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원시 (문단 편집) === 일제강점기 이후 === 일제강점기에는 예전만큼의 위상은 없었다. 지역 중심의 역할을 하긴 했으나, [[부(행정구역)|부]]로는 승격되지 못했다. 다만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지역 특성 상 역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도시가 발달해 왔다. 수원시는 1919년 [[3.1운동]] 당시 [[평안북도]] [[의주군|의주]], [[황해도]] [[수안군|수안]]과 함께 3.1운동 3대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수원에서 동시에 3.1운동이 있었던 것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중 일제에 의한 최대의 학살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는 [[제암리 학살사건]]이 당시 수원군(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수원에는 일제강점기와 항일관련 유적도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해방 이후 1949년 부로 승격되었고, 바로 다음 날 시가 되면서 현재의 팔달구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제외하곤 모두 화성군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시가지 확장에 따라 주변 면들이 수원시로 편입되면서 성장하였으며, 2022년 1월 13일을 기해 특례시로 승격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