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일수 (문단 편집) === [[일본프로야구]] 시절 === ||<#c00><:> {{{#ffffff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No.90}}} || ||<#000><:> {{{#ffffff 이시야마 가즈히데(石山一秀)}}} || [[파일:external/www.jiji.com/photo14l.jpg]] 코치 시절 사진. [[파일:/image/poktannews/2010/10/05/201010050256777542_2.jpg|width=400]]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스카우트]] 시절[* 참고로, 이 [[사진]]은 이따금씩 [[페이스북]]이나 [[인터넷]]에서 '''안경닦이 장인'''이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닌다.]. 대개 일본으로 돌아간 재일교포 선수들이 초라한 말년을 보낸 것과는 달리[* 지금도 야구 평론가, 해설가로 활약 중인 [[니우라 히사오|김일융]]과 더불어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다른 재일교포 선수의 경우, [[장명부]]는 한국 시절 벌어놓은 많은 돈을 다 날리고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로 일했지만 얼마 못 가 유니폼을 벗은 후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에서 영구 추방당한 뒤 일본에서 어렵게 살다가 2005년에 사망했고, [[해태 타이거즈]]에서 뛴 [[김무종]]은 [[삼성 라이온즈]] 코치까지 지냈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운수업, 정확히는 트럭 운전으로 생계를 잇고 있으며 같은 팀에서 배터리를 이룬 [[주동식]]은 사업가로 성공하긴 했으나 2012년 [[성매매]] 업소를 운영했다는 혐의로 쇠고랑을 차는 [[흑역사]]를 남겼다. 게다가 [[김성길]]은 혹사로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주유소 직원으로 일하던 2001년 1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다. [[도쿠야마 후미무네|홍문종]]이나 [[이영구]]처럼 일본 복귀 후의 행적이 불명인 경우도 있고.(이영구는 2017년에 뒤늦게 근황이 밝혀졌는데, 도쿄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며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야구인으로써의 인생만 비교하자면 60대를 넘긴 노년까지 계속 지도자 또는 프런트로 야구계에 종사해온 송일수에 비하면 밀린다.)], 송일수는 계속 일본 야구계에서 종사하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생활하였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1988~1989년까지 2년간 친정 팀 킨테츠에서 불펜 포수로 활동했고, 1993년부터 2004년까지 불펜, 배터리 코치를 지냈다. 현역 시절 팀 동료이자 라이벌이던 [[나시다 마사타카]]는 킨테츠 감독 시절 "투수 보는 안목은 이시야마(송일수) 코치가 최고" 라면서 송일수를 총애했고 투수 교체 등에서 송일수의 조언을 많이 귀담아 들었다고 한다. 이후 킨테츠가 오릭스와 합병되어 해산된 후 코치직을 사임하고 2005년 신생 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소속을 옮겨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로 근무했다. [[김병현]]이 오랜 방황을 끝내고 라쿠텐으로 현역 복귀할 때 [[스카우트]]였던 송일수가 뒤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하며, 그 외에 [[스카우트]]로서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여 신생팀 라쿠텐이 제자리를 잡는데 크게 공헌하기도 했다. 적어도 이 때까지 배터리코치와 스카우트로써의 송일수는 평가가 상당히 좋았던 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