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영진(농구선수) (문단 편집) === 프로 선수 === [[창원 LG 세이커스|창원 LG]]에서는 프로의 험난한 벽앞에 한계를 보였다. 원래 빠른 움직임과 스피드가 주 무기였던 선수가 프로에서 [[외국인 선수]]와 대결하기 위해 억지로 몸을 불렸다가[* 김태환 감독은 그를 4번으로 기용하고 3점 슛이 좋았던 외국인 에릭 이버츠를 외곽으로 빼기 위해 체중 불리기를 지시했다. 워낙 [[살이 찌지 않는 체질|살이 안 붙는 체질]]에 위장이 선천적으로 약했는데, 밤마다 라면을 두 개씩 먹으며 억지로 체중을 불렸다. 80kg였던 체중을 순식간에 92kg까지 불리며 운동능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 스피드는 죽고, 몸빵도 되지 않으면서 이도저도 아니게 변해버린 것. 사실 프로 첫 해 평균 8.9점으로 다른 신인이라면 칭송받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 해 '''[[김승현(농구)|김승현]]'''이 등장해서 꼴찌팀이었던 대구 동양을 [[2001-02 KBL 챔피언결정전|우승]]시키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통에 송영진은 제대로 묻혔다. 결국 [[창원 LG 세이커스|LG]]에서는 두 자리수 평균 득점은 커녕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성장이 정체되었고, 결국 LG는 2004-05 시즌이 끝나고 [[FA 제도|FA]]가 된 [[현주엽]]을 데려오면서 그를 보상 선수로 보내버렸다. 송영진은 [[창원 LG 세이커스|LG]]에서의 시간이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김승현(농구)|김승현]]에게 빼앗겼고 개인적인 성적도 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후 인터뷰를 찾아보면 [[창원 LG 세이커스|LG]] 시절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태환(농구)|김태환]] [[감독]]과의 갈등도 있었으며 선수단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극도의 [[스트레스]]로 [[정신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573&redirect=true|치료까지 받았다.]][* 이게 더 뼈아프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게 드래프트 당시 전체 1순위인데다가 송영진의 고향이 [[마산]]이었기 때문.(당시에는 통합 전이었다.) 즉, [[창원 LG 세이커스|LG]]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이적하지 않았으면 --[[정병국(농구)|정병국]]--보다 먼저 [[로컬 보이]]로 자리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 옮겨간 [[수원 kt 소닉붐|KTF]]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추일승]] 감독의 조련 아래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인 스피드와 움직임을 다시 되찾은 것이었다. 2005-06 시즌 향상된 기량을 보이며 기량발전상을 수상했고, 2006-07 시즌에는 평균 13.7점을 넣으며 KTF의 사상 첫 챔프전 진출의 주역이 되었다. 장신 슈터로 성장하여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 선발 되기도 하였다. 역대 보상 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한 케이스.([[우지원]]이나 [[이상민(농구)|이상민]]이 이름값으로는 가장 높지만 이들은 특수한 경우인지라...) 그 뒤로는 [[FA 제도|FA]] 자격을 얻고도 팀에 남으며 자신을 알아준 팀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추일승 감독 시절에는 [[스몰 포워드]]에 가까운 플레이를 하면서 외곽슛을 주로 던졌다면 [[전창진]] 감독 부임 이후에는 [[파워 포워드]]에 가까운 선수가 되었다. 전창진은 송영진을 보고 저렇게 큰 선수가 외곽을 떠도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인사이드에서 수비와 리바운드 등 궂은일을 해주길 원했고 송영진은 이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하였고 은퇴 직전까지 kt의 골밑을 지켰다. 포워드가 많은 kt지만, 큰 키를 바탕으로 골밑에서 활약해주는 선수는 송영진이 역시 1옵션. 움직임도 괜찮고, [[스트레치 포워드|미들 라인이나 골밑에서든 어느 위치에서든지 다양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신인]] 시절의 기대처럼 4번 자리에서 대활약하는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히 유용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다. 수비력도 적당히 괜찮은 편이라서 kt 이적 후에는 [[국가대표]]에도 종종 발탁될 정도로 성장했다. 기대만큼은 아니라도 준수한 [[파워 포워드]]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2013-2014시즌에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내 빅맨 자원인 [[민성주]], [[장재석]], [[김승원(농구선수)|김승원]]의 성장세가 더딘 관계로 결국 주전으로 계속 출전하며 팀의 6강 진출에 힘을 보탰고, 준PO에서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상대로 평균 12.8득점을 넣으며 후안 파틸로[* 2012-13 시즌 안양 KGC에서 뛰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용병이다.], [[전태풍]], [[조성민(농구)|조성민]]과 함께 4강 진출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4강에서는 친정팀인 LG에게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3패를 당하고 말았다. 시즌이 끝난 후 다시 [[부산 kt 소닉붐|FA]] 자격을 얻은 송영진은 2년간 보수 총액 2억원(연봉 1억 5천만원, 인센티브 5천만원)에 재계약했다. 아울러 [[김승현(농구)|김승현]], [[황진원]], [[전형수]], [[이현준(농구)|이현준]]이 은퇴하면서 97학번 중 유일한 [[현역]] [[선수]]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2014-2015 시즌 이후 정들었던 코트를 떠나게 되었고 97학번의 현역 선수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