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교 (문단 편집) === 이슬람 === [[이슬람교]]에서는 초창기 [[무함마드]] 예언자의 시대에서부터 메카군에 대항해 분투했던 역사로 순교를 매우 영예로운 행위로 여긴다. 가령 메디나에서 계시된 구절인 제3장 이므란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 169. 하나님의 길에서 순교한 자가 죽었다고 생각치 말라 그들은 하나님의 양식을 먹으며 하나님 곁에서 살아있노라. > 170.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기뻐하며 그들과 함께 하지 못 하고 뒤에 올 순교자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곳에는 두려움도 슬픔도 없노라. >---- >수라트 알 이므란 3:169-170 이외에도 메디나 시기에 계시된 구절 가운데 무려 109절이나 순교의 영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구절들을 특히 '칼의 구절'이라고 부르는데, 본디 당대에 박해받는 무슬림들이 성전([[지하드]])에 임해 그들을 박해하는 불신자들을 물리치는 가운데에서 전사한 이들을 위한 구절이지만, 오늘날 [[알카에다]] 같은 원리주의자들이 요상하게 곡해해서 그들의 테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 무함마드 시대의 성전 이외에도 또한 이슬람에서는 [[십자군 전쟁]]과 같은 이교도의 침략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에 대해서도 순교자라고 대우하며, 가까운 시기로 [[터키 독립전쟁]] 당시 그리스군과 프랑스군 등에 항전하다 죽음을 맞은 터키 병사들 또한 순교자(터키어로는 Şehit)라고 부른다. [[한국전쟁]] 및 현재진행형인 반[[PKK]] 진압작전 및 PKK에 의한 테러로 사망한 이들도 순교자라고 지칭한다. 따지고보면 터키어에서 순교란 '나라를 위해 죽은 이'라는 의미가 추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무슬림들이 그들을 박해하는 불신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구절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가 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벌인 전쟁은 방어 전쟁이 아니였다. 오히려, 무함마드와 대적하던 [[메카]]는 다양한 다신교와 일신교의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곳이였고 특히, 메카의 주수입원 중 하나는 다른 지방에서 오는 종교 활동을 위한 다양한 종교를 가진 순례객이였다. 그 뿐만 아니라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가기전 메카에서 살 적에 그는 자유롭게 자신의 종교를 포교하였다. 물론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이 사람들은 훗날 무함마드에게 살해당한다.] 포교의 효과는 별로 없없지만... 그 후 무함마드는 메카를 오가는 상단을 약탈하고 도시를 봉쇄하고 메카와 전쟁을 벌였다.[* 다만 이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 이슬람 포교 이후 메카는 다신교에 위협이 되자 무함마드를 살해하려고 했다. 따라서 위의 서술은 메카의 자유를 강조하려고 하였지만 메카도 이슬람 포교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했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다. 메카의 위협으로 인하여 무함마드와 그의 동료들은 메디나로 이동하게 된다. [[헤지라]]의 기원이 결국 메카의 무함마드에 대한 위협인 것은 사실이다. 차라리 지적할 거라면 후이다비야 조약을 위반했다고 지적하는게 옳은 사실이였다. 적어도 먼저 전쟁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며 조약위반은 무함마드가 벌인 것이 사실이다.] 그 후에도 그는 종교적 명분 아래 아라비아 반도 곳곳의 크고 작은 부족들을 정복하여 통일을 이루고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지금 [[ISIL|IS]]가 내새우는 그들의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한 명분도 이러한 무함마드의 행적을 따르는 방법으로 [[쿠란]]을 해석하고 이를 도덕적 기준으로삼는 데에서 비롯된다. 전쟁을 통한 약탈의 허용(쿠란 8장의 명칭은 안 안팔, 즉 [[전리품]]의 장이다.)[* 하지만 쿠란 9장 1~11을 보면, 전쟁을 먼저 선빵치라는 게 아니라, 침략을 하면 그에 대해 대항하라는 것이다. 