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성고등학교(경기) (문단 편집) === 2010년 이전의 이야기 === 2000년대 초반까지는 수원시에서 엄한 학칙과 무시무시한 체벌로 악명이 높았다.[* 지금에 와서는 상상도 안 되겠지만 60, 70년대에 깡패학교로 이름 높았던 수성고등학교를 경기도교육청에서 친히 조지면서 집단 유급사태를 일으킨 이후 경기도교육청에서 친히 관리감독하는 형태로 학교가 운영된 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폭력으로 학생들을 진압했던 악습이 남게 되었다. 그 이후 승진을 노리거나 장학사 전출 등 인사고과를 노리기 위해 학교로 전입하는 교사의 수가 많아졌고 그런 교사들의 실적으로 과시할 만한 것은 학생들의 대입 결과였다. 90년대만 하더라도 대입결과 밖에 없던 시절이였기 때문에 성적만 나온다면 괜찮다는 일념으로 교사들이 학생들에 대한 체벌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학생들도 [[군대|남자라면 병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 무조건 가야 하는 그곳]]의 생활을 체험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역사가 길다보니 '수성고 = 강력한 체벌을 가하지만 성적만큼은 화끈하게 보장해주는 곳'이라는 인식이 수원사회에 깊숙히 인식된 것에다가 유급세대가 자라서 학부모가 되고 그들 입장에서는 학교만 보내놓으면 사교육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해방되고 별로 신경 안 써도 다 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져서 체벌이 기묘한 형태로 가해져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서 이 때 당시 주변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성고에서는 신체포기각서를 쓴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고 특히 수원에 있는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성과를 올리고자 수성고의 방식을 따라하는 경우도 존재했고 이후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이 어느 정도 풀릴 때도 주변 고등학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만, 2000년대 중반에 학교의 입결이 일시적으로 망하기 시작하면서 체벌의 정당화 근거가 사라지고, 여교사들의 다량 유입으로 인하여 현재는 밑에서 기록하듯 이런 문화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게 정당화된 이유는 당연히 학교가 높은 대학 진학률로도 유명했기 때문이다. 아예 입학 예비소집일 이후부터 교실에서 선행 수업을 진행[* 과목은 당연히 국영수 위주. 이때 반편성 고사도 실시했다.]하는 패기를 선보였으며[* 그런데 2000년대 중반쯤에는 수원권에서 이렇게 안 하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입학일에는 2010년도에 이슈가 되었던 그 유명한 학부모 각서를 제출했다.[* 내용은 별 거 없었다. 그냥 애들 좀 줘 패서라도 엄히 가르쳐서 대학교 보낼 테니 학교 방침을 이해해 주시고 따라주십시오 정도.] 90년대 말~2000년 초반까지는 학교의 명성에 혹해 학생도 각오하고 들어갔고, 학부모들도 [[XX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아이 좀 때리면 어떠냐 대학교만 잘 보내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이 주류였으므로 오히려 학교를 지지하여 큰 문제는 없었다.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지지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냐면 2000년경 교육청에서 고등학교 체벌에 대한 상세 규정과 체벌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치수까지 제한하였을때 학부모회를 중심으로 규정에 칼같이 맞춰 나무로 몽둥이를 깎아 학교에 제공하였을 정도이다.[* 1996년도 쯤 심한 체벌로 경기신문에서 취재를 온적이 있으며 교문 앞에서 대기하던 기자가 하교 중인 학생들에게 체벌수위를 물어보면 어떤 학생도 30분 이상 떠들어 이건 대박이라고 생각했으나 왜 맞았다고 생각하나는 마무리 질문에 전원이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죠라는 대답을 하여 제대로 돌아가는 학교라고 뉴스에 실렸다.] 이것이 바로 수성고의 특산품 '떡메'. 넓은 노 형상인지라 눕혀서 맞으면 그냥저냥 버틸 만하지만, 흡연 등의 대역죄를 저질러 교사가 빡치기라도 하면 이걸 세워서 타격하는데 영혼이 달아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한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이렇게 제공된 떡메에 '''정신각성봉'''이니 '''정의구현봉'''이니 매직으로 써넣고 정성스레 니스 칠을 한다던지 청테이프나 절연 테이프로 정성스럽게 감아 나름대로 튜닝하여 교사에게 바치기도 했다. 체벌에 관해서는 뭐 그냥 엎어놓고 곤장 몇대 치는 애교 수준부터 시작하여 플라스틱 자를 활용한 손끝치기, 회초리를 이용한 종아리 전·후 동시 가격에 고전적인 원산폭격부터 손으로 귀를 잡고 팔꿈치를 땅에 대고 다리는 사물함에 올리는 사마귀 자세 등등 다종(多種)·다양한 기술들을 선보였으나 [[페르마의 대정리|여백이 부족하여 여기에 적지 않는다]]. 오밤중에 들리는 떡메 소리에 주변 주택가에 사는 주민이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야 애들 좀 그만 패라]]며 신경질을 부리는 사례도 빈번했다. 학교 등·하교 시간도 패기가 쩔어주는 건 마찬가지. 2001년경 3학년 시간표를 보면 6시 30분 등교, 7시까지 영어 듣기평가, 7~8시까지 0교시 보충수업, 1~6교시 수업, 보충수업 2·3교시, 저녁 먹고 야자 1~3교시까지 클리어하면 하교 시간이 대략 11시 30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2019년 기준 희망자에 한해 7시 50분 등교, 정상수업은 9시 10분부터 시작해서 4시 50분에 끝나고 야자도 9시30분에 끝난다.] 일부 교사들은 [[비뚤어진 미학|열정이 넘친 나머지]] 자율학습시간 교실 유리창 바깥쪽의 가스 배관이 지나가는 폭 약 1m정도의 베란다 비슷한 공간을 통해 불시에 교실에 진입하여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리고 숙면 중인 학생이나 기타 각종 뻘짓 중인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적발하는 [[솔리드 스네이크]] 뺨치는 침투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소한 문제라면 그게 4층이었다는 거 정도?~~대체 뭐가 사소한지 모르겠다.~~ 요즘은 군대에서도 잘 안 하는 단체얼차려를 주기도 했다. 야자시간에 애들이 너무 많이 존다는 명목으로 강당에 모아놓고 유격체조를 시켰었다. 다만 2010년을 기점으로 유격체조를 잘 모르는 여교사들이 굉장히 많아져서 빡세게는 안 했다. 그러나 빡빡한 두발을 비롯한 각종 생활규정들에 순기능이 있긴 있었는데 같이 동기들의 교우 관계는 물론, 선·후배 관계도 그렇게 엄격하지 않아 학생들끼리 부대끼는데 스트레스는 적었다. 특히, [[일진]]들이 활개치기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학교에서만 생활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긴데 빵셔틀을 부리는거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교사들의 학생 장악력이 높았고, 교사들이 입학당시부터 인근 중학교에서 [[일진]]으로 소문난 학생들의 명단을 가지고 아주 집요할 정도로 집중관리감독을 했기 때문이다. 수성고에 근무했던 한 교사의 제보에 따르면 [[일진]]들이 수성고로 들어올 때, 일진을 단 2주안에 전학을 보내기 위해 모든 발표, 숙제검사, 우유 당번, 심지어는 분리수거까지 일진에게 맡기는 플랜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조용히 교무실에 불러서는 물었다. "전학갈래? 있을래?"라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