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저계급론 (문단 편집) == 옹호 == * __막중해진 부모의 책임 __ 전통적으로 [[가부장제]]의 권위는 사회 전체의 통치력과도 연관이 되기 때문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나 [[유교]] 등에서는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도록 가르쳐왔다. 물론 [[윤회]] 사상을 인정하는 [[힌두교]]나 [[불교]] 혹은 [[메이지 유신]]으로 [[국가신토|오염]]되기 이전의 전통 [[신토]]와 같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쪽은 수저계급론과 같은 능동적인 비판이 아니라 "이게 다 내가 [[전생]]에 잘못한 게 많아서 겪게 된 [[업보]]겠지"와 같은 식으로 무기력에 빠지는 문제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불교는 [[브라만교]]를 비판하며 나타난 종교인만큼 원래 반 계급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며 업보와 윤회의 개념이 브라만교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현대에는 과거에 비해 부모가 자식에 대해 더 강한 책임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일부 철학자는 자식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낳아진 것이므로, 자신의 욕구를 따라 자식을 낳은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나, 원하지도 않는데 태어난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할 의무는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사고가 불편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이미 교육받은 관습을 어기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지부조화]]일 수 있다. 현대에는 자녀를 양육할 충분한 경제력이 없는데도 책임감 없이 무턱대고 낳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사실을 깨달은 청년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저출산|한국은 저출산의 길로 빠지게 되었으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 또한 자신들의 부모와 달리 본인의 자녀들을 최대한 부족함 없이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가난한 [[다둥이]] 부모'''에 대한 비난 여론이 우세한 것도 예시 중 하나. 물론 [[대한민국/사회/문제점|여러 사회적 문제]]를 모두 부모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부당할 것이다. 따라서 똑같이 수저계급론을 인정하더라도 관점에 따라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자식을 낳은 것은 어쨌거나 부모 자신의 결정이므로 부모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 부모 역시 '''낳음 당한''' 존재로서 사람에게는 누구나 후손을 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결혼하여 자녀를 보는 것이 오래전부터 모든 인류의 관습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냐는 의견이 있다. * __노력만능주의의 한계__ 비판 측에서는 수저계급론이 금수저들의 노력&재능을 폄하하거나, 흙수저들이 노력을 하지 않거나 그만한 재능이 없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력&재능이라는 것도 성취감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분야에 따라서 그 성취가 계단식이 될 수도 있고, 꾸준히 등속운동의 그래프를 그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성취감이 없이는 노력&재능도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금수저 부모 밑에서 자라면 당연히 체계적인 양육을 받을 것이고, 소위 [[개천용]]이라 하더라도 모종의 작은 성취를 이뤄서 그것이 [[나비효과]]처럼 불어나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밑도 끝도 없이 노력에 심취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당장 먹고 살기 바쁜 흙수저들을 보고 [[노오력|노력이 부족하다며]] 폄하하는 건 대부분이 태생부터 가진 것이 너무나도 많은 상류층이다. 예를 들어 상류층들은 어릴 때부터 [[가정부]], 요리사, 과외 선생, 운전사 등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죄다 해결해주는 주변인을 끼고 살아서 뭘 하든 여유 시간이 넘쳐난다. 그런 주제에 당연히 그런 거 없이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서민들과 자신들이 가진 여유 시간이 똑같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에서는 하루가 똑같은 24시간이니 어쩌니 하는데 심지어 상술한 모든 주변 조건이 다 똑같고 직업만 다르다고 하더라도 [[연예인]], [[운동선수]], [[생산직]] 등 신체적으로 고된 일이라면 휴식 시간 내내 정말 제대로 쉬어야만 다음날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사무직, 공무원, [[전문직]] 등 비교적 편한 직종이 여가시간에 할 수 있는 만큼 신나게 놀 수조차 없다.[* 다만, 수저계급론보다 확실하면서도 누구든 자주 간과하는 불변의 사실 한 가지가 있는데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라도 '''이미 써 버린 시간을 다시 사 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백지 상태에 가까우며, 어린이나 청소년이라 하더라도 부모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렇듯 자녀에 대한 부모의 영향력은 자녀가 정신적으로 성숙해서 스스로 벗어날 때까지 계속된다. 고도 경제 성장기에는 고등학교를 시골에서 대도시로 국내 유학을 떠나는 일도 있었고, 숙식제공이 되는 공장 같은 데서 일하면서 [[주경야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지만, 요즘은 최소한 20대 중후반은 되어야 자녀가 부모에게서 정신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이에는 이미 낮은 학벌이 완성되었을 시기며,[* 물론 학생 시절의 노력이 가장 효과가 확실한 건 맞다. 