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완지구 (문단 편집) === 역사 개요 === * '''1996년 4월''' :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8,092,000㎡, 건설교통부) * '''2000년 12월''' :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 변경(4,680,000㎡, 건설교통부) * '''2001년 4월''' : 택지개발계획 승인(건설교통부) * '''2004년 5월''' : 택지개발계획 변경 승인(4,604,531㎡, 건설교통부) * '''2004년 9월''' : 택지개발 실시계획 승인(광주광역시)[*출처2] * '''2004년 10월''' : 착공 * '''2008년 7월''' : 개발 완료, 아파트 입주 시작 [* 실질적으로는 2009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했다.] ---- 계획이 시작된 것은 1996년이지만, 2008년에 완공이 될때까지 10년 이상이 걸렸다. 그 이유는 택지개발지구 최초 지정 다음해에 발생한 '''[[1997년 외환 위기]]''' 때문이다. 외환위기가 끝나고 2001년에 택지개발 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이 당시에 수완지구 택지개발의 허가를 내주는 대가로 당시 [[한국토지공사]]에서 현재 [[무진대로]]의 동쪽인 '기아로'와 서쪽인 '80m광로'를 연결하는 구간의 공사비를 부담하도록 했고, 2009년 완공되면서 지금의 무진대로가 되었다.] 개발이 다시 추진되기 시작했으며 2003년에는 개발부지내 토지보상, 2004년 10월에는 착공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원궤도에 올라갔으며 4년이 흐른 2008년 7월에 완공 및 최초 입주하였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수완지구가 완공된 2008년에는 [[대침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는데 이미 과잉공급으로 미분양이 심각했던 상황에 경기침체까지 겹치니 건설사들은 발코니 확장을 무료로 해주거나 에어컨, TV같은 가전제품을 무상으로 제공했으며 심지어 분양금액까지 할인해주는 강력한 대책으로 물량을 하루빨리 정리하려고 했었고, 심지어는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고 건설사들이 하나둘씩 부도로 쓰러지면서 아파트 공사까지 차질을 빚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광주의 대표 건설사였던 [[대주건설]]은 수완지구에 총 7개 단지를 공급할 예정이었지만 2009년 기업 퇴출을 당하면서 공사가 마무리 단계였던 1단지와 6단지만 겨우 입주할 수 있었고 한참 공사중이던 2, 3, 5단지와 8단지 예정부지는 [[대방건설]][* 순차별로 [[성덕마을 대방노블랜드5차|대방5차]], [[성덕마을 대방노블랜드3차|3차]], 2차, 6차가 되었다.]이, 이제 막 올라가기 시작했던 7단지는 [[호반건설]][* [[수완지구 호반베르디움 1차|호반1차]]가 되었다.]이 인수해서 완공시켰다. 이 외에도 [[현진에버빌]]의 ㈜현진도 수완지구에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2009년 부도를 맞으면서 모두 매각했고 그전에 입주한 2개 단지만 남게되었다. 당시 매각했던 땅에는 현재 [[골드클래스|골드클래스㈜]]의 수완 골드클래스 1차가 들어와있다. 또 다른 일례로 [[부영그룹|㈜부영]]의 부영 애시앙 1차 아파트[* 입주 당시에는 사랑으로 부영 1차였다.]는 2008년 11월에 입주했지만 1년이 넘도록 104동의 2가구를 제외하고 모든 집이 비어있을만큼 미분양이 심각했으나, 1년이 지난 2009년 후반기가 되어서야 점차 사람들이 입주를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과잉공급으로 인한 광주 부동산 침체의 주원인이나 마찬가지였지만 2016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열풍에 제대로 타면서 정주여건이 좋은 수완지구 아파트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고 현재는 수완지구 중심가인 국민은행 사거리를 중심으로 매우 비싼 동네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