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요집회 (문단 편집) == 개요 == 1992년부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였던 [[정신대]] 및 [[일본군 위안부]][[http://www.goeonair.com/news/article.html?no=2946|#]] 피해 할머니들 중 정의기억연대(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소속 할머니들의 주도로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있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집회. '수요시위' 또는 '위안부 할머니 집회' 라고도 한다. 1993년에 100회를 기록하였고, 2001년에는 500회를 기록하여 '''동일한 주제로 열린 최장기간의 시위'''로 이 기록은 매주 갱신되고 있다.[* "'''동일한 주제로 열린 최장기간의 시위'''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최장기간의 시위로 정대협 측에서 등록을 하려 하였지만, 등록시 등록비를 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정대협에서 등록 신청을 하지 아니하였다."고 2013년 9월 4일 수요집회에서 정대협 윤미향 대표가 발언하였다.] 2011년 12월 14일에 1,000회 집회가 열렸다. 2016년 새해 첫 수요일인 1월 6일 수요집회가 1,212회에 도달하였다. 2019년 8월 14일 수요집회가 1,400회를 맞이했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기도 하다. 때마침 [[한일 무역 분쟁|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일본 불매운동]]이 활발한 시기인데다가 [[광복절]] 전날이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많은 약 20,000여명이 옛 일본대사관 앞에 모였다. 또한 12개 나라 37개 도시에서도 수요집회가 열렸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814_0000741543|#1]] [[https://www.yna.co.kr/view/AKR20190814176200054?input=1179m|#2]] [[http://www.segye.com/newsView/20190814510528|#3]]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5778.html|#4]]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814_0000741381|#5]] [[https://www.yna.co.kr/view/AKR20190814120751073?input=1179m|#6]] [[https://youtu.be/W35OPH5WjdM|영상1]] [[https://youtu.be/H6cyajHnupg|영상2]] [[https://youtu.be/ekfuqWs9U74|영상3]] [[https://youtu.be/xC-5jDK8GyI|영상4]] 2023년 3월 1일 수요집회가 1,585회를 맞이했으며 때마침 [[3.1절]]이라 주최 측 추산 300명이 모였다. [[이용수(1928)|이용수]] 할머니도 3년 만에 참석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460065_36199.html|#1]]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098558|#2]] 특이하게도 수요집회의 창시자는 '''구 [[일본군]] 출신이다'''. [[노태우]] 정부시절인 1992년 1월 당시 [[일본]] 총리를 지냈던 [[미야자와 기이치]]가 방한(訪韓)하여 한일정상회담을 갖게 된 계기로 일부 위안부 및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시작하였고 그 이후에는 이들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할머니들이 뜻을 같이하게 되면서 정기적인 시위로 진화되어 매주 수요일을 시점으로 할머니들이 시위와 발언을 하는 장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참가자 대부분이 고령의 할머니들인데다가 일부는 건강이 악화되어 와병(臥病) 신세를 지거나 끝내는 노환으로 작고하시기도 하고 도중에 건강 문제 등으로 포기를 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일본 정부]]의 성의없고 변화없는 태도를 보게 되면서 할머니들의 시위와 발언은 더욱 높아져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 집회가 열렸던 당시에는 234명의 할머니들이 뜻을 같이하여 시위에 동참하였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이 고령인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할머니들이 건강문제와 악화일로 등으로 인하여 시위를 포기하고 와병이나 노환 등을 앓게 되었거나 끝내는 작고하시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2013년 현재 꾸준히 참석하시는 할머님은 2분 뿐. 하지만 항상 같이 해주는 학생들이나 시민단체들이 있다. 그나마 이 할머니들도 워낙 고령이라 건강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도 있어 향후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도 도중에 일부 할머니들이 병세악화 등으로 [[고인]]이 되었거나 병세를 이유로 도중에 포기하거나 집회에 불참하는 경우도 있다. 집회에 불참한 또다른 경우는 비판 및 논란 참조.[* 초창기까지는 할머니들의 연세가 대부분 5,60대였기 때문에 활동이 왕성하였지만 지금은 80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건강 문제가 걱정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