좋은 대학을 감으로써 [[학벌]]빨이라도 받는 것은 양극화가 극단화된 현재로썬 수저를 조금이나마 좋은 것으로 갈아치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재수(입시)|재수]]나 [[편입학]], [[대학원]] 진학 역시 흙수저 입장에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판검변]], [[의치한약수]], 일부 공학 전공, 예체능(음악, 미술, 체육) 특히 서양음악 전공은 아무리 높은 학벌을 획득할 만큼 실력이 좋더라도 등록금과 수업료가 인문과학, 사회과학, 순수과학 전공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비싼 탓에 관련 실력이 탑클래스를 찍을 정도로 좋더라도 재정이 부족하면 발조차 들여놓을 수 없다. 결국 뒤늦게 철들은 흙수저 자식들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간 길을 따라 7~9급 공무원이 되고,[* 5~7급 공무원은 금수저 자식들이 엄청 많이 종사한다. 특히 [[정부청사]] 본청 내지 [[광역자치단체]] 본청에는 개나 소나 금수저 공무원들밖에 없다.] [[중소기업]]에 들어가거나,[* [[대기업]], 중견기업은 금수저 자식들이 엄청 많이 들어간다. 특히 대기업 본사에는 개나 소나 금수저 사무원들밖에 없다.] 간혹 부조리한 현실을 알면서도 거부하지 못한 채 [[고시낭인#s-1.2|공무원 시험]][* 이 역시 [[수능]]과 동일하게 사실상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된다. 교재비용이나 강사(현강), 공부 환경 등에 신경쓰지 않고 빵빵한 지원을 받으면서 공부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객관적으로 합격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상류층의 경우 자식들에게 공시 준비를 시키는 경우도 드물뿐더러 설령 공시 준비를 시켜도 무조건 [[5급 공무원]] 준비를 시켜서 5급 공무원 시험을 보도록 한다. 최근에는 취업난이 더욱 심각해지고 공무원의 사회적인 대우가 매우 좋아졌기에 [[7급 공무원]] 준비를 시켜서 7급 공무원 시험에 반드시 합격하도록 하는 그런 경우도 많아졌다. 상류층 입장에서는 7급 공무원까지가 [[마지노선]]인 셈.[[9급 공무원]]의 경우 하류층이나 하는 천한 직업이라 여기는 게 다반사.][* 그나마 운동의 경우는 오히려 하류층이 상류층보다 훨씬 유리한 면이 많다. 일단 하류층은 어려서부터 몸 쓰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체력이 상류층에 비해 좋은 편이다. 물론 상류층도 공부를 포기하고 운동에만 전념하면 체력이 매우 좋은 것을 넘어서서 운동선수 급으로 매우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에 빠져들거나 [[비정규직#s-2.2|비정규직]], [[비정규직#s-2.3|파견]], [[하청]]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막연히 타인의 노력 부족을 탓하는 경우, 당장 그러는 자신부터 타인을 이해하려는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노력 없이 남 탓하지 말라는 말이 오히려 노력 없이 남 탓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소위 [[노력충]]들은 남을 그저 손가락질하며 일침을 놓고 싶어하는 심리에서 발생한다. 사실 일일이 개인들의 사정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대단히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이게 노력에 대한 역설인데 왜 남의 사정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느냐고 비판할 수 있다. 이 노력만능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누가봐도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측 불가능하며 통제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던가, 노력의 능력 밖의 영역이라던가, 아니면 상위 계층에 의한 '''[[사다리 걷어차기]]'''와 같은 상황이 온다면 절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위험요소에 대해서는 모든 계층에게 평등하게 존재하지만 이 리스크를 감내하고 재기할 수 있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회생신청 같은 제도를 예시로 들며 구제책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회생신청은 진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을때 이야기며 이 수준에 도달했다면 설령 회생에 성공했다 쳐도 재도전은 힘들다고 보는게 현실이다. 만약 상위계층에 의한 사다리 걷어차기를 당하는 상황이라면 이때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사회적 계층에 의한 격차는 극복할 수 없는 절망감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다수의 국가도 이런 사다리 걷어차기 행위에 대해서는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그러나 명백한 사다리 걷어차기에도 눈감아주는 경우도 잦은지라...] 결국 노력만능주의란 '''같은 스타트라인'''에서 시작했다는게 전제인데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선 모두가 같은 스타트라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 __계급 유동성 저하__ 경제 성장기가 끝나고 저성장에 접어들면서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청년에 의한 주도적인 사회적 계층 변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1997년 외환 위기|IMF]] 당시를 기준으로, 세계적으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시기의 세계 경제불황 당시를 기준으로 직업을 분석할 때 안정성에 대한 선망이 늘거나 취직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이만큼은 해야 유지가 된다는 것에 대해 모두가 강구하는 시대가 되었고, 기술은 사회의 둔화된 변화속도와 무관하게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업이 요구해야 하는 수준은 높아졌다. 결국 "이만큼은 해야 유지가 된다"는 허들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고 이 허들을 넘어도 취직이 된다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가 되었다. 고학력이어도, 고스펙이어도 떨어진다면 더욱 저학력, 저스펙이면서도 자리 보전 중인 기성세대에 반발심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계급 유동성이 높은 성장기에도 수저 따라가는 사람이 더 많은데, 불황이면 [[개천에서 용 난다|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당연히 호황 때보다 훨씬 힘들고 드물어질 수밖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