * 소부리([[부여군]]): 소부리(所夫里) 또는 사비(泗沘)로 음차되었으며, [[서울]]과 어원이 같을 것이라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사비성|사비]]는 오늘날 [[부여군]]이다. * 길동([[영동군]]): [[신라]] 초기에는 '吉同(길동)'이라 불리다가 [[경덕왕]]이 [[757년]] 영동(永同)으로 개칭하였다. 여기서 '永'에 대응되는 '吉'은 순우리말 '길[長]'을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 고라부리, 고로, 고라([[청양군]]): 良은 백제시대 [[향찰]]로 '라'라고 읽는다. 그러나 마한시대에는 良는 '로'라고 소리 내기 때문에 고로라고 읽는다. 마한시대에 청양에 있었던 구로국은 고로를 음차한 것이고 백제시대 10정 중 하나인 고량부리현은 고라부리를 음차한 것이다. 참고로 부리는 백제어로 벌이라는 뜻이다. * 너근나, 너근내([[괴산군]]): [[삼국사기]]에 '잉근내(仍斤內)'라고 표기되었는데, 이는 '너근나' 또는 '너근내' 정도의 지명을 음차한 것이라 추정된다. * 골뫼([[옥천군]]): [[신라]] 초중기에 '고시산(古尸山)'이라 불렸는데, 여기서 [[尸]]는 고대 한국에서 ㄹ 받침을 표기하기 위해 쓰였으므로 실제 발음은 '골뫼' 정도로 추정된다. 이후 [[경덕왕]] 대에 관산성(管山城)에서 이름을 따와 관성(管城)으로 개칭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