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수 (문단 편집) == 천자가 나라 안을 두루 살핌(巡狩/巡守) == >天子適諸侯曰巡狩, 諸侯朝於天子曰述職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이르고,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朝)함을 술직(述職)이라 이른다. >---- >[[맹자(경전)|맹자]], 고자 하(告子 下) [[임금]]이 자기가 통치하는 영토 이곳저곳을 직접 행차하여 두루 살펴보고, 하늘과 땅, 산과 강에 제사를 지내며 제후나 지방관으로부터 현지 사정을 보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고대의 예법과 제도를 정리한 [[예기]]에는 5년에 한 번씩 2월에 동쪽, 5월에 남쪽, 8월에 서쪽, 11월에 북쪽으로 순수해야 한다고 설명했으나, 예기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청사진을 제시했을 뿐 실제로 그렇게 순수하진 않았다. 일단 사계절의 중월(仲月), 즉 음력 2, 5, 8, 11월에 동남서북 순으로 다니라는 내용은 [[오행]]론의 영향이 짙게 드리웠다. 정복군주, 또는 통일군주들이 새로 얻은 땅을 순수하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기존 영역의 통치력이 약해져서 통치력을 재확인한다거나, 심지어는 그냥 '바깥이 보고 싶어서' 돌아다니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동양 역사에서 순수의 유명한 사례로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업적을 과시한 것이나, [[전한]] [[한고제|유방]]이 한나라를 순수하며 [[한신]]을 [[숙청]]한 것이 있다. 당연히 임금이 직접 온다고 하면 음식을 조달하고 미리 도로를 닦고 청소하는 등 현지 주민들이 동원돼 고생했다. 당장 대한민국 군대나 공무원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이것 때문에 [[수양제]] 시절에는 현지 백성들의 고생이 말할 수 없었고, 한국사에서 순수를 자주 다녔던 [[진흥왕]]은 555년 순수 이후 자신이 거쳤던 고을들의 1년치 세금을 면제하는 등 나름대로 보상을 해주기도 했다. 고대 한국에서도 국왕이 직접 지방 시찰에 나선 기록이 종종 나오지만 순수로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6세기 [[신라]] 제24대 [[진흥왕]]이다. 다른 왕의 순수비가 남아있지 않은 와중에 오직 진흥왕의 순수비만 전국에서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 현대에 알려진 것만 4~5기[* 감악산비는 유력하게 추정 중이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없는 상태다. 감악산비를 진흥왕이 아닌 [[진평왕]]의 순수비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나 된다. [[진흥왕 순수비]] 문서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