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의사 (문단 편집) === 역사 === 수의사에 대한 [[동북아시아]]권 최초의 기록은 중국 [[주나라]](周)와 [[전국시대]](戰國時代) 각 국의 직제를 기록한 <<[[주례]]>>(周禮)의 <천관총재(天官冢宰)>편에서 찾을 수 있다. 주나라는 당시 국가의료기구에 속했던 의료관리를 의사(醫師), 식의(食醫)[* 식이요법을 행하는 의사], 질의(疾醫)[* 현재의 [[내과]]의사], 양의(瘍醫)[* 현재의 [[외과]]의사], 수의(獸醫)의 편제로 나누었는데, 그 중 수의의 업무를 "수의(獸醫)는 수병(獸病), 수양(獸瘍)의 치료를 관장한다. 수병을 치료하는 것은 관(灌)하여 행한다. 관절(關節)로 그 [[기(기운)|기]](氣)를 움직인다. 그 발(發)하는 바를 보고 기른다. 수양을 치료하는 것은 관(灌)하여 괄(劀)한다. 나쁜 것을 발하게 한 후에 약으로 기르고 먹인다. 무릇 수(獸)는 병(病)과 양(瘍)이 있는데 치료하여 죽으면 그 수(數)를 진퇴(進退)하여 계산한다."라 기록하였다. 여기서 수병(獸病)은 [[동물]]의 [[병]]을 뜻하고, 수양(獸瘍)은 동물의 [[종기]]를 뜻하는데, 이를 통해 주나라 시대에도 동물의 병과 종기를 치료했던 직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 쓰이고 있는 수의사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한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수의학 관련 인물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한 [[삼국시대]] 인물인 [[고구려]]의 [[혜자]]이다. 혜자는 [[스이코 덴노]] 3년(595년) [[일본]]에 도착해 [[섭정]] [[쇼토쿠 태자]]의 신하에게 '료마법([[療]]馬法)'[* 말의 병을 고치는 법]을 가르쳤는데[* 쇼토쿠 태자에게 직접 가르쳤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일본에서 대대로 이어져 '태자류(太子流)'가 되었고, 일본 수의학계는 이 시기에 체계적인 수의학이 최초로 일본에 도입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의(獸醫)'에 대한 기록은 이후 [[고려]]시대에도 등장하는데, 고려 [[문종(고려)|문종]] 30년(1076년) '수의박사(獸醫博士)'라는 관직이 12[[목(행정구역)|목]]에 배치되어 [[수의학]]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는 한국사 최초로 등장하는 수의 관련 관직이며, 수의학 교육이 실시된 최초의 명문화된 기록이기도 하다. [[여말선초]]시대 [[정도전]]과 함께 [[역성혁명]]을 주도한 [[개국공신]] 중 하나였던 [[조준(조선)|조준]]은 수의학, 수의사의 역사에 있어서 특이할만한 인물이다. 그는 [[우왕]] 14년(1388년) 왕에게 "사복시(司僕寺)[* 왕이 타는 말, [[수레]] 및 [[마구간|마구]]와 [[목축]]에 관한 일을 맡던 관청]에 수의(獸醫) 5인과 구사(驅史) 30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파하라"라 간하였다. 또한 조준은 한국사 최초의 수의학 서적인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을 편찬하여 [[말]]과 [[소]]의 병과 치료법을 정리하였다. [[조선]]시대에 수의사는 수의(獸醫) 혹은 마의(馬醫)라고도 불리었는데, [[경국대전]]에 의거하여 사복시에 종6품에서 종9품까지의 마의 10인이 배정되었다. 당대 [[기병|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말을 치료하는 관청 소속 마의가 되기 위해서는 [[병조]]의 사복시에서 주관한 시험을 봐야 했는데, 시험방법은 '안기집(安驥集)'이라는 마의서를 강해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자세한 절차나 내용은 알 수 없다. 반면, 관청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마의들은 [[백광현]]의 사례와 같이 [[영 좋지 않은]]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는 서양 수의학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군무국 기병과에서 임시로 실시하였고, 뒤에는 관립수원농림학교에서 수의과를 따로 설치하고 수의사를 양성하게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되었다. 1908년에는 수의속성과를 설치하여 1회 졸업생 20명을 배출하였으나 폐과되었고, 1937년에는 [[수원농림고등학교]]에 3년 과정의 수의축산과가 설치되어 전문수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다시 실시되었다. 광복 후에는 「국립서울대학교 설치령」에 따라 수원농과대학에 [[수의학과]]와 [[축산학과]]가 나누어져 [[농과대학]]의 수의학부로 출발하였고, 1953년 4월에 [[서울대학교]] 수의학부로 개편됨과 동시에 [[서울특별시]] [[연건동]] 구경성의학전문대학교로 이전하였다. 1974년에 [[예과]] 2년의 과정을 두는 6년제 대학으로 개편되었으나, 1976년부터 예과 과정을 폐지하고 다시 4년제 수의과대학으로 환원하였다가 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1998년부터 다시 6년제 과정을 도입하여 오늘날의 수의사 양성 과정이 완성되었다. [[한국]], [[중국]]이 아닌 문화권에서도 수의사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2천여년전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 동물보호 및 동물학대 금지 법령을 제정했으며, 동시에 [[동물병원]]을 세우고 동물만 맡아 진료하는 의사, 즉 수의사 제도를 확립하였다. 수의사들의 자세한 진료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동시대에 출판된 샬리호트라(Shalihotra)라는 수의학서는 [[말]], [[코끼리]][* 당시 인도에서는 말뿐만 아니라 코끼리 또한 [[전투 코끼리|전투용으로 동원]]되었다.] 등의 해부, 생리, 수술에 대해 기록하였고, 이는 [[페르시아어]], [[아랍어]], [[티베트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중세]]시대인 [[11세기]] [[이슬람]]권 기록에서는 [[고양이]] 보호소의 고양이 전문 의사들이 등장하였고, 현대적인 의미의 수의학 교육과 수의사는 [[18세기]] [[유럽]]에서 등장하였다. 첫번째 근대적 [[수의과대학]]은 1762년 [[프랑스]] [[리옹]]에서 설립되었고, 1783년 [[영국]] [[햄프셔]]의 '오디햄'이라는 마을에서 설립된 '오디햄 농업회(Odiham Agricultural Society)'는 수의사의 전문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1791년 [[영국왕립수의대학]]이, 1844년 Royal College of Veterinary Surgeons(RCVS)가 설립되어 수의사를 배출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