약탈하기 위해서 전쟁을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전쟁포로를 [[성노예]]로 삼기[* 쿠란 24:2장이나 17:32장을 보면 지나(zina), 즉 혼전 성관계는 불법이며 4:3에서 [[첩]]을 허용은 하지만, 4:129를 보면 여자 한명으로 만족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 측면은 고려해야 한다. 참고로 지나의 처벌은 가죽채찍 100대이며 [[샤리아]]에선 기혼자에겐 [[투석형]]이 [[후두드]]의 기본이다. 역사적으로는 이슬람권에서 노예를 많이 거느렸지만 노예를 해방하면 축복을 받는다는 하디스 등을 보면 성노예가 이슬람적이지 않다는 것은 명확하다. 물론 그와 별개로 이슬람교도들은 [[슬라브]]나 흑인 여성들을 성노예로 써먹었다.], 대량학살[* 쿠란 9장을 보더라도 "그들이 용서를 구하면 그들에 대한 공격을 멈추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슬람을 믿지 않는다고 대량학살을 하라는 것은 이슬람의 명령이 아니다. 실제로 IS조차도 일단은 그리스도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9:9절은 메카의 다신교도들과의 싸움이였음에도, 일단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줬다. 이는 명확해서 훗날 무함마드가 메카를 점령했음에도 그들을 대량학살하지는 않고 이슬람으로 개종 후 메카 잔류 아니면 추방이라는 형식을 거쳤다. 이것은 스페인의 [[무어인]]에 대한 태도와 비슷한 것을 보면 무함마드가 대량학살을 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보여짐.], 이교도를 대하는 방식[* 앞서 언급했듯 다에시의 이교도를 대하는 방식은 이슬람적이지 못하다. 무함마드조차도 다신교도들을 학살하지 않았으며 꼭 본다면 유대인 학살이 있겠으나 이것도 반유대주의 히틀러마냥 유대인을 공격했다기보다는 유대인들이 메카와 내통하고 후이다비야 조약을 위반했던 사실이 존재한다. 모든 유대인 부족을 학살한 것은 아니기에, 일방적인 다에시식 증오에 입각한 학살은 아니다. 학살이라고 볼수는 있겠지만. 초기 이슬람에서도 아프간 등 불교나 힌두교도들에게도 [[지즈야]]를 거두었던 것을 보면 초기 이슬람보다도 못한 다에시는 퇴보적인 사이비 종교집단과 유사하다. 7세기 기준으로 본다면 이교도를 대하는 방식이 동로마나 유럽 세계와 비슷하기는 했다. 다만 현대에도 그러는게 문제일 뿐.], 형 집행 방법으로서 참수[*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참수형]]이 남아있기도 한것을 보면 이는 논란의 여지가 없기는 하다.] 이 모든 악행들의 근거를 무함마드가 제공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의 주석을 보면 꼭 무함마드가 다신교도들을 학살하거나 이교도를 성노예로 취하거나 한것은 아니다. 후세의 종교인에게 악용될 여지를 남기고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할 수는 있겠다. 사실 그 위의 구절들은 전쟁 상태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구절이고 의외지만 여성이나 노약자, 장애인은 살해하지 말라고 규정이 되어있다. 그걸 엉뚱하게 극단적으로 해석하는게 문제지. [[무아트 알 카사스베]] 요르단 조종사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 의해 [[화형]]을 당했을 때 요르단 당국은 그를 순교자로 [[http://news.jtbc.joins.com/html/413/NB10753413.html|표현했다.]] 다만 이는 종교적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IS를 규탄하기 위해 당국에 의해 순교자로 칭송된 것.[* 알 카사스베 중위의 사망은 군인으로서 임무를 행하다 죽은 것이니 엄밀히 말해 순교보다는 [[전사(죽음)|전사]], [[순국]]이 좀 더 적합하겠지만 IS가 같은 [[수니파]] 무슬림조차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분살이라는 끔찍하고 심지어 이슬람 율법에도 위배되는(이슬람 율법에서 화형이나 화장은 엄금하는 사항이다. 불로써 죄인을 심판하는 것을 [[알라]]의 권능이라 여기기 때문.) 방법을 써서 죽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라마단]]이나 [[할랄]]을 지키느라 죽는 것은 자살이며 잘못이라는 것이 정설임을 감안했을 때, 단순히 교리를 지키기 위해 죽는 게 순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타끼야]]가 [[시아파]]에서는 있는것을 보면 명